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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원 ‘아로새기다’

  • 승인 2015-11-17 14:2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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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는 타투와 닮았다
이태원 ‘아로새기다’

긴장되는 순간이다. 내 몸에 너를 새기기 위한 시간. 바늘 끝에 매달린 한 방울 물감이 기나긴 작업의 끝을 말한다. 지나가는 고양이마저 숨을 죽이는 화룡점정의 순간, 수채화처럼 번진 물감이 살갗 위 나비에게 고운 숨을 불어넣는다. 여기는 너울대는 나비가 태어나는 곳. 혹은 나비를 닮은 야옹이들이 반겨주는 곳. 이곳은 고양이가 사는 타투작업실,‘아로새기다’다.

이수빈 사진 박민성 자료협조 차소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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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적 타투의 아름다움
한글 문신 하면 ‘차카게살자’가 생각나는 현실이 안타까웠다. 세상에서 가장 과학적이고 아름다운 언어인 한글. 그리고 부드러운 곡선미의 한국화. 하지만 한국적인 타투가 촌스럽다는 편견에 젖어있는 건 어째서일까. 이태원 타투샵 ‘아로새기다’의 타투이스트 차소정 씨, 그녀의 한국적 타투 작업은 이러한 의문에서 시작되었다.


“한글은 모국어잖아요. 전통화도 그렇고요. 둘 다 우리만의 정서를 가장 잘 담을 수 있는 그릇이라고 생각해요. 그런데 아쉽게도 그것을 모르는 분들이 많아요. 타투는 보통 외국 스타일로 많이 진행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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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과 전통문양 트라이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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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타투'


‘가장 전통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이다’ 그 마음을 항상 새기는 소정 씨가 선호하는 작업 내용 또한 한국적 타투다. 부드러운 곡선의 기왓장과 해태, 하회탈 등 우리 것을 소재로 한 시리즈 연작 경험도 있다고. 흔히 타투 하면 강렬하고 어두운 느낌을 떠올리지만 그녀가 풀어나가는 작품들은 부드럽고 서정적이다. 까만 먹이 천천히 번져 수묵화를 이루듯, 우리 고유의 미를 담은 타투가 남녀노소 많은 이에게 스며드는 것이 타투이스트 차소정 씨의 바람이다.

공감과 위로를 새기다
타투이스트는 누군가에게 평생 가져갈 선물을 해주는 직업이다. 한국적 타투를 소중히 여기는 그녀지만 다른 타투를 터부시하는 건 아니다. 어떤 의미가 담겨있건 모든 타투는 소중하고, 가볍지 않다고 생각한다.


아로새기다엔 사랑하는 반려동물의 모습을 간직하고자 찾아오는 이들도 있다. 유학을 앞두고 팔에 다섯 마리 반려묘를 새긴 사람도 있다고. 차소정 씨는 그들의 마음에 십분 공감한다. 두 마리 반려묘와 함께하는 소정 씨라 더더욱 그렇다.


“반려동물을 떠나보내고 찾아오는 분들은 시술 시작 전부터 눈물이 그렁그렁하세요. 그럴 땐 저도 반려인으로서 마음이 아프죠…. 서로의 동물 이야기를 하다가 친해지기도 해요. 작업을 마친 후에도 기억에 남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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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 냥이’


소정 씨는 그중 가장 인상 깊었던 손님에 대해 이야기했다. 구조하고 입양 보낸 고양이가 잔인하게 잡아먹힌 사건, ‘진이 콩이 사건’의 당사자가 아로새기다를 찾아온 것이다.


“제가 그런 일을 당했다면 무너져 내렸을 것 같아요. 그런데 그분은 자신이 돌봐야 하는 생명들을 위해 어떻게든 마음을 다잡고 싶으셨던 거예요. 그날 새긴 건 ‘생명평화의 무늬’였습니다. 산과 바다, 하늘의 생명이 서로에게 의지해 살아간다는 의미를 가진 문양이지요.”


타투는 과정에도 결과물 못지않은 의미가 있다. 대상에게 공감과 위로를 전달하는 작업이기에. 그래서 차소정 씨는 매일이 귀중하고 묵직하다. 누군가의 인생에 길이 남을 다짐의 순간을 함께하기 때문이다. 타투인으로서, 그리고 반려인으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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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평화의 무늬’


타투와 고양이의 공통점
소정 씨의 고양이 은동이와 망고는 유기묘 출신이다. 구조할 때부터 망고는 뒷다리, 은동이는 앞다리에 각각 장애를 가지고 있었다고. 하지만 활기차게 작업실을 가로지르는 그들에겐 여느 고양이다운 발랄함만 엿보일 뿐이다. 대문 앞 길고양이 급식소엔 밥을 먹으러 오는 고양이 고객도 여섯 마리나 있다. 길고양이의 인식 개선을 위해 꾸준히 사료를 챙기고 TNR을 하는 그녀는 길고양이를 돌보는 일과 자신의 타투 활동에 비슷한 면이 있는 것 같다고 했다.


“한국 고유의 타투를 사랑하는 여섯 타투이스트가 모여 ‘아낙림’이라는 모임을 만들었어요. 타투를 알리기 위해 일부러 탁 트인 대학로에서 합동 전시회도 가졌었는데요. 생각 외로 많은 분들이 호의적으로 관심 가져주셔서 정말 감사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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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견을 앓고 있다는 점에서 타투와 고양이는 닮았다. 그럴수록 양지에 서는 용기가 필요한 것도 공통점이다. 신기하게도 여섯 멤버 모두 유기견, 유기묘를 키우고 있다는 아낙림. 언젠가 타투 플리마켓을 열고 수익금을 유기동물을 위해 기부할 수 있기를 바란다며 그녀는 빙그레 웃었다. 길고양이와 타투, 생소한 듯 닮은 두 존재를 사랑하는 소정 씨는 현재 아낙림의 두 번째 전시 준비에 한창이다.


“최근엔 타투에 호의적인 분들도 많아지고 한국어 레터링도 늘어난 추세예요. 꾸준히 노력하니까 점점 많은 분들이 알아주시는 것 같아 뿌듯해요. 타투든 길고양이든 한순간에 해결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닌 것 같아요. 한 걸음 한 걸음 다가간다면 언젠가는 저희 마음에 공감해주시는 분들이 늘지 않을까요. 그때까지 타투도, 길고양이 돌보는 일도 열심히 해보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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