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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이 녹으면 반드시 봄이 오니까

  • 승인 2015-12-30 10:0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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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이 녹으면 반드시 봄이 오니까


달려라 삐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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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빈 사진 박민성 자료협조 백산동물병원

이곳에 삐삐가 나타난 건 부쩍 쌀쌀해진 초겨울의 어느 날이었다. 어미를 잃어버린 건지 사람에게 버려졌는지, 태어난 지 두 달이 채 안 되어 보이는 아기 고양이였다. 왜 혼자 헤매고 있는 걸까. 형제는 없는 걸까? 잘 먹지 못해 비쩍 마른 고양이를 사람들이 위태롭게 지켜보고 있는데 돌발 상황이 일어났다. 추위에 지친 삐삐가 근처 자동차 본네트에 쏙 숨어버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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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섯 시간 동안의 사투

삐삐가 본네트에 숨어들었다는 이야기를 전해들은 구조자 차명임 씨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이대로 본네트에 머물다간 시동이 걸림과 동시에 봉변을 당할 것은 뻔했다. 그녀는 팔을 걷어붙였다. 오랫동안 길고양이를 구조해 온 그녀가 아니었더라면 쉽게 다가설 수 없는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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삐삐가 들어간 자동차를 흔들고 큰 소리를 내며 바닥을 쿵쿵 두드렸다. 자동차 주인에게 부탁해 본네트를 열기도 했다. 하지만 삐삐는 본네트가 열림과 동시에 재빠르게 다른 자동차 본네트로 들어가 버렸다. 명임 씨가 따라가 자동차를 두들기면 삐삐는 또 다른, 또 다른 자동차로 건너 숨어들었다. 조금만 위협을 느껴도 다른 차로 옮겨 타 버리는 새끼 고양이는 하필 야옹대는 소리도 내지 않아 기척을 찾으려면 온 신경을 곤두세울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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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가 애써 쫓던 삐삐의 행적을 놓친 것은 삐삐가 아파트 코너를 끼고 돌아 다른 차량으로 옮겨 탄 이후였다.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이마엔 땀이 송글송글 맺혔다. 정신을 차려보니 이미 여섯 시간이 지난 후였다. 명임 씨는 고개를 내저었다. 더 이상 방법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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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다지도 잔인한 계절


지친 그녀가 가까스로 삐삐를 발견한 것은 마지막으로 찾아온 아파트 현관에서였다. 그토록 찾았건만 여기 있었다니, 한달음에 달려가 고양이를 잡은 명임 씨는 곧 이상함을 느꼈다. 아뿔싸. 기름때에 젖은 삐삐의 다리 부분이 온통 새빨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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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에 낀 건지, 피부 껍질이 전부 벗겨져 덜렁거리는 모습이었어요. 바로 삐삐를 안고 동물병원으로 달려갔죠.”
수의사로부터 전해들은 삐삐의 상태는 더 심각했다. 오른쪽 다리의 피부가 70% 이상 소실되고 일부는 겨우 끝에 붙어있었다. 수의사는 자동차 본네트 안에 있던 삐삐의 피부가, 시동이 걸림과 동시에 벨트에 말려들어간 것 같다고 했다. 손상된 범위가 너무 넓어 제대로 회복될지도 알 수 없다고. 그녀는 한숨을 쉬었다. ‘제2의 차차 사건’이 일어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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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끔찍한 일을 당한 건 삐삐가 처음이 아니다. 겨울이 찾아오면 추위를 피해 본네트에 숨어들어 사고를 당하는 고양이들이 부쩍 늘어난다. 과거 삐삐와 같은 사건으로 병원에 오게 된 고양이 ‘차차’는 삐삐보다도 상태가 위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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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 쪽 피부가 전부 뜯겨 수의사조차 안락사를 권유했을 정도였으니. 하지만 차차는 살아줬다. 기적적으로 피부가 전부 회복된 차차는 현재 좋은 가족을 만나 행복한 묘생을 살고 있기까지 했다. 그래서 그녀는 마지막까지 실낱같은 희망을 놓지 않았다. 삐삐도 차차처럼, 기적을 일으켜주길 바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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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생을 선물해주는 건 바로

그래도 삐삐처럼 도움을 받는 고양이는 운이 좋은 편이다. 따뜻한 온기를 찾아서 본네트로 숨어든 고양이들은 뒤늦게 자동차에서 탈출해도 차 뒷바퀴에 치여 즉사하기도 한다. 또는 자동차와 함께 딸려나갔다가 고속도로 한복판에 버려진다. 영역을 벗어나 당황한 아기 고양이들은 도로를 서성대다 교통사고를 당해 짧은 생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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삐삐와 차차를 포함한 수많은 고양이의 생명을 구해온 그녀에게, 자동차 본네트 사고는 예방이 가능한 것이기에 더욱 안타깝게 다가온다.


“그저 출발하기 전 본네트를 똑똑, 두드리는 것만으로도 대부분의 고양이들은 깜짝 놀라 빠져나온답니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무서워서 꼭꼭 숨어있는 녀석들이 있어요. 그럴 땐 번거롭겠지만 시동을 걸고 잠시 기다렸다가 출발하는 것도 좋은 방법인 것 같아요. 여유롭게 출발하는 습관은 자동차 관리에도 좋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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삐삐를 정성스럽게 돌본 그녀의 기도가 통했던 걸까. 2개월간의 사투 끝에 삐삐는 기특하게도 살아줬고, 지금은 퇴원을 준비하고 있다. 너무나도 착하고 얌전한 삐삐는 병원 식구들의 보살핌 속에서 새로운 가족을 만날 준비를 하고 있단다. 비록 흉터는 남겠지만 괜찮다. 그 흉터를 덮고도 남을 행복한 묘생이 삐삐를 기다리고 있으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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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고양이를 구조하다 보면, 우리가 모르는 곳에서 참 많은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물론 모든 생명을 구할 순 없겠지만 그래도 최소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기억하고, 행동했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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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를 구한다는 건 생각보다 거창한 일이 아니다. 하루 중 단 1분이라도 내가 아닌 다른 생명을 떠올리는 것만으로 얼마나 많은 것이 바뀌는지 꼭 기억해 줬으면 좋겠다. 제2, 제3의 삐삐에게 봄을 선물해줄 수 있는 건 바로 우리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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삐삐의 가족을 찾아요!
이름 : 삐삐 | 나이 : 4개월령 | 건강 상태 : 좋음


삐삐의 가족을 찾습니다. 삐삐의 반려인이 되고자 하시는 분은 ‘다음 한강맨션고양이 카페(cafe.daum.net/onroadcat)’나 메일(michacha@hanmail.net)로 연락 부탁드립니다. 구사일생으로 살아난 삐삐에게 행복한 묘생 2막을 선물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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