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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젠 괜찮아. 다시 시작하자!”

  • 승인 2015-07-01 12:1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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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젠 괜찮아. 다시 시작하자!”

?유기묘 햇살이 구조기?

한 캣맘이 협회에 구조 요청을 했다. 온몸의 털이 엉킨 장모종 고양이가 심하게 침 흘리는 모습으로 계속 목격되고 있다는 전화였다. 페르시안 친칠라로 추정되는 이 고양이가 보이기 시작한 건 작년부터라고 했다. 집을 나왔거나 버려졌을 거라 생각하며 한두 번 밥을 줬는데, 전쟁 같은 거리 생활을 하며 몰골이 점점 형편없어졌다고. 품종묘로 집 안에서 곱게 살다 험난한 길 위로 내몰린 고양이는 제정신이 아닐 터였다. 사람에 대한 경계가 심할 것은 물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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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 동안의 사투


현장에 도착해서 고양이를 보자 “아!” 하고 탄식이 절로 나왔다. 고양이의 상태는 그야말로 처참했다. 전화로 들었을 땐 치주염이나 구내염 감염이 예상됐지만, 음식에 반응하는 태도나 늘어진 침을 보았을 땐 턱뼈가 으스러졌을 거란 추측이 들었다. 초조함은 배가 되었다.

보통 길고양이들은 오토바이나 차에 치이거나, 사람에게 구타를 당한 경우 턱뼈가 부러지고 엄청난 고통으로 인해 아예 먹지 못하게 된다. 그러다 보니 구조를 위한 미끼 음식에도 반응이 없고 체력은 빠르게 악화돼 구조하기가 더욱 힘들어진다.

포획용 덫을 놓기 위해 주민들의 협조를 요청하다가, 그중 한 사람으로부터 이 고양이의 슬픈 묘생에 대해 듣게 됐다. 2년 전쯤 일이었다. 키우던 고양이가 발정이 나 집을 나갔다며 찾아다니던 청년이 있었다고 한다. 몇 개월 뒤 고양이가 발견됐지만, 주인이 더는 찾지 않는다고 해 그렇게 잊혀졌다고.

주민은 전단지 속 고양이가 하도 예뻐 사진을 찍어 놓았다며 핸드폰을 내밀었다. 청소년기쯤 되어 보이는 고양이의 앳된 모습이 담겨 있었다. 이토록 예뻤던 아이가 저렇게 비참하게 변했다니, 두 번의 겨울을 힘겹게 버텨내며 살고 있었다니…. 울컥하는 감정이 마음속에서 요동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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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내 품에 안은 고양이


고양이는 낯선 사람들의 출현 때문인지 한층 경계가 심해졌고 자꾸만 모습을 감췄다. 모여드는 주민들에게 잠시만 멀리 떨어져 달라고 양해를 구했다. 총 세 개의 덫을 설치한 뒤 차 안에 숨어 고양이의 움직임을 관찰했는데, 참치 냄새를 못 이긴 고양이가 몇 번의 망설임 끝에 통덫 근처로 다가갔다.

그런데 고양이의 몸이 반쯤 덫 안에 들어간 순간,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졌다. 동네 아저씨가 도우려는 마음에 그만 미리 끈을 당겨 버려 고양이를 놓치고 만 것이다. 고양이의 경계심은 최고조가 되어 담벼락 위에서 한 발자국도 내려오지 않았다. 그렇게 3일이란 시간이 흘렀다.


구조 시도 사흘째 되던 날, 다시 포획을 위해 출발하며 제발 오늘만큼은 구조에 성공해 골든타임을 놓치지 않기를 기도했다. 이제 정말 시간이 없었다. 고양이는 며칠 전보다 훨씬 더 기력이 없는 모습이었는데, 얼굴 근처에 파리 떼가 날아다니고 있었다. 파리는 고양이 구조에 있어 가장 무서운 존재. 괴사 부위에 알을 낳아 구더기가 살을 파먹으면 염증 수치가 급격히 올라가기 때문이다. 오늘이 마지막 기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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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매일매일 방문한 덕분인지 고양이의 경계심은 조금 풀어진 상태였다. 힘이 빠져서 그런지 아주 가깝게 접근하는 것도 허락했다.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캣닙·마따따비·참치캔 국물 등 고양이가 좋아할 만한 냄새를 몸에 잔뜩 발랐다. 그렇게 마침내 고양이의 얼굴까지 만질 수 있었다.

사실 고양이를 손으로 잡는 구조는 사람도 고양이도 다칠 위험이 커서 절대 하면 안 되지만, 상황이 상황인지라 망설일 틈이 없었다. 숨겨 놓았던 담요를 조심스럽게 꺼냈고, 고양이가 경계를 늦춘 순간 담요로 덮어 안아 버렸다. 고양이는 얼마 남지도 않은 힘을 쥐어짜며 아주 잠깐 반항했다.


“고양이 잡았어!”라는 외침에 숨죽여 구경했던 사람들이 달려왔다. 삼삼오오 모여 그간의 안타까움을 이야기하며 계속해서 고마움을 표한 주민들. 부디 지금의 마음으로 다른 길고양이들도 따듯하게 바라봐 주시길 부탁드린 후 동물병원으로 출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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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살이의 두 번째 묘생


품종묘들은 풍성한 털 때문에 겉으론 괜찮아 보이지만, 구조한 후에 살펴보면 앙상한 뼈뿐이다. 이 고양이 역시 예전엔 건강했다는 주민들의 말이 무색할 만큼 아주 많이 말라 있었다. 털은 마치 소용돌이처럼 엉켜 있었는데, 이런 털 뭉치는 고양이가 다리나 척추를 펼 수 없게 만들어 위험하다. 항문이나 생식기를 막으면 요독증이 유발돼 고양이가 죽음에 이르기도 한다. 사람이 인위적으로 만들어 낸 품종묘들의 삶이 새삼 측은해지는 순간이다.


본격적인 검사에 들어간 후, 더욱 충격적인 이야기를 들었다. 턱뼈가 으스러진 게 아니라 혀가 반이나 잘려 있다는 것. 혀끝은 이미 괴사된 상태였다. 우선 탈수 교정이 시급하고 염증 치료도 함께 진행해야 한다는 진단이 내려졌다. 고양이는 지쳤는지 그저 눈을 감고 있었다. 눈꼬리가 처져서일까, 이따금 눈망울을 끔뻑거리는 모습이 유난히 애잔했다. 나는 무릎을 꿇고 고양이와 눈높이를 맞췄다. 그리고 몇번이고 말해 주었다.


“절대 포기하지 마. 힘든 건 다 끝났어. 맛있는 음식 배불리 먹으며 요양하고, 다 나으면 좋은 엄마 만나자. 우리가 널 행복하게 해 줄게. 이제 괜찮아. 다시 시작하자!”


고양이의 이름은 ‘햇살이’라 지었다. 푸른 5월의 햇살처럼, 맑고 영롱한 연둣빛 눈동자를 가진 햇살이. 그 이름처럼 반짝반짝 빛나는 삶을 살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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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살이처럼 구조되는 고양이들을 위해 한국고양이보호협회(www.catcare.or.kr)의 후원 회원이 되어 주세요. 다친 길고양이들이 치료받고 학대당한 고양이들이 새 삶을 찾을 수 있도록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CREDIT

글 사진 한국고양이보호협회 박선미 대표(www.catcare.or.kr)

한국고양이보호협회의 치료, 구조 담당으로 대한민국 길고양이의 안위와 올바른 캣맘 문화, 길고양이의 인식 변화를 위해 활동하며 구조된 유기묘의 입양을 위한 쉼터를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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