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만 가지 고양이가 모여 있는 곳
고양이서점
인적 없는 곳에 살짝 웅크려 있는 모습이 딱 고양이스러운 가게, 고양이서점 쇼윈도엔 고양이 액자 및 다양한 예술가들이 빚은 고양이 인형들이 즐비하게 놓여 있었다. 세상에 이렇게 고양이 작품이 많았던가, 가게 하나를 꽉 채울 만큼? 고양이는 모든 예술가의 뮤즈였다는 역사적인 사실을 새삼 떠올리며 매력 넘치는 고양이 세계의 문을 열었다.
글 이수빈 사진 박민성
고양이로 빚은 가게
각종 전시회 및 공연 등이 열리는 경기도 일산의 전문공연예술센터 고양 ‘아람누리’안엔 ‘고양이서점’이라는 이름의 작은 가게 하나가 꼭꼭 숨어 있다. 골판지로 만들어진 입간판을 따라 가게 안으로 들어서니, 고양이서점이라는 이름답게 고양이 관련 서적은 물론이고 세계 각지에서 물 건너온 고양이 기념품 및 작품까지 구경할 수 있는 아담한 공간이 마련되어 있었다. 여기도 고양이 저기도 고양이, 온통 고양이뿐인 이곳에 우연히 다다른 사람들의 머릿속은 굳이 확인해 보지 않아도 이 같은 의문으로 가득 차있을 것이 틀림없다. ‘도대체 왜?’ 순도 100퍼센트 고양이 관련 책과 용품이 가득한 고양이서점. 고양이를 좋아하기로 유명한 일본에서도 일찍이 이런 공간은 본 적이 없다. 하물며 고양이에 대한 인식이 좋지 않은 우리나라에선 굉장히 파격적인 시도가 아닐까. 서점에 들어섬과 동시에 입에선 감탄이 터져 나오고 이내 슬그머니 의아함이 고개를 내민다. 도대체 왜, 하필이면 고양이를 소재로 한 서점을 열게 되었는지 궁금한 마음이 드는 것은 당연해 보였다.
알고 보면 예쁜 너
“고양이는 직접 키워보지 않으면 그 매력을 알 수 없는 동물 같아요.”
고양이서점의 주인 유종국 씨는 스스로를 고양이서점의 ‘집사’라고 소개했다. 실제로도 두 마리의 고양이와 함께하는 반려인인 그는, 고양이를 키우기 시작한 지 4년밖에 되지 않았지만 만나자마자 고양이라는 매력적인 존재에 미치게 되었고 그렇게 시작된 관심이 집 밖의 고양이에게 뻗어 오늘에 이르렀다며 고양이와의 인연에 대해 설명했다.
“고양이가 가진 매력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개인적으론 위로라는 단어를 꼽고 싶네요. 바라만 봐도 가슴 한구석이 따뜻해지는 위로를 줄곧 고양이들에게 받았던 것 같아요.”
변화무쌍한 고양이에게 빠져들어 반려묘와 함께하는 즐거운 나날을 보내던 유종국 씨는 척박한 길고양이의 삶을 우연히 알게 됐고, 우리나라의 고양이를 둘러싼 시선이 놀라울 만큼 왜곡되어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고양이가 지닌 천의 얼굴을 낱낱이 보여 주는 고양이서점은 지금껏 받은 위로를 그들에게 돌려주기 위해 유종국 씨 자신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고심한 끝에 나온 결과물이다.
“고양이, 특히 길고양이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이 팽배한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고양이를 소재로 한 작품이 이렇게나 많고, 알고 보면 고양이는 너무나 사랑스럽고 매력적인 존재라는 사실을 알리고 싶었습니다. 서적도 같은 맥락이에요. 고양이 관련 책들을 통해 사람들에게 고양이에 대한 정확한 지식을 전달하고자 했습니다. 기본적으로 상대에 대해 알아야 애정도 생기고 바라보는 관점도 바뀌는 거거든요. 궁극적으로는 ‘고양이서점을 통한 길고양이 인식 개선’이 목표죠.”
유종국 씨는 영업시간 후에도 고양이서점의 조명을 밝게 켜놓고 있다고 했다. 고양이서점이 궁금해진 행인이 언제라도 안을 훤히 들여다 볼 수 있게끔. 단 한 명의 사람이라도 서점을 살펴보고 그 결과 고양이에 대해 조금이라도 더 생각해 볼 기회를 가졌으면 하는 바람에서다.
그 곳에서 만나요
책이 쌓여있으면 그만큼 함부로 대하게 된다는 생각에 각 서적은 거의 한 권씩만 비치돼 있고 제법 탐이 나는 고양이 작품들은 판매용 반 소장용 반이란다. 이것만 봐도 고양이서점을 통해 막대한 영리를 취하기는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짐작할 수 있다. 유종국 씨는 이곳을 그저 물건과 책을 파는 잡화상이나 서점이 아닌, 고양이를 돕고 싶어 하는 사람들을 이어줄 수 있는 ‘매개체’로 만들고 싶다는 포부를 내비쳤다.
“고양이서점을 통해 같은 뜻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 혼자서는 해낼 수 없는 일을 논의하고 싶은 소망이 있습니다. 좀 더 적극적으로 길고양이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아이디어를 모으고 나누고……. 몇 가지 구상 중인 프로젝트도 있어요.”
고양이서점은 고양이를 사랑하는 사람들은 물론, 고양이와 사람까지 이어 주는 장소라는 점에서 ‘고양이 사랑방’이라 불림에 손색없어 보인다.
“어째서 길고양이에게 관심을 가져야 하는지, 왜 가슴 아파해야 하는지 그 시작점을 알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길고양이는 하늘에서 뚝 떨어진 존재가 아니거든요. 인간의 필요에 의해 거둬지고 필요 때문에 버려진 아이들이 길 위에서 살아가고 있는 거니까요. 결국 길고양이 문제를 생각하는 건 우리 자신을 들여다보는 것이나 마찬가지예요. 마땅히 모두가 고민해야 하는 문제라는 거죠. 다 같이 공존하는 세상을 만드는 과정에서 고양이서점이 작은 역할을 했으면 합니다.”
인적 드문 장소와 고양이라는 다소 마이너한 소재, 그리고 과장없는 심플한 간판까지……. 고양이서점은 사람들이 꼽는 소위 ‘대박 나는 상점’의 여러 조건과 놀라우리만치 동떨어진 가게였다. 정말 괜찮은 걸까 싶기도 하지만 아무렴 어떠랴. 계산 없이 자신이 좋아하는 것에 집중하는 고양이스러운 그 모습이 바로 이곳, 고양이서점다움일지도 모른다. 어제도 오늘도 그리고 내일도 모두를 이을 고양이서점은, 뜻을 같이 할 따뜻한 사람들을 기다리며 여전히 그 자리에서 홀로 환한 밤을 지새우고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