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이야기를 내 목소리로
싱어송라이터 권봄
먀옹먀옹 고롱고롱. 종이 달라 알아들을 수 없는게 분명한데, 너의 소리가 어쩐지 말소리로 들리는 건 기분 탓일까. 서로 사랑하며 함께하다 보니 눈빛만 봐도 감정이 느껴지는데, 정말 한낱 감상적인 생각일 뿐인 걸까. 사람들이 네 마음을 알 수 있으면 좋을 텐데. 얼마나 슬프고 얼마나 행복한지 느낄 수만 있다면, 조금 더 따듯하게 너를 감싸 줄 텐데…… 내가 대신 이야기해 봐도 되겠니.
글 이지희 사진 박민성 자료협조 권봄
기다릴밖에
유기묘, 무지개다리를 건넌 반려묘, 로드킬 당한 길고양이까지. 싱어송라이터 권봄의 첫 솔로앨범 <기다릴밖에>는 고양이에 관한 노래로 가득 차있다. 총 다섯 곡 중 타이틀곡인 ‘기다릴밖에’는 이번 앨범이 나오는 계기가 됐다.
“밤에 자려고 누웠는데 길가에서 고양이 울음소리가 들리는 거예요. 서둘러 내려가 보니 목에 방울을 맨 고양이 한 마리가 혼자 있더라고요. 제 또래 여자가 키우다 버렸는지 저한테 엄청 다급하게 뛰어왔어요. 그런데 오다가 멈칫하더라고요. 엄마가 아니었던 거죠.”
말을 건네듯 찡얼찡얼 거리는 고양이를 보며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은 걸까’하는 의문이 들었다는 그녀. 버려진 고양이의 끝없는 기다림을 노래한 ‘기다릴밖에’는 그렇게 탄생했다. 그 후로도 고양이에 관한 곡을 종종 작사했고 지난해 중순 이런 노래들을 모아 앨범을 내기로 결심했다. ‘내가 하고 싶은 음악’을 해 봐야겠다는 마음으로, 꾸준히 하던 밴드 활동까지 그만뒀다고. 하지만 처음부터 자신이 있던 건 아니었다.
“고양이에 관한 가슴 아픈 사연을 담았는데 주위 사람들은 ‘그게 뭐’ 혹은 ‘저런’하고 끝이었어요. 별로 가닿지 않는 구나, 누가 듣기나 할까 싶었죠. 그러다가 웹툰 ‘상상 고양이’의 김경 작가님, ‘뽀짜툰’의 채유리 작가님과 인연이 닿았어요. 노래를 들려드렸는데…… 펑펑 우시더라고요. 그때 힘을 많이 받았고 누군가는 공감해 줄 거란 자신감이 생겼어요. 두 작가님과 협업해 뮤직 비디오를 만들면서 노래만으로는 건드릴 수 없었던 슬픔까지 표현된 것 같아요.”
반려묘를 만나고
마냥 밝은 주제는 아니지만 보사노바·스윙·살사 등의 리듬과 권봄의 감미로운 목소리가 더해져 편안하게 들을 수 있는 음악들. 하지만 예전에는 주로 외로움이나 공허함에 관해 노래하고 공격적인 가사도 많이 썼다고 한다. 그랬던 그녀가 지금 같은 말랑말랑한 음악을 하게 된 건 4년 전 반려묘 ‘봄이’를 만나면서부터다.
“봄이가 저를 보는 눈망울이나 말 거는 목소리가 정말 사랑스러워요. 침 냄새까지도 그냥 다 좋고 예쁘다 보니 저도 자꾸 부드러운 어휘를 쓰게 되더라고요. 고양이가 저라는 사람을 통째로 바꾸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특히 ‘행복했다오’는 반려묘를 향한 애절한 마음이 고스란히 담긴 곡이다. 이 노래의 주인공은 복막염으로 작년에 무지개다리를 건넌 ‘가을이’다. 몇 개월 간 병마와 싸우다 ‘힘들면 이제 가도 괜찮다’는 말에 가을이는 마지막 숨을 토해내고 영원히 떠났다. 그때 가장 위로가 됐던 말 한마디 ‘당신을 만나서 행복했을 거다’. 권봄은 그때 그 말처럼 누군가의 슬픔을 어루만져 줄 수 있는 이야기를 노래로 만들었다. 다른 곡들 역시 직접 보거나 경험한 일을 토대로 했는데, 음악적으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게 ‘진심으로 하는 것’이기 때문이라고. 그래서일까. 가사 한 줄 한 줄은 마음을 울리고, 머릿속에는 곧 추억의 한 장면이 떠올라 미소와 눈물을 동시에 짓게 된다.
함께 사는 세상
그런데 조금 신기하다. 가만히 듣고 있다 보면 꼭 고양이 노래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네가 정말 좋아, 영원히 너뿐이야’하는 말에 행복해하다가 ‘네가 싫어졌어’ 한마디를 끝으로 이별하게 되는 건 유기묘도 실연을 겪은 사람도 마찬가지가 아닌가. 로드킬 당한 길고양이의 노래인 ‘그대의 세상’ 역시 있는 자의 세상에 사는 없는 자의 이야기라 할 수 있다.
“고양이를 생각하며 노래 부르는데 어떨 때는 사람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작년에 슬픈 일들이 참 많았잖아요. ‘행복했다오’의 경우엔 비록 고양이를 떠나보내면서 만든 노래지만 어쩌면 소중한 가족과 갑작스럽게 이별한 사람들에게도 위로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고양이를 통해 주변을 살피게 됐고 앞으로 더불어 사는 세상에 대한 음악을 만들고 싶다는 권봄. ‘동물과 사람, 함께 사는 이야기’라는 부제를 붙인 이번 앨범은 그런 바람의 첫 결과물이다. 더불어 사는 세상에 관한 두 번째 앨범은 사람이 사람에게 상처 주는 일을 주제로 해 볼 계획이다.
“고양이들을 통해 사람까지 보게 된 것 같아요. 사회적 약자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게 됐고요. 순서가 바뀐 것 같긴 하지만 그런 경우도 있잖아요. 제가 그랬던 것처럼 다른 사람들도 그럴 수 있고요. 앞으로 음악을 통해 동물 보호 등 관련 사회 활동들도 하고 싶어요. 제 노래로 인해 누군가의 마음이 변할 수도 있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