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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케 살아내서 ‘용이’랍니다

  • 승인 2015-05-04 09:4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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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생 2막

용케 살아내서 ‘용이’랍니다

그날은 평소와 다를 바 없이 아주 평범했다. 현관문 앞에 놓인 수상한 통을 발견하기 전까지는 말이다. 이게 뭔가, 뚜껑을 열었다. 배설물로 더러워진 휴지와 신문지, 그 속에서 무언가 꿈틀거렸다. 내 손가락 끝의 촉감이 사지에 내몰린 새끼 고양이를 찾아냈다. 나는 쓰레기처럼 버려진 용이를 가슴에 품었다. 작은 심장이, 있는 힘을 다해 숨을 토해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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납치된 아기 고양이의 운명


용이의 반려인 남영미 씨가 처음 본 용이의 모습은 말 그대로 처참했다. 온몸의 살갗이 빨갛게 부어올라 있었고, 하반신은 헐어서 알아보기 힘든 상태였다. 그대로 숨을 멈춘다고 해도 이상할 게 전혀 없었다.


“분명 어미 고양이가 함께 있었을 텐데, 어린 학생들이 멋대로 데리고 온 게 아닐까 싶었습니다. 생후 2주 정도였기 때문에 수시로 우유를 먹이고 배변을 도와줘야 하는데 그냥 방치한 모양이에요. 홀쭉한 몸이 설사에 범벅이 돼 있었죠. 제가 동네 길고양이들을 돌본다는 걸 알고 용이를 저희 집 앞에 버리고 간 것 같아요.”


영미 씨는 용이가 죽을 거라고 생각했단다. 건강해 보이는 새끼고양이도 갑자기 사망하는 일이 종종 있는데, 하물며 산송장 같던 용이는 어땠겠는가. 그런데 이 녀석, 젖병을 힘차게 빨았다. 살겠다고, 살고 싶다고 질긴 생명이 몸으로 말하고 있었다. 영미 씨는 하루에 두세 시간씩 쪽잠을 자 가며 우유를 먹였다. 그렇게 3일이 흘렀다. 몸에 살이 붙고 다리에 딱지가 앉았다. 용이의 생명은 생사의 경계선에서 하루하루 삶 쪽으로 가까워졌다. 용이는 버텨냈다. 일 년 반이 흐른 지금, 용이는 몸무게 8.5kg의 건장한 체구를 자랑하는 성묘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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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제국이니?


용이가 건강을 되찾게 되자 더 좋은 집으로 입양을 보내면 어떨까하는 마음도 들었다는 영미 씨. 하지만 아기처럼 품에 안고 애지중지 돌본 고양이를 다른 사람에게 맡기기란 어려웠다. 사실, 용이에게 유난히 마음이 간 이유가 또 있었다. 용이의 얼굴에서 ‘제국이’를 봤기 때문이다.


“제국이는 용이처럼 어릴 때 저희 집에 왔어요. 4개월 안 될 무렵 복막염으로 떠난 고양이지요. 용이가 제국이를 무척 닮았어요. 털색도 같고 얼굴 쪽 무늬도 비슷하고. 제국이가 살아서 돌아온 게 아닐까 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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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까지나 지켜 줄게


그렇게 용이는 영미 씨의 가족이 되었다. 용이 묘생의 제 2막이 시작된 것이다. 그런데 참 순탄치 않은 묘생이다. 용이는 또 한 번의 죽을 고비를 넘겨야 했다. 이번에는 급성 폐렴. 2차 동물병원에 데려갔을 땐, 이미 폐의 육십 퍼센트가 망가진 상태라고 했다.

“병원에서는 살기 힘들 것 같다고 했어요. 흉수가 차서 검사했더니 복막염이랑 비슷한 염증 반응이 나왔습니다. 잘못되는 줄 알고… 무섭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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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도 용이는 처음처럼 두 번째 묘생의 끈을 놓지 않았다. 먹고 또 먹으면서 버텼고, 살아냈다. 비록 평생을 폐 한 쪽으로만 숨을 쉬어야 하고 심하게 뛰면 호흡이 가빠지지만, 용이에게 이런 것쯤은 상관없다. 여전히 씩씩하게 잘 살고 있다. 용이의 묘생 2막은 영미 씨가 지켜주었다. 생명에 대한 존중이 있어 가능한 일이었으리라.


“무슨 일이든 밝게 생각하려고요. 오래 전의 용이를 생각하면 마음만 아프잖아요. 어차피 저를 만난 순간 삶이 바뀐 건데 과거에 얽매일 필요가 있을까요? 저도 캣맘이라서 길고양이나 유기묘를 구조해서 입양 보내는데 그럴 때도 마찬가지예요. 너무 슬프지 않게, 있는 그대로 보려 합니다. 그냥 앞으로 잘 살면 되는 거니까요.”?


CREDIT

이지희

사진 박민성

자료협조 남영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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