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세상 고양이를 그리다
일러스트레이터 김규희
사람은 늘 마음속에 있는 것을 생각하기 마련이고 그런 생각은 곧 행동을 낳는다. 작가에게 행동이란 바로 작품이니 고양이를 사랑하는 작가가 고양이를 그리고, 빚고, 만드는 건 어찌 보면 아주 당연한 일이 아닐까.
글 이지희 자료협조 김규희
언제나 늘 고양이
일러스트레이터 김규희 씨는 태어났을 때부터 고양이들이 곁에 있었다. 조부모님과 부모님 모두 고양이를 좋아해서였을까. 마치 DNA로 물려받은 것처럼 규희 씨도 고양이를 사랑하게 됐고 대학교 때도 대학원 때도 작업의 소재는 항상 고양이였다. 그리고 2012년의 어느 겨울날, 길고양이 ‘주쓰’와 만나면서 고양이를 모티브로 한 작품을 본격적으로 만들기 시작했다.
“결혼 후에는 사정상 고양이를 키우지 못 했는데요, 쓰레기를 버리러 갔다가 주쓰를 처음 봤어요. 아주 마르고 꼬질꼬질한 모습이었는데도 마치 두 눈에 각인된 듯 주쓰에게서 헤어 나올 수가 없었습니다. 그날부터 고양이를 주제로 한 그림을 그리고 도자기를 만들었지요.”
인류 역사 이래 수많은 역경을 헤치며 살아온 고양이들. 지금도 힘든 삶을 살고 있지만 고양이들은 현실을 비관하거나 낙담하지 않는다. 거친 세상 속에서도 우아한 자태로 잠을 자고 꽃향기를 맡는 아름다운 모습을 보여 준다. 그래서 많은 작가들이 고양이를 피사체로 삼았고 규희 씨도 마찬가지인 게 아닐까.
“그 어떤 그림이나 조각도 실제 고양이보다 아름다울 수는 없겠죠. ‘잘 그려야지’하는 마음을 버리고 작업하고 있습니다. 재료의 성질과 고양이의 품새에서 우러나오는 느낌을 담아내려고 노력할 뿐이에요.”
가장 아름다운 건 마음
보석보다 영롱한 눈망울, 붓으로 그린 듯한 몸의 선, 하늘하늘하고 기품 있는 몸짓. 그러나 고양이의 매력은 외면에 그치지 않는다. 규희 씨가 생각하는 고양이의 가장 아름다운 부분은 ‘고양이 전체’, 그리고 무엇보다도 ‘고양이의 마음’이다.
“고양이는 정말 사랑이 많은 동물이에요. 특별히 기억에 남는 사건이 있었다기보다는 평생에 걸쳐 항상 그런 느낌을 받았지요.”
슬플 때도 괴로울 때도 고양이들은 늘 변함없이 곁을 지켜 주었다. 방에 혼자 틀어박혀 눈물을 흘리면 고양이는 눈을 지그시 감고 갸르릉거리며 나름의 방식으로 규희 씨를 위로했다. 부드러운 숨소리는 마치 격려처럼 들렸고 삶의 중요한 기로에 서있을 때 발걸음을 내딛을 힘을 주었다. 규희 씨에게 고양이는 단순한 피사체가 아니라 친구이자 멘토이자 인생의 동반자다. 어쩌면 수많은 예술가들 옆에 고양이가 있었던 진정한 이유는 바로 이것일지도 모르겠다. 남들보다 풍부한 감수성을 가졌기에 외로움도 더욱 깊게 느낄 수밖에 없는 그들에게, 고양이는 부산스럽지 않으면서도 더없이 따듯한 위로를 건넸을 것이다.
단 하나뿐인, 나만의 사랑스러운
그렇게 꾸준히 고양이를 주제로 작업하다 보니 하나 둘 작품이 모였고, 마침내 규희 씨는 오랫동안 꿈꿔왔던 고양이 모티브 아트 숍을 열게 됐다. 상호는 ‘이 세상 고양이’인데 ‘이 세상에 단 하나뿐인 나만의 사랑스러운 고양이’의 줄임말이다. 온라인 숍인 이 세상 고양이에서는 문구류를 비롯해 다양한 제품들을 볼 수 있다. 그 중 단연 눈에 띄는 건 바로 고양이 얼굴이 그려진 골프공. 고양이와 골프공이라니, 전혀 어울리지 않는 조합이라 느껴질 수 있지만 여기에는 안타까운 이야기가 담겨있다.
“2년 정도 미국에 산 적이 있는데 가끔 골프장에 갔어요. 러프에 빠져 갈 곳을 잃은 골프공들이 참 많더군요. 그런 공들을 줍다 보니 문득 길고양이의 처지와 비슷하단 생각이 들었습니다. 눈에 안 띄고, 거친 환경 속에 숨어 있고, 어쩌다 사람 눈에 띄면 들어올려지거나 버려진다는 점이…….”
공은 버리면 끝이지만 고양이는 생사가 걸려있는데, 둘 다 똑같은 소모품처럼 대해지는 현실이 무서웠다. 그래서 이런 공들에 각각 다른 고양이 얼굴을 정성스럽게 그렸다. 하나하나가 전부 소중한 생명이라는 느낌을 불어넣고 싶었기 때문이다. 또한 상품 판매 수익금의 일부는 길고양이 보호와 치료를 위해 기부하며 고양이를 향한 애틋한 마음을 표현하고 있다.
올해에는 작업실 겸 오프라인 숍을 열고 그곳에서 그토록 염원했던 고양이와의 생활을 시작할 계획이라는 규희 씨. 또 한 가지 꿈은 고양이를 모티브로 작업하는 다른 작가들과 함께 전시회를 개최하는 것이라는데, 이 세상에서 제일 편안한 동료이자 고양이들 중에서도 가장 사랑스러운 피사체 ‘반려묘’가 곁에 있다면 그 날이 훨씬 빨리 올 듯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