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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위에 사는 내 친구

  • 승인 2015-03-06 16:17: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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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위에 사는 내 친구

2화 꽃보다 야옹이

글·그림 아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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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좀 봐 주세요!
길고양이는 늘 경계심 많고 불안한 모습이라, 발라당 같은 애교를 보게 될 거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그런데 녀석들과 매일 만나면서 시간이 흐르다 보니 다가오는 거리의 폭도 좁혀지고 하는 행동도 나날이 달라져 갔다.
뭐든 처음이 힘들지 한번 하고 나면 별게 아닌 건지. 어렵사리 시작한 발라당은 걸음을 뗄 수 없게 할 만큼 시도 때도 없어졌다.
비록 더럽고 딱딱한 길 위지만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사랑스런 몸짓을 보여 주는 길고양이들을 생각하며,
땅바닥 대신 보드랍고 향긋한 꽃 위에서의 발라당을 떠올려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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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마워… 웃게 해 주어서…
사흘 만에 길냥이들을 만난 적이 있었다. 그 어느 때보다 반가워 어쩔 줄 몰라 하던 표정이 눈에 선하다.
전속력으로 뛰어나온 흰까미와 이뿐이는 꺼이꺼이 울더니만, 밥을 먹고는 기분이 좋아졌는지 한바탕 뛰어댔다.
흰까미는 나무 위로도 올라가고 한참을 팔짝팔짝 거리더니 피곤했는지 이내 스르르 눈을 감고 잠이 들었다.
그 모습이 예뻐 배시시 미소 지으며 사진에 담았다. 그런데 자세히 들여다보니
좋은 꿈이라도 꾸는 건지 아니면 오랜만에 만나 기뻤던 탓이었는지 분명 빙그레 웃고 있었다.
그런 흰까미를 보며 상상했다. 꽃다발을 한아름 안고서는 빙그레 웃는 얼굴을.
“그 꽃다발 나한테 주는 거니? 꽃 좋아하는 거 어떻게 알고서는. 그런데 있잖아, 이건 비밀인데……
나는 꽃도 좋지만 흰까미 네가 더 좋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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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야 낭만고양이
내가 본 길고양이 중 가장 애교 많고 감정 표현이 다양한 녀석을 꼽으라면 단연코 명랑이다.
명랑이는 화단에 있는 회양목 향기도 자주 맡고, 가지만 앙상히 남은 이름 모를 나무 냄새도 때때로 맡는다.
그러던 어느 날, 명랑이가 그날따라 너무나 여유롭고 낭만적인 표정으로 나뭇가지의 냄새를 느끼는 게 아닌가.
정말 낭만을 알고 즐기는 고양이 같다.
가을이라 꽃도 잎사귀도 남지 않은 나무향내를 맡던 명랑이에게 향기로운 장미꽃을 그림으로나마 선사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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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생이 있다면
어느날 문득 연꽃이 떠올랐다.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연꽃 하니 심청전이 생각났다.
아버지의 눈을 뜨게 하기 위해 인당수에 몸을 던졌으나,
지극한 효심 덕에 죽지 않고 연꽃에 태워져 바다 위로 보내진 모습이 가장 인상 깊었다.
갑자기 떠오른 이 생각들을 그림으로 담으려 하자, 이번에는 고양이 한 마리가 기억났다.
녀석을 본 곳은 가끔 가는 절의 길목에 있는 주점 앞이었다.
새초롬한 듯하면서도 슬퍼 보이는 가녀린 모습에,
귀한 인생으로 다시 태어난 심청이처럼 녀석 역시 연꽃에 태워 보았다.
“너도 다음 생엔 길에서 고양이로 태어나지 말고, 그렇게 연꽃 타고 좋은 곳에 가서 사랑받고 살 거라.

그림·아녕 (안영숙) blog.naver.com/2000tomboy
어느 날 문득 길고양이와 인연이 닿아 그들의 이야기를 그림에 담기 시작했다. 길고양이의 고단한 삶이 그림 속에서라도 행복하고 아름답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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