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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세상에서 고양이가 사라진다면’

  • 승인 2015-11-03 16:37: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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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고양이가 필요한 이유
소설 ‘세상에서 고양이가 사라진다면’

도대체 고양이가 나에게 해주는 게 뭐가 있단 말이야.
아깽이 시절에 길에서 주워져 우리 집까지 오게 된 고양이가 밤마다 하도 뛰고 할퀴고 무는 바람에 정말 잠이 부족해 머리가 터질 것 같았던 날들이 있었다.

결국 새벽에 낚싯대 장난감을 따라 뛰어다니다가 지쳐 잠든 고양이를 물끄러미 바라보면서 나도 그런 생각을 했다. 난 너한테 밥도 주고, 놀아주고, 잠자리도 제공해주는데 넌 나한테 도대체 뭘 해줄 거야? 세상 아무 걱정 없다는 듯이 천진난만하게 천사처럼 자는 것 말고 네가 할 수 있는 게 뭐가 있냐는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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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를 없애면 하루를 살 수 있어


세상에 없어져도 되는 것은 무엇이 있을까. 뇌종양 판정으로 죽을 날이 바로 ‘내일’로 다가온 주인공의 앞에 느닷없이 악마가 나타난다. 악마는 세상에서 무언가를 한 가지씩 없애기로 결정할 때마다 하루씩 살 수 있는 생명을 주겠다며 아주 획기적인 찬스를 제시한다. 30가지를 없애면 한 달을 살 수 있고, 360가지를 없애면 일 년을 더 살 수 있다.

세상의 수많은 쓸모없는 것들을 없애기만 하면 뇌종양 따위 상관없이 원래 수명보다 길게도 살 수 있는 것이다. 결국 주인공은 실제로 몇 가지를 없애기로 결정했고, 그렇게 세상에서 휴대폰과 영화 같은 것들이 없어졌다. 그런 게 없어졌다고 해서 세상에 난리가 나는 일도 없었다. 악마는 이제 제안한다. 내일은 고양이를 없애는 게 어때? 고양이를 없애면 또 하루를 더 살 수 있어.


판타지를 넘나드는 이 허무맹랑한 소설이 세상에서 없애려고 하는 것이 고양이가 아니었다면, 나는 아마 읽던 중간에 책장을 덮고 편의점으로 맥주나 사러 나갔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다소 무리할 정도로 과감한 설정은 정말로 세상에서 휴대폰을 없애고, 그 다음으로는 영화를 없애고, 또 시계를 없애나갔기 때문에 정말로 세상에서 고양이가 없어질까봐 조마조마하게 끝까지 이야기를 따라갈 수밖에 없었다.


하루치의 생명을 얻는 조건으로 세상에서 이런저런 것들을 사라지게 만들던 주인공도 고양이를 없애기로 결정하는 데에는 주저한다. 그에게도 반려묘가 있는 것이다. 그 고양이는 돌아가신 어머니의 고양이기도 하다. 아버지와는 연락하지 않은 지 몇 년이나 지났다. 화목하지 않은 가정이라는 것은 이제 너무나 흔한 사연이라 대단한 이야깃거리도 아니다.

그러나 그럴수록 사람에게는 사랑할 수 있는 무엇이 필요한지도 모른다. 무뚝뚝한 아버지가 집에 돌아와서 말을 걸 수 있는 존재, 사이가 나쁜 아버지와 아들 사이에서 지친 어머니가 때론 마음을 활짝 열고 보듬어줄 수 있는 존재가. 그리고 그의 고양이는 알게 모르게 그 역할을 훌륭하게 해왔다. 심지어 그 자신은 조금도 의식하지 않은 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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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만 할 수 있는 일


누군가와 관계를 맺는다는 것은 나에게 주어진 역할이 늘어나는 것을 의미한다. 이미 나에게 주어진 역할인 좋은 가족 구성원이 되는 것도 실은 어려운 일이라, 새로운 역할을 늘려가는 것이 막막하고 겁나는 순간도 많았다. 차라리 혼자라면, 아무런 기대도 받지 않고 아무런 책임도 질 필요가 없다면 내 몸은 더 가벼워지지 않을까 하고 생각하는 날들이 있었다.


하지만 고양이의 집사가 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고양이에게 제공해주어야 하는 것은 편안한 잠자리와 몇 개의 깃털과 캣닢 쥐돌이, 충분한 음식과 물 정도다. 고양이는 나에게 훌륭한 집사가 되라고 강요하거나, 아버지와 화해하라고 잔소리하지도, 무뚝뚝한 남동생에게 오늘 하루 어땠는지 이야기를 좀 해보라며 닦달하지도 않는 것이다.

물론 그뿐 아니라 잠자고 제 몸단장하는 것 외에는 거의 아무 것도 하지 않는다. 애초에 사람들은 왜 고양이를 키우는 걸까? 아침마다 밥 달라고 시끄럽게 울어대고, 밤이면 우당탕탕 요란하게 뛰어다니고, 키보드 자판을 눌러 쓰고 있던 원고를 날려버리고, 새로 산 액자를 바닥에 떨어뜨리고야 마는 생명체를.


다만 주인공이 도저히 고양이를 사라지게 할 수는 없다고 깨달으며 느낀 것처럼, 놀랍게도 고양이들은 정말로 위로가 필요한 순간을 안다. 엉망진창으로 뛰고 내 손을 물며 할퀴던 철없는 고양이가, 진짜로 내 마음을 다쳤을 때에는 슬그머니 다가와 부드러운 털을 쓰다듬도록 허락해줬던 그 순간을 나 역시 잊을 수 없으니까. 그냥 고양이는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것 자체가 고양이만 할 수 있는 일인지도 모르겠다.

결국 그는 고양이를 없애지 않고 수명을 받아들이는 것을 선택한다. 세상에는 고양이가 필요하고, 역시 나에게도, 고양이는 필요하다.

CREDIT

지유

그림 양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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