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 내게 다시
글?사진 최형진
2012년 어느 날
내가 사랑하는 사람과 같이 살던 고양이 ‘모모’가 집을 나갔다. 그녀는 상심이 컸던지 며칠을 슬픈 표정을 하고 모모가 떠난 자리를 멍하니 바라보기만 했다. 사방팔방으로 고양이를 찾았지만 찾을 길이 없었다. 몇 달이 지나면 나아질 것이라 생각했지만 그녀는 계속해서 모모의 빈자리를 슬퍼했다. 관리를 조금 더 잘했더라면 모모가 나가지 않았을 것이라 자책했다. 마음이 아팠다.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보듬어 보았지만 그녀는 자기 탓이라고만 했다.
사실 모모는 길고양이었다. 길에서 음식물 쓰레기를 뒤지던 아기 고양이 시절 수의사에게 구조되었고 동물병원에서 지내다 그녀와 만났다. 매일같이 그 아이의 눈이 생각난다고 말하는 그녀와 함께 병원에서 데리고 나왔다. 모모는 한 달 동안 피부병과 장염을 앓아 우리 마음을 아프게 했다. 그녀와 나는 서툰 반려인이었지만 정성을 쏟았고, 그 덕분인지 모모는 하루가 다르게 좋아졌다. 그랬던 고양이가 뭐가 싫어졌는지 갑자기 그녀의 품을 떠났다. 함께한지 1년 만이었다.
그녀가 아파하는 모습을 한동안 지켜봤던 나는 편지를 쓰기로 했다. 받는 이는 그녀, 보낸 이는 모모. 그녀를 위해서 생각해 낸 작은 거짓말이었다. 며칠을 글을 썼고, 그녀가 웃었다. 그렇게 가끔 눈에 띄는 길냥이들에게 이야기를 하나하나 심어주었다. 내가 만든 고양이 이야기를 할 때마다 그녀는 좋아했고 마음의 상처도 조금씩 치료되는 듯했다.
2013년 그저 그런 날
그녀와 헤어졌다. 5년이라는 시간 속에서 서로가 가장 행복할 수 있는 길은 이별임을 알게 되었다. 오랫동안 습관처럼 사랑했기에 그 습관을 고치는 데에 많은 시간이 걸렸다. 습관처럼 길냥이를 보며 그녀에게 했던 이야기를 떠올렸고, 수많은 모모들을 보며 습관처럼 그녀 추억을 되새겼다. 그 순간들이 그리워지면 문득 그녀가 했던 말이 생각났다.
“나에게 들려준 이야기, 책으로 만들어 주면 안 돼?”
2013년 7월, 그렇게 만든 내용이 책 한 권이 되었다. 3년 동안 만들었던 이야기였다. 누구에게 보여주려고 쓴 책이 아니었기에 만들고 나니 헛헛함만 더했다. 되돌리고 싶지도 않은 추억인데도 하루하루가 울적해졌다. 세상에 나보다 더 우울한 녀석은 없을 거라 여기던 어느 날, 고양이 카페에서 스코티시폴드 한 마리를 보았다. 한없이 슬픈 표정을 한 그 녀석은 꼭 나를 보는 듯했다. 마음을 보듬어 주고 손잡아 주고 싶단 생각이 들었다. 사실 고양이 책을 쓰면서 고양이에 관한 지식은 많아졌지만 한 번도 키워본 적이 없었기에 이 선택이 옳은 것인지 망설였다. 하지만 스스로에게 이것은 운명이라 최면하면서 고양이를 데려왔다.
고양이를 들였지만 이름을 지어주지 않았다. 이름은 내 옆에 없거나 보고 싶을 때 부르는 것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고양이는 단 한 번도 내 곁을 떠난 적이 없었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는 항상 그리움과 아쉬움이 있지만 고양이는 언제나 그 자리에서 늘 같은 표정으로 날 반기고 그리워해줬다. 어느 날 어린 조카가 나에게 말했다.
“삼촌, 고양이는 고양이인 거야. 다른 이름은 필요 없어. 고양아.”
2013년 함께 한 날
피부병?외이염 등등 고양이가 아파하는 모습에 가슴을 몇 번이나 쓸어내렸다. 부족한 반려인이라고 스스로를 탓했다. 예전에 그녀가 느꼈을 아픔을 조금은 알듯했다. 다른 시간 다른 사람 다른 공간이지만 같은 감정을 공유하는 묘한 경험이었다. 사랑하는 방법은 다르지만 그 뜻은 같다는 말의 의미를 다시 한 번 곱씹어보았다. 그녀 또한 나와 다른 방법으로 모모를 사랑해줬을 것이다. 하지만 내가 지금 고양이에게 느끼는 감정은 같은 듯하다.
2014년, 그리고 함께 할 날
한두 번 하는 이별이 아니기 때문에 이쯤 되면 면역이 될 법도 한데 헤어짐은 항상 아리다. 예정된 이별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언젠가 다가올 일인 줄 알고 있지만 스치듯 떠올리면 가슴이 멘다. 대부분의 스코티시폴드가 갖고 있는 골연골 이형성증을 생각하면 슬픔은 더욱 커진다. 고양이도 분명 언젠가는 나를 떠날 텐데. 누군가는 그걸 알면서도 키우는 반려인들이 문제라고 간단히 말해 버린다. 더할 수 없이 아픈 일이다. 그러나 이별을 슬퍼하기만 하면 반려동물과 반려인이 만들어갈 아름다운 추억마저 놓칠 수 있기에 손가락질하는 사람들의 시선을 잠시 외면한다. 내 품에 오지 않았다면 어딘가에서 힘들어 했을 반려묘를 보면서 ‘역시 우리는 운명이야’라는, 남들은 이해 못할 합리화 해본다. 오늘도 준비된 이별의 그 순간에 울기보단 웃을 수 있도록 좋은 추억들을 만들어가련다.
“너와 나의 거리가 한 뼘이 되기까지는 정말 많은 시간이 걸린듯해. 처음에는 항상 나를 피해 숨어 있고 도망가던 네가 지금은 바로 내 앞에 앉아 있고 내 무릎에 올라오잖아. 나도 그래. 누군가를 향한 작은 그리움으로 시작했지만 지금은 너를 향한 그리움이 가득하니까. 수많은 추억과 시간이 우리를 서로 길들인 게 아닐까. 아프지 말고 항상 오늘 같이만 살아 줬으면 해. 양이야 사랑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