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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대 초록리본도서관

  • 승인 2015-09-01 10:4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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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고양이가 기다리는 아지트
홍대 초록리본도서관

지금 생각해보면 어린 시절 나는 길고양이 같았다. 정처 없이 떠돌아다니다 해 질 녘 즈음 무거운 발걸음을 터덜터덜 옮기곤 했다. 아이도 어른도 아녔던 내게 허락됐던 공간이란 고작해야 텅 빈 놀이터뿐. 어른이 된 지금 가끔 생각한다. 이 길 위에 그런 장소가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불안한 어린 아이를 토닥여 줄 어른이 있는 곳. 그리고 차마 말로 못다 할 섬세한 마음은 고양이가 위로해 주는 그런 가게가.

이수빈 사진 박민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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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8 대안 공간
화려한 간판들로 북적대는 젊음의 거리. 하지만 조금만 거닐어보면 정작 머물만한 곳은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괜찮다 싶으면 어김없이 비싸다. 성인인 나도 느끼는데 하물며 청소년들은 오죽할까. 그런 의미에서 여긴 도심 속 오아시스 같은 곳임이 틀림없다. 홍대 입구 역에서 10여 분간 걸으면 도착하는 ‘초록리본도서관’. 벽도 책장도 싱그러운 초록빛인 이곳은 1018 청소년들을 위한 문화공간을 표방한다.
“PC방이나 노래방 말고도 우리 친구들이 편히 머물러 갈 곳이 있었으면 좋겠다 싶었습니다. 부담 없이 찾아와 친구들과 함께 책도 읽고, 장래에 대해 상담도 할 수 있는 대안 공간을 만들고자 했어요.”
초록리본도서관의 관장 박현홍 씨는 아동 청소년을 돕는 NGO 단체 ‘러빙핸즈’의 대표다. 러빙핸즈는 한 부모 조손가정 아이들을 꾸준히 멘토링 해오고 있는데, 그 과정에서 청소년을 위한 공간의 필요성을 절실히 느꼈다고. 그렇게 초록리본도서관은 2013년 10월 9일 한글날에 뜻 깊은 첫발을 내딛게 되었다. 정부 지원 없이 100% 시민들의 후원으로 이끌어가는 형태니만큼 초반 운영이 순탄치만은 않았다. 하지만 취지에 공감해주는 많은 후원자들 덕분에, 초록리본도서관은 지난 2년 동안 아이들을 위한 문화 공간으로써 자리를 지킬 수 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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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린 제법 잘 어울려요
도서관 하면 무거운 침묵을 상상하게 되는 게 보통. 하지만 초록리본도서관에선 자유롭게 서로의 마음을 나눌 수 있다. 이곳을 찾는 이들은 빼곡히 꽂힌 책들 사이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 도중에 배가 고파도 걱정할 필요 없다. 성인은 5,000원, 청소년은 1,000원짜리 한 장으로 공정무역 커피와 초콜릿, 유기농 우유 등 건강한 간식을 맛볼 수 있다.
벙커 같은 다락방 안에서 배를 깔고 누워본다. 금세 내 방 같은 편안함이 밀려든다. 한참 독서에 열중하고 있는데 다리 쪽에 부드러운 무엇인가가 느껴진다. ‘너였구나.’ 꼬리를 치켜세운 채 아는 척 해오는 녀석. 초록리본도서관의 마스코트, 벵갈 고양이 ‘초록이’다.
“도서관 개관 준비에 한창이던 어느 날, 부부가 아이 때문에 키우기 힘들어졌다며 고양이 한 마리를 데려왔어요. 그 녀석이 초록이입니다. 개관부터 함께한 도서관의 마스코트죠. 고양이와 책이 제법 잘 어울리지 않나요?”
사람을 좋아하는 초록이는 오는 이마다 달려가 몸을 비비며 인사를 건넨다. 전 집에서 영역 다툼에 시달렸던 녀석은 자신을 사랑해주는 이들로 가득한 이곳에서 비로소 안정을 찾았다. 평소 스피커 위에서 식빵을 굽는 초록이는, 때로 사람들의 무릎이나 뜨끈한 노트북 위를 점거하여 그르렁대기도 한다고. 그런 초록이를 보러 일부러 찾아오는 이도 있다고 하니, 초록이는 ‘듀이’ 못지않은 어엿한 사서 고양이로서 그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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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과 아이 모두를 위한
초록리본도서관에선 담소와 독서 외에 보드게임 대회, 벼룩시장 등 재미난 프로그램에 참여할 수 있다. 하지만 1018 대안공간이라고 해서 아이들만이 주인공은 아니다. 초록리본도서관의 모든 활동엔 어른도 함께한다.
“초록리본도서관은 성인들에게도 열려 있습니다. 동아리 같은 경우 성인 회원이 멘토로서 아이들을 도울 수 있어요. 저자와 이야기 나눠볼 수 있는 북 콘서트나 수업 등 재능 기부 강의도 준비되어 있고요.”
평소 접점이 없던 어른과 아이는 초록리본도서관에서 만나 마음을 터놓는다. 그 과정에서 아이는 든든한 멘토를, 어른은 과거의 나와 닮은 멘티를 얻게 되는 것이다. 어른과 아이가 서로를 북돋고 이끌어주는 모습. 현홍 씨가 추구하는 초록리본도서관의 이상적인 풍경이다.
“아이들에겐 꾸준히 관심 가져줄 어른들이 필요해요. 앞으로도 초록리본도서관을 통해 성인과 아이들이 함께 꾸릴 수 있는 다양한 프로그램을 기획할 예정입니다.”
한 아이의 멘토가 되는 것이 부담스럽다고? 그렇다면 딱히 무언가를 하지 않아도 상관없다. 도서관에 찾아와 차 한 잔 마시는 것만으로도 아이들에게 기부되니까. 초록리본도서관의 문은 청소년들은 물론이고 이곳 가치에 동참하는 성인 누구에게나 활짝 열려있다. 오늘은 늘 가던 비싼 카페가 아닌, 책과 고양이가 기다리고 있는 착한 아지트에 발길을 옮겨보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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