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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 작가 이용한

  • 승인 2015-07-01 12:4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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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지만 보지 못했던 존재의 기록
고양이 작가 이용한

고양이를 키우지 않는 사람이 생각하는 고양이는 어떤 모습일까. 가끔 마주치는 길고양이는 두려움 가득한 눈빛을 보내거나, 어디론가 후다닥 도망쳐 버릴 뿐이다. 어쩌면 그래서 더 무심하고 냉정해지는 건 아닐지. 그들의 사랑스럽고 장난기 어린 면을 본다면, 그들에게도 분명 희로애락이 있다는 걸 안다면, 조금이나마 더 따듯한 시선을 갖게 될 것이다. 이용한 작가의 신작 <인간은 바쁘니까 고양이가 알아서 할게>는 고양이라는 ‘생명’의 ‘삶 다운 삶’을 느끼게 해 준다는 점에서 더욱 의미 깊다.

글 이지희 사진 박민성 자료협조 이용한(www.facebook.com/binko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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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태까지 내셨던 고양이 책들과는 분위기가 사뭇 다른 것 같아요
전작에서는 주변에 사는 길고양이들이나 고양이의 천국이라 불리는 나라들의 모습을 보여드렸는데요. 이번에는 한때 길고양이였긴 했지만, 시골 마당에서 자라는 고양이들의 소소한 일상을 담아 봤습니다. 그동안 제 책을 보고 슬퍼서 우셨다는 분들이 많았어요. 이번 만큼은 웃다가 눈물 나게 만들지언정, 아프고 고통스러워서 울게 하진 말자고 생각했어요. 이 책을 보는 사람들이 미소 짓고 위안 받길 바랬습니다. 그래서 내용이나 분위기를 좀 더 유쾌하게 만들려고 노력했지요.

불편한 얘기는 일부러 안 꺼내신 건가요?
그런 건 아니에요. 자연에 파묻혀 있다 보니 대부분의 삶이 낭만적이거든요. 다만 조금 더 역점을 둔 부분이 있다면, 어린아이와 고양이들이 귀엽게 살아가는 이야기입니다. 책의 배경이 충북 괴산에 있는 처가인데, 여섯 살짜리 아들이 그곳에서 크고 있거든요. 저는 일주일에 한 번씩 내려가서 아들도 보고 고양이 사진도 찍어요. 그러면서 아들이 고양이들과 자연스럽게 어울리는 장면을 눈여겨 봤습니다. SNS에 올렸더니 사람들 반응이 굉장히 좋더군요. 둘이 친구처럼 지내는 모습이 묘한 감동을 주는 것 같아요. 크게 의도한 건 아니지만, 아들과 고양이의 우정을 사진으로 기록해 보자는 생각은 어느 정도 갖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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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와 아드님이 함께 찍힌 사진들이 정말 아름다웠어요. 아드님은 고양이를 어떻게 인식하고 있나요?
사진으론 예쁜 장면만 있지만, 어린애다 보니 고양이를 괴롭힐 때도 있어요. 그래도 이 세상에는 고양이라는 동물이 있고, 사람들이 고양이에게 밥을 줘야 한다는 인식을 가지고 있더라고요. 어쩔 땐 자기가 먹다 남긴 빵을 가져다주기도 해요. 그 나이 땐 그것만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마당 고양이들을 돌보고 계신 장인어른, 장모님은 원래 고양이를 좋아하셨나요?
처음부터 그러셨던 건 아니에요. 아무래도 제 아내나 아들까지 고양이와 어울리다 보니 주변 분위기에 물드신 것 같습니다. 풀 뽑으면 고양이들이 꼭 옆에 와서 몸을 비비는데, 처음엔 만지지 않으셨던 장인어른도 나중엔 쓰다듬으시더군요. 자식에게나 동물에게나 우악스러운 면도 있었지만, 고양이들한테만큼은 다정다감하게 변하셨습니다.

그러고 보니 작가님은 언제부터 고양이를 좋아하신 건지 궁금해요
저도 예전에 고양이에게 냉담한 편이었어요. 발정이 나면 시끄럽기도 하고, 학대한 건 아니지만 인식은 안 좋았죠. 그런데 8년 전 어느 날엔가, 아내가 갑자기 전화해선 집 밖으로 나오라고 했습니다. 왜 그러나 하고 갔더니 누군가 버린 은갈색 소파 위에 어미 고양이와 새끼 다섯 마리가 누워 있더군요. 달이 휘영청 밝은 밤이었는데, 마치 조명처럼 걔네들을 비추고 있었어요. 달빛 속에서 오물오물 젖을 빠는 아기 고양이들의 모습이 정말 감동적이었고 한편으론 눈물이 나기도 했습니다. 가까이 가서 보려 했더니 도망을 쳤지만, 며칠간 그 장면이 눈만 감아도 떠올랐어요. 그런데 열흘 후에 그 고양이들이 다시 나타났습니다. ‘저 어린것들은 뭘 먹고 사나’하는 걱정이 불쑥 들더군요. 음식을 챙겨 주기 시작했는데, 맛있게 먹는 모습 보면 행복하기도 하고 측은지심도 들고. 그러다 사진까지 찍게 된 겁니다. 당시만 해도 여행 작가였는데… 그날의 장면이 저를 지금 여기까지 오게 한 거죠.

작가님 사진 속 고양이들은 유난히 예뻐 보여요. 비결이 뭔가요?
가능하면 어느 정도 고양이와 교감을 나눈 후에 사진을 찍자는 생각입니다. 길고양이 사진을 찍을 때도 밥을 주면서 관계 맺기를 한 애들은 태도나 눈빛 자체가 다르거든요. 고양이에게 신뢰받지 않고는 신뢰할 만한 고양이 사진을 찍을 수 없지요. 마당 고양이들 같은 경우엔 사람과 같이 사니 친밀감이 더 높고요. 이번 책 보고 ‘고양이들이 모델 노릇을 잘한다’고 하시는 분들이 많은데, 그럴 수밖에 없는 상황인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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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묘한 순간포착 사진은 놀라울 정도예요. 카메라를 손에서 안 놓으시나요?
시간을 엄청 투자하는 것처럼 생각될 수 있지만 그렇진 않아요. 보통 처가에 1박 2일간 머무는데요, 내려가 있는 내내 아들과 놀아 줘야 해요. 놀이방도 가고 외식도 하다 보면 사진 찍을 여유가 거의 없죠. 이틀간 기껏해야 한 시간 정도 찍습니다. 그것도 아내 눈치 봐 가며 짬짬이 하는 거예요(웃음). 제가 계속 사진만 찍으면 아내 혼자 애를 보게 되잖아요.

아들 보시랴 고양이 보시랴, 거기에 눈치까지 보시느라 바쁘시겠어요(웃음). 워낙 좋은 사진이 많아 고를 때도 고심하셨을 것 같은데요
아… 정말 어려웠죠. 여태까지 찍은 고양이 사진이 2TB(테라바이트) 정도 되는데요, 그중 반이 시골 사진이에요. 거기서 삼백여 컷을 고르느라 엄청 힘들었습니다. 한 가지 기준은 페이스북이나 트위터에서의 반응이었어요. 저는 재밌다고 던졌지만, 사람들은 냉소적으로 보는 경우가 있거든요. 물론 제 마음에 든 사진이 일순위이긴 했습니다. 이 사진만큼은 사진 자체로 좋다 생각하는 건 아무리 호응이 없어도 실었어요.

어려운 질문이겠지만, 어떤 사진이 제일 마음에 드시는지 궁금합니다
정말 멋진 모습을 우연히 봤을 때가 가장 기억에 남아요. 그중 하나가 장독대 사진입니다. 고양이 대여섯 마리가 각자 장독 하나씩 차지하고 앉아 있는 장면이에요. 사실 확대하면 초점도 살짝 나갔고 구도도 흔들렸지만, 워낙 힘들게 만난 상황이라서요. 고양이들이 우다다를 하거나 서로 뛰어넘는 장면들도 보통 사람들은 보기도, 포착하기도 어렵지요. 또 아들과 고양이가 교감하는 사진들도 인상 깊었습니다. 둘 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존재들인데, 그럼에도 서로 교감하고 맞춰가는 행동을 해요. 예를 들어 둘이 다정하게 걸어가는 산책 사진들이 그렇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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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사진은 한 폭의 그림 같더라고요
일부러 시켜서 찍은 거 아니냐는 질문도 종종 받아요. 만약 괴롭혀서 나올 수 있는 장면이라면, 가끔 그러고 싶을 때도 있을 것 같습니다. 정말 얻기 어려운 사진들이니까요. 하지만 고양이한테 따라 걸어 보라고 한들 고양이가 그렇게 할까요. 그저 우연의 일치이지요.

사진도 사진이지만 글도 정말 재미있어요. ‘냥드립’이라고 표현하셨는데, 어디서 아이디어를 얻으시는 건가요?
고양이의 상황과 제 냥드립이 잘 맞아떨어진다는 말씀들을 많이 하시는데요. 몇 년 동안 트위터를 사용했던 게 도움이 된 것 같습니다. 140자 안에 충분한 설명을 넣으면서도 관심을 끌려면 최대한 광고 카피처럼 써야겠더군요. 상황을 좀 코믹하게 풀다 보니 냥드립이 나올 수밖에 없었어요. 처음엔 머리 짜내서 생각했지만 나중엔 자연스럽게 재밌는 문구들이 나왔습니다.

평상시에 재치 있다는 얘기를 많이 들으시는지요?
주변 사람들은 저를 과묵하고 따분한 사람으로 알고 있어요. 진중하다는 말을 많이 듣죠. 아내만 항상 제가 제일 재미있다고 얘기해요. 왜 저랑 사귀게 됐냐고 사람들이 물어보면 재밌어서 그랬다고 하는데, 그럼 다들 당황스러운 표정으로 쳐다보고 그래요.

이 책 보면 조금은 생각이 바뀌실 수도 있겠네요. 책 제목도 귀엽고 독특한데요
어느 날 아내하고 저녁 먹으면서 대화하다가 갑자기 떠오른 제목이에요. 고양이 두 마리가 같이 장난치면서 낚시질하는 사진을 보고 만든 건데, 왠지 책과 어울리더군요. 여러 가지 후보들이 있었지만 제일 나은 것 같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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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덮고 나니 ‘이곳이 고양이들의 천국이구나’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환경적으로 좋고, 고양이들이 아이와도 장독대와도 잘 어울리다 보니 이상향처럼 느껴지나 봐요. 그런데 오히려 시골이 도시보다 고양이들을 함부로 대하는 경향이 있어요. 모종 한두 개 파헤친 것만으로도 죽어 마땅한 존재가 되죠. 물론 고양이가 잘못한 거지만 그렇다고 죽일 정도의 잘못은 아닌데…. 도시에서는 밥 주지 말라고 경고라도 하지만 시골엔 그런 게 없어요. 말도 없이 쥐약을 놓습니다. 생명이라고 생각하지 않으니 죄책감도 없고, 거기에 이의를 제기하는 것 자체를 불경스럽게 받아들이는 분위기예요.

사진 속에서는 평화롭게만 보였는데, 농촌 길고양이의 삶도 녹록치 않군요
시골에는 캣맘이나 캣대디가 전무합니다. 제가 처음 고양이를 알게 된 때와 비교해 보면, 도시 사람들은 고양이에 대한 인식이 꽤 좋아진 편이에요. 하지만 농촌은 예나 지금이나 달라진 게 없어요. 개인적으로는 오히려 나빠진 것 같기도 해서 안타까워요. 경제가 어려워지면서 예전 같으면 사다 먹을 농산물을 시골집에서 올려보내거든요. 그러다 보니 농사에 조금이라도 해가 되면 전보다 더 예민하게 반응합니다.

사람 형편도 어려운데 어떻게 고양이까지 챙기냐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죠
사람도 살기 힘든 거 맞지요. 근데 그건 마음에 달린 듯합니다. 제가 인도를 여행했을 때 일입니다. 캘커타 시장에 갔는데 입구에서 사람들이 고양이를 부르더군요. 무슨 일인가 싶어 가 보니 소위 빈민촌이 나왔습니다. 그런데 한 아주머니가 시장에서 닭 내장을 얻어 와 고양이들에게 먹이는 거예요. 어떤 사람은 생선 내장을 주고 있고. 하루 한 끼 먹는 사람들이지만 측은지심을 가지고 동물을 보살피는 거지요. 경제적 궁핍함하고는 상관이 없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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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에서는 길고양이들이 사람을 피하지 않는다고 하죠
여행 책 작업하면서 일본·대만·모로코·라오스 등을 다녀봤는데, 거기 사람들도 고양이를 위해 특별히 뭘 하진 않아요. 하지만 학대라는 게 거의 없고 고양이들이 돌아다닐 자유가 있죠. 밥 주는 사람들도 많고요. 쓰레기봉투를 뜯고 발정 소리를 내는 건 전 세계 고양이가 마찬가지인데, 유독 한국에서만 찬밥 신세입니다. 분명 우리나라도 고양이에 대한 인식이 좋아지고 있긴 하지만, 도시와 농촌을 전반적으로 고려해 보면 아주 많이 변한 것 같지 않아요.

8년째 고양이 작가로 활동 중이신데, 그때와 지금을 비교했을 때 가장 바뀐 부분은 무엇인가요?
대중매체가 급속도로 달라졌다는 겁니다. 광고에 고양이가 등장하고, 드라마 제목이나 영화에도 고양이가 나오지요. 길고양이에게 우호적인 기사도 보이고요. 이런 건 고무적인 변화라고 생각합니다. 앞으로 더 많은 고양이 작가들이 생겨서 관련 연극·영화·출판 등을 활성화할 필요가 있어요. 그래야 사람들의 관심을 더 집중시키고 끌어올릴 수 있으니까요.

SNS에 고양이 사진 올리시는 분들도 많아진 것 같아요
정말 권장하고 싶은 일입니다. 분위기를 한꺼번에 조성하는 게 중요한데, 그건 고양이 작가 혼자 할 수 있는 게 아니거든요. 고양이를 좋아하는 모든 사람들이 함께 분위기를 끌고 나가야 해요. 휴대폰 카메라로 찍은 초점 나간 사진이라도 괜찮아요. 사람들이 고양이에게 관심을 갖도록 사진을 많이 올렸으면 좋겠습니다.

작가님의 사진도 계속 볼 수 있겠군요. 차기작도 계획하고 계신가요?
여태 고양이 책들을 연작으로 냈다 보니, 이번에도 최소 두 권은 시리즈로 해야겠다고 막연하게 생각하고 있어요. 이런 유쾌한 이야기들을 한 권 정도는 더 보여 주고 들려주고 싶은 마음이 있습니다.

고양이에게 무관심한 사람들이 작가님 책을 보면 좋겠어요. 고양이에게 이런 명랑한 모습이 있다는 걸 알아줬으면 하거든요
저도 고양이를 냉대했던 사람들이 제 책을 보고 고양이에게 관심 갖고, 최소한 고양이를 학대하는 편에 서진 않기를 바랍니다. 물론 고양이를 좋아해 주면 더 기쁘겠지만, 그저 해코지만 하지 말았으면 해요. 사람과 고양이의 공존을, 다 같이 사는 방법을 한번 모색해 보자는 메시지를 남기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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