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ERVIEW
특별한 고양이의 소소한 일상
뇌성마비 고양이 미래 이야기
“저는 고양이가 아니라 사람이니까 미래 아빠가 아니죠. 아저씨라고 얘기합니다.” 툴툴대듯 말하면서도 휴대폰 첫 화면은 미래 사진으로 해 놓은 이 남자, 뇌성마비 고양이 미래의 아빠… 아니 아저씨인 김혁 씨다. 온종일 바닥에 누워 있는 미래의 시선이 궁금해, 같은 위치와 각도로 카메라를 놓고 촬영해 보기까지 하는 그. 이 정도면 호칭이 무슨 의미가 있으랴. 사진 한 장에서도 애정이 뚝뚝 묻어나는데 말이다.
미래와 5년째 같이 살고 계시죠. 처음 미래 보셨을 때는 많이 놀라셨을 것 같아요
미국 출장 중에 아내의 전화를 받았어요. 제 딸 진아가 고양이를 데리고 왔는데, 서지도 앉지도 못한다더군요. 평소 고양이를 키우자고 조르던 참이었는데, 마침 미래가 온 거죠. 우리 집에서 기르는 건 안 된다고 잘라 말했습니다. 보호소에 데려다주라고. 저는 그 당시 동물들이 보호소에 가면 잘 먹고 잘사는 줄 알았거든요. 안락사요? 생각도 못 했죠.
어쩌다 마음을 바꾸게 되신 건가요?
아내가 어디 보낼 상황이 아니라고 말했어요. 와서 보니까, 말 그대로 똑바로 서 있지도 못하는 고양이더군요. 그런 애를 어떻게 하겠어요. 그냥 데리고 살아야지요.
입양 결심하기까지 고민되지는 않으셨어요?
입양을 하고 안 하고 결정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선택의 여지가 없었어요. 딱 하룻밤 생각했는데요, 우리도 싫어서 보낸 애가 동물 보호소에 가면 천덕꾸러기밖에 더 되겠어요. 그러다 죽겠구나 싶더군요. 만약 멀쩡한 고양이였다면, 주변에 기르고 싶은 사람 있는지 알아보라고 했을 거예요.
그래도 장애동물 입양한다는 게 쉽지 않은데, 큰 용기를 내셨네요
다른 사람들도 아마 그렇게 했을 거예요. 제가 특별한 건 아닌데 대단하다거나 미래가 운이 좋다는 이야기를 많이 듣습니다. 글쎄요, 우리 집 식구들이 남들보다 조금 더 측은지심이 있나 보지요. 크게 의미 부여는 안 하려고 합니다. 장애를 특별하게 생각하지 않는 게 중요한 듯해서요. 물론 측은지심이 동기유발은 되겠지만, 자칫 잘못하면 ‘내가 우월해서 봐 준다’는 느낌이잖아요. 측은지심에서 시작해 배려로 이어지는 게 맞는 것 같습니다. 배려는 희생이 담보되어야 하거든요. 제가 미래보다는 먹이를 쉽게 구하고, 미래에게 내어 줄 공간도 가지고 있으니까. 조금 불편한 부분이 있어도 감수해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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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를 만난 첫날부터 지금까지 블로그에 ‘뇌성마비 고양이 미래 이야기’를 연재하고 계시죠?
스스로 책임감을 느끼기 위해서 하는 일이에요. 딸한테는 ‘싫증 났다고 장난감처럼 버리지 말라’고 다짐을 받았어요. 저는 제 블로그에 사람들이 많이 들어오니까 미래 이야기를 일기처럼 쓰겠다고 했습니다. 공개적으로 선언한 셈이죠. 그러면 나중에 어디 갖다 버렸다고 할 순 없으니까요. 일주일에 한 번, 많으면 두 번 글을 올리는데 4~5일 동안 잠잠하면 메일과 쪽지로 ‘미래 잘 있느냐’, ‘어디 아픈 건 아니냐’ 연락이 옵니다(웃음).
꾸준히 글 쓰고 사진 찍어서 올리는 게 쉽지 않으실 텐데요
약간 후회한 적도 있습니다. 특히 작년 몇 달 동안은 사업이 힘들었는데, 그런 상태에서는 의무처럼 느껴지더라고요. 그렇지만 기다리시는 분들이 많고 저도 소소한 이야기를 들려드리고 싶어요. 재미있기도 해서 취미처럼 된 것 같습니다.
미래가 오고 나서 여러 가지 변화가 있었네요
집사람이 저한테 많이 유해졌다고 하더라고요. 사실 제가 원칙적인 면이 있어서 틀린 건 꼭 짚고 넘어가거든요. 꼬장꼬장하다는 말을 많이 들었죠. 그런 면이 미래가 온 후로 많이 누그러졌습니다. 예전엔 애들 기저귀 가는 것도 싫어했어요. 근데 미래 똥은 제가 치웁니다. 고양이 똥 냄새 아주 지독하잖아요. 집사람이 신기하다고 그래요.
자녀분들도 예뻐하시는데 왜 그런 차이가 있을까요?
저도 그걸 곰곰이 생각해 봤어요. 누구 말마따나 ‘미래가 예뻐, 진아가 예뻐?’ 물어보면 누가 ‘고양이’라고 하겠어요. 제가 미래한테 책임감을 느껴서 그런 것 같습니다. 미래 보면 가슴이 아파요. 제가 그냥, 그렇게 해 줘야 할 것 같은 느낌이 들어요.?
둘째 아드님의 시각장애 때문에 마음고생을 하셨다고 들었습니다. 그 영향도 있는 게 아닐까요?
안 그렇다면 거짓말일 겁니다. 그것 때문에 정말 힘들었고 삶이 완전히 바뀌었으니까요. 둘째는 시각장애 5급이에요. 하지만 일반 학교도 다녔고, 지금은 대학교 4학년입니다. 그 아이가 미래를 유별나게 좋아해요. 그 모습을 보면 참 운명 같다는 생각을 가끔 합니다.
미래도 자식처럼 느껴지시는 건가요?
그건 아닌 것 같아요. 그렇다고 자식보다 덜한 건 아니고, 오히려 자식보다 더했으면 더했지. 우리 집에 있는, 제가 보살펴야 하는, 그냥 고양이죠. 그 고양이가 정말 좋은 겁니다. 그뿐이에요. 저도 항상 생각합니다. ‘얘는 왜 예쁠까? 잘 생긴 건가?’하고 다른 고양이들과 비교해 보니까, 아주 밉게 생기진 않았더라고요. 그렇다고 특별한 품종도 아니고 그냥 고양인데, 이유 없이 예쁜 겁니다. 아무리 박색이어도 제 새끼면 다 예뻐하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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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 고양이어도 똑같았을까요?
우리 집에서 길렀으면 미래만큼 예뻐했겠죠. 하지만 미래가 조금 더 특별한 건 사실인 것 같아요. 어쩔 수 없이 항상 우리 눈앞에 있잖아요. 미래는 싫겠지만 우리가 원하면 언제든지 잡을 수 있고, 미래가 우리한테 기대는 부분도 분명 있고요. 가족들한테 의지하고 소통을 원하고 이런 것들이 다른 고양이들과는 다르지요.
미래를 키우기로 한 걸 후회하신 적은 없으세요?
없습니다. ‘후회하나?’ 자문해 보면 아니에요. 그리고 지금 후회한들 뭐하겠어요. 버릴 수 있는 것도 아닌데요. 그럴 마음도 없지만요. 무서운 상상은 가끔 해 보죠. 우리 집 식구가 없다면 미래는 어떻게 될까. 아버지가 고령이신데 혹여 언젠가 슬픈 일이라도 생기면 미래 혼자 집에 둘 수 있을까. 다른 방법을 찾긴 하겠지만, 종종 그런 생각을 합니다.
든든한 가족이 있어 미래가 참 행복할 것 같아요
사람들이 그런 말을 하긴 하는데, 과연 미래도 그럴 것인가에 대해 생각해 봅니다. 미래를 유심히 들여다보면서 ‘너는 행복한 고양이냐?’ 물어보죠. 뇌성마비인데도 우리가 미래를 예뻐해 주니 행복하다고 볼 수도 있죠. 바깥에 팽개쳐져 있는 것보다는 당연히 낫겠지만, 본질적으로 행복한가에 대해 고민하면 미안한 마음이 들어요. 우리 식구들이 미래 덕분에 행복감을 느끼는 건 분명한 사실이지만요. 아내는 ‘진아 동생을 낳아도 이렇게 예쁠까?’ 할 정도로 미래를 좋아하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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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타깝게도 장애동물 이야기 하면 사람 장애도 어쩌지 못하는데 동물 장애까지 어떻게 신경 쓰냐고 하잖아요
노골적으로 면전에 대고 이야기하는 사람은 없지만, 그런 시선은 분명히 있어요. 저는 우리 미래의 역할이 고양이에게도 이런 장애가 있다는 걸 알리는 것만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부끄러워서 숨기든 너무 적어서 찾지 못하든 간에, 우리 사회에는 알지 못하니 배려하지 못해서 생기는 문제가 많잖아요. 저는 동물, 그중에서도 장애동물에 대해 말하고 싶어요. 장애가 있는 동물을 위해 집을 지어 주고 돈을 내달라는 것도 아니고 그렇게 할 수도 없는 일이죠. 그저 고양이도 척추동물이라 뇌성마비가 될 수도 있고, 거기에 작은 관심을 가져줬으면 하는 마음뿐입니다.
장애동물에 관한 바람이 있다면요
장애는 더러운 게 아닙니다. 자기가 선택하는 것도 아니고요. 측은지심과 배려가 필요한 것 같습니다. 미래 이야기를 정리해서 유투브에 영상을 올리거나 동화책을 한번 써 볼까 싶기도 합니다. 미래가 똑바로 걷지 않기 때문에, 누워있기 때문에 갖는 장점을 내용으로 해서요. 결국은 이 모든 게 다 미래가 예뻐서 하는 일이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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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글 이지희
사진 박민성
자료협조 김혁, 펫토그래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