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고양이, ‘다행이’다
역곡역 김행균 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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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인 줄로만 알았다, 영등포역에서 아이를 구하다 선로에 떨어져 기차에 치였을 때. 한쪽 다리를 잃었지만 그가 내뱉은 말은 ‘다행’이었다. 죽지 않고 살아 다행이다. 상반신이 멀쩡해 다행이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절망하는 대신 희망을 봤다. 1년 여 간의 재활 끝에 다시 코레일로 돌아온 김행균 역장. 그는 약 두 달 전부터 다시 다행을 찾고 있다. 쥐덫에 왼쪽 발가락을 잃은 고양이 ‘다행이’. 김 역장에게 입양돼 역곡역 명예 역장으로 근무하고 있는 다행이가 있어 역곡에는 오늘도 미소가 가득하다. 고양이 역장을 만나면 당신도 말할 수 있다. 새로운 시작의 주문 ‘다행이다’.
글 이청 사진 박민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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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무실 안에 이런 공간이 있었군요. 고객상담실인가요? 여기 고양이 캣타워가 있네요. 정말예뻐요.
고양이를 좋아하는 친구들이 선물해준 겁니다. 그런데 고양이가 여기 잘 안 와요. 보면 저쪽 창문이나 내 의자에 있어요. 아침에 출근하면 꼭 제 자리에 앉아 있고 말입니다.
역시 고양이 역장님답네요. 다행이가 지난 4월에 명예 역장으로 취임했죠?
제가 입양했다 하더라도 일단 공공시설물에서 사는 거니까 정식으로 역장 임명을 받았습니다. 주위 사람들 아이디어였는데요, 역장님으로 있으면 제가 역내에 없더라도 직원들에게 관심을 받고, 애착도 더 생길 거라더군요. 그래서 본부장님이 명예 역장 위촉장을 내리고, 다행이를 사랑하는 시민들이 임명장도 수여했습니다.
역장으로서 다행이의 임무는 무엇인가요?
응원단이라고 할까요? 저희 직원이 아홉 명, 공익근무요원이 일곱 명, 청소하시는 분들과 지원 나오신 연세 지긋한 분들까지 계신데, 요즘 참 화기애애해요. 전에는 웃을 일이 별로 없었는데 다행이가 와서 기대고 비비니까 웃을 수밖에 없습니다. ‘고양이’ 하면 사납고 사람을 피하는 동물이라는 선입견이 있었는데 다행이 덕분에 다 깨졌습니다.
다행이의 하루 일과는 어떻게 되나요?
바빠요. 제가 야간 근무를 들어가면 저 없을 때 명예역장으로서 자리를 지키죠. 또 시도 때도 없이 참견합니다. 직원들이 밥 먹을 때 식탁 위에 올라와서 앉아 있고, 누가 오면 쫓아가고. 기분이 좋을 때면 하도 돌아다녀서 제가 업무를 제대로 못 봅니다. 책상 위를 떡하니 차지해요.
다른 사람보다 역장님을 더 따르나 봐요
글쎄, 그렇더군요. 화장실 갈 때도 제 뒤를 졸졸졸 따라옵니다. 저와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다 보니 그런 게 아닐까요. 물론 제가 맛있는 간식을 많이 쥐어주는 것도 있습니다. 하하.
고양이와 역장님이 다정해 보여서 참 좋습니다. 그럼 다행이는 역곡역에서 24시간을 보내는 건가요?
이곳에는 직원이 하루 종일 상주합니다. 제가 없더라도 다른 직원이 다행이와 같이 있지요. 주간에는 물론이고 야간에도 근무자가 있어서 다행이를 두더라도 걱정이 덜 됩니다.
시민들의 반응은 어떤가요?
어떻게 아셨는지 다행이 보러 많이들 오십니다. 하루에 두세 팀 정도 오시는데 장난감도 갖다 주시고, 간식거리도 가져오셔서 덕분에 큰 부담 없이 키우고 있습니다. 제가 사진을 찍어서 보내면 반려동물센터에 근무하면서 다행이를 좋아하는 친구가 다행이 페이스북에 올려주는데요. 그 페이스북을 보고 오는 분들도 많습니다.
다행이의 인기가 대단하네요
사랑을 많이 받고 있습니다. 여학생들이 와서는 다행이를 무릎에 앉히고 한두 시간 놀다 가지요. 뭐가 그리 좋은지 웃음이 끊이지 않아요. 요전번에는 유치원 어린이가 엄마 아빠 손잡고 왔습니다. 유치원에서 단체로 올 때 아파서 못 왔던 앤데 친구들이 고양이 보고 왔다니까 부모님을 조른 겁니다. 동물을 좋아하지만 집에서 못 키우는 젊은 친구들한테 다행이가 좋은 기회를 주는 것 같습니다.
직원들의 반응은 어떤가요?
알레르기가 심한 분들이 있습니다. 다행이를 올해 4월에 데려왔는데 그때 털이 엄청 빠졌어요. 그래서 그런 건진 모르겠는데 알레르기 약을 먹어야만 하는 직원들이 생겨서 참 미안했습니다. 증상이 심할 때는 고양이가 사무실 밖으로 못 가게 하기도 했죠. 그래도 털을 깎으니까 한결 나아졌습니다.
정말 ‘다행’이네요. 고양이를 키울 때 털만한 고민거리가 없죠
네, 미용 안 하려니까 털이 너무 많이 날리더군요. 우리 역에 돌돌이(털 떼는 도구)를 세 개 구비해 놨습니다. 시민들께 깔끔한 모습을 보여드려야 하니까 제복에 묻으면 바로바로 떼어내고 있지요. 돌돌이 양도 감당 못해요. 일주일이면 아이고~ 옷을 하얀색으로 해야 하나. 겨울 춘추복은 더 잘 달라붙어서 흰옷이 되어버릴 텐데. 빨아도 털은 잘 안 떨어지지 않습니까. 애 하나 키우는 것 같아요. 하하.
손이 많이 간다는 점에서 아기와 닮았죠. 다행이는 어떻게 입양하게 된 건가요?
어느 날 후배가 얘기를 해요, “선배님, 고양이를 키우면 어떻겠습니까.” 하고. 처음엔 손사래를 쳤습니다. 개는 키워봤어도 고양이는 처음이니까요. 그런데 들어보니 이 고양이에게 스토리가 있었습니다. 쥐덫에 앞다리 일부가 절단돼서 천안시 보호소에 들어왔다네요. 고양이들끼리 싸웠는지 몸에 상처도 많이 생겼고. 입양시키려고 수소문 해봐도 일반 사람들이 다친 애를 입양하려고 하겠습니까? 한 네 달 정도 보호소에서 살았나 봅니다. 마지막 시도라고 온 사람이 저였는데, 저까지 버리면 어떡하겠습니까. 마음이 아파서 입양을 하게 됐습니다. 시민 모임에서 이름을 ‘다행이’로 지어왔더군요. 올 4월에 왔는데 두 살 정도 되는 수컷입니다.
발은 다 나았나요? 현재 다행이 발 상태는 어떤가요?
발가락 세 마디 정도를 다쳐서 왔어요. 처음 왔을 땐 다친 발은 올리고 세 발로만 걸었는데 하루하루가 다릅니다. 이제는 다 아물었는지 무뎌졌는지 네 발로 잘 다녀요. 언뜻 봐선 장애가 있는 고양이처럼 보이지 않을 정도로 말입니다.
역장님도 다리를 다치셨죠. 괜찮으신가요?
왼쪽은 의족이고 다른 쪽도 쓸 만합니다. 많이 쓰면 오른쪽 발에 피부 이식한 데가 터지고 잘 아물지 않지만 괜찮아요.
사고를 당한 게 2003년이었죠. 어떤 사건이었나요?
벌써 10년이 넘었네요. 기차는 자동차와 다르게 속도감이 잘 안 느껴져요. 천천히 달리는 것처럼 보여도 실제론 굉장히 빠른 속도입니다. 전철 오면 지금이야 스크린 도어도 있고 펜스도 있는데 기차는 노란 안전선뿐이에요. 그때가 방학시즌이었나. 가족들이 승강장에 엄청 붐볐습니다. 당시 전 영등포역 열차 팀장이었죠. 기차가 들어오는데 아이가 승강장에 떨어질 것처럼 아슬아슬하게 붙어있는 겁니다. 승강장 끝단에서 소리 지르면서 갔습니다. 사람이 많으니까 헤치며 뛰어가기도 힘들었어요. 기차와 아이가 접촉할 상황에 닥쳐서 애를 확 밀쳤습니다. 그 탓에 저는 승강장 바닥으로 떨어졌고요.
정말 위험천만한 순간이었네요. 아름다운 철도원이란 수식어가 아깝지 않습니다.
아유, 아름답기는요.
몸에 남긴 흔적만큼 마음의 상처도 크셨을 것 같아요.
1979년에 입사해서 지금까지 거의 현업 업무를 봤습니다. 그동안 사고 현장을 많이 겪었어요. 한 열댓 건 겪었죠. 직원 순직하는 것도 보고, IMF 때 경제사정이나 신변비관으로 자살한 사람들 숱하게 봤습니다. 열차 사고는 처참해요. 철도는 다 쇳덩어리 아닙니까. 머리 부딪치면 현장 사망입니다. 그런데 전 다리만 다쳤고 상체는 큰 이상 없었으니까 다행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운 좋으면 복직이라도 할 수 있고 안 되면 딴 일이라도 하지 뭐’ 하는 마음이었달까요. 그래서인지 편한 마음으로 치료에 임했습니다. 재활하다 보니 충분히 할 수 있을 것 같단 생각도 들었어요. 덕분에 1년 만에 복직했습니다.
정말 다행이에요. 역장님과 다행이 모두. 이 인연이 오래오래 갔으면 좋겠습니다
네, 나중에 역곡역 임기가 끝나고 다른 역으로 옮기더라도 다행이와 같이 갈까 합니다. 보통 3년 정도 한 역에서 근무하는데 역곡역은 1년 좀 넘었어요. 신입 역장에게 인계를 할 수도 있겠지요. 미래의 일을 미리 걱정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그런 마음이 역장님의 선한 인상으로 배어나오는 것 같아요. 역장님의 인생 목표는 무엇입니까?
소박합니다. 아들 둘 있는데 막내가 이번에 대학교 들어갔어요. 스스로 앞가림만 하면 초야에 묻히고 싶습니다. 시골에서 동물농장을 해봤으면 좋겠어요.
다행이도 함께겠죠?
물론입니다.
본 기사는 매거진C 2014년 7월 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