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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 사는 사람

  • 승인 2015-03-06 16:0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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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 사는 사람
가수 배다해

지난해 11월 SBS TV 동물농장을 통해 알려진 거식증 고양이 준팔이의 이야기를 기억하실는지. 주인에게 버림받은 후 식음을 전폐했던 고양이가 새 가족을 만나 기적적으로 회복했다. 누군가는 안타까움에 눈물 흘리고, 누군가는 극적인 해피엔딩에 감동했을 사연. 또 한 가지 놀랍고 반가웠던 점은 입양자가 가수 배다해 씨라는 사실이다. 그런데 가장 가까이에서 이 모든 과정을 경험한 그녀가 준팔이를, 생명을 바라보는 시선은 안쓰러움이나 사랑스러움 그 이상이었다.

이지희 사진 박민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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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이 입양 후 벌써 반년 가까이 흘렀네요. 이제 밥은 잘 먹는지 궁금합니다
동물병원에 있을 때부터 아주 조금씩 먹기 시작했는데 저희 집 오고 나서는 식욕이 훨씬 왕성해졌어요. 지금은 뭐하나 쳐다보면 밥그릇 앞에 있을 정도로 잘 먹고요. 입양 당시 곰팡이성 피부병도 앓아서 군데군데 털이 빠져 있었는데 지금은 거의 다 새털이 났어요.

정서적으로는 좀 어떤가요?
체력을 회복하고 나서 보니 예상보다 온순하고 활발하더라고요. 사람을 정말 좋아하는데 저런 성격이면 주인에게 버림받았을 때 우울증에 걸리거나 크게 좌절할 수도 있겠다 싶었습니다.

그럼 준팔이는 이제 완전히 회복한 건지요
얼마 전에 건강검진을 했는데 수의사 선생님께서 깜짝 놀라셨어요. 모든 게 정상이고 최상인 상태라고 하셨습니다. 이렇게 빨리 호전되는 건 쉽지 않은데 어떻게 했냐고 물어보시더라고요. 간호사 스카웃 제의도 받았어요(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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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첫 방송 봤을 땐 희망이 없겠다 싶었습니다
저도 처음엔 아무래도 살기 힘들겠구나 생각했어요. 방송 촬영 전에도 동물병원에 가서 준팔이를 몇 번 봤는데요, 그 후 그 병원 지나갈 때마다 제가 멀쩡하게 밥을 먹고 숨을 쉬고 잘 지내는 게 너무 속상했어요. 그때는 정말 뼈밖에 없었고 기운 없어서 고개도 못들 때였거든요. 유난히 눈에 밟혔는데 인연이 되려고 그랬나 봅니다. 제가 입양하고 상태가 더 나빠지면 어떡하나 걱정은 했지만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아야겠다고 마음먹었어요. 교만일 수도 있지만 저희 집에 오면 동물들이 건강해지더라고요. 기운이 맞는 건지. 뭐든 자만하면 안 되는데 조금은 자신감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정말 기적처럼 회복했죠. 비결이 뭔가요?
특별한 건 없고, 그냥 자기 하고 싶은 대로 편안하게 두는 게 제 방식이에요. 곁에 오고 싶어 하면 오게 하고, 혼자 있고 싶어 하면 그렇게 두고. 너무 유난 떨거나 울면서 가슴 아파하지는 않으려고 해요. 계속 ‘넌 특별해. 소중해’, ‘넌 할 수 있어’하며 좋은 기운을 주는 게 중요한 듯합니다.

준팔이가 괜찮아져서 다행이지만 공인으로서 부담스럽지는 않았나요? 실제로도 방송 시점 탓에 거짓 입양이라는 오해도 받았는데요
그런 변수는 알고 시작한 일이에요. 방송이라는 게 보여 주는 것만 보니 오해의 여지도 있을 수 있고요. 물론 억울하고 답답하긴 했지만 제가 하는 일이고 해야 하는 일이니까요. 가장 중요한 건 제 진심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제가 중심을 잡으면 언젠간 진실도 밝혀지고 마음도 알아 주는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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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해가 풀려서 다행입니다. 다른 반려묘 두 마리도 사연이 있다고요
아르와 타샤라는 모녀고양이에요. 엄마인 아르가 추운 겨울에 출산을 하고 찬 바닥에서 죽어가다가 새끼들과 함께 구조됐어요. 아기 고양이들은 입양이 잘되는데 다 큰 아르만 가족을 못 만나서 같이 남아 있던 새끼 타샤까지 둘을 데리고 왔어요. 경계심이 심했던 터라 마음 여는데 1년 정도 걸린 것 같아요. 타샤는 아직도 사람한텐 잘 안 오고요.

준팔이도 그렇고 다들 상처가 있어서 키우기 더 힘들 것 같습니다
저는 삶의 가치관이 조금 더 불편해도 더불어 살자는 쪽이에요. 혼자 돈 많이 벌고 좋은 옷 입고 살면 나중에 죽어서 뭐가 남을까, 그런 생각 하거든요. 물론 저도 귀엽고 예쁜 고양이 좋아하고 키우고 싶죠. 그런데 어차피 똑같은 생명이니까. 이 고양이든 저 고양이든 고양이라는 생명이잖아요.

아르와 타샤 입양 전에는 쭉 강아지를 키우셨는데 고양이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가 있다면요
입양 전에도 고양이 구조나 임시보호는 많이 했는데요, 같이 지내 보니 고양이가 저와 잘 맞고 참 매력적인 동물이더라고요. 예전부터 동물보호 활동을 하고 있었는데 강아지에 국한될 게 아니라 더 폭넓게 해야겠다는 생각도 했고요. 이제 세 마리라 입양은 어려울 것 같고 임시보호는 평생 할 듯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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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보호 활동은 언제부터 시작하신 건가요?
고등학교 3학년 때 아주 큰 계기가 있었어요. 강아지를 키울 때였는데 어느 날 한 다큐멘터리에 백구가 나오는 거예요. 강아지가 나오기에 뭔지도 모르고 봤는데 백구를 철장에서 끌고 나와서 밧줄로 목을 매달더라고요. 정말 충격이었어요. 제가 먹는 음식들, 생명들이 너무나 비인도적인 방법으로 도축된다는 걸 보고 놀랐습니다. 사실 그때 저도 개고기를 먹었거든요. 제가 성악을 전공했는데 노래하는 사람들은 목에 좋다는 이유로 굉장히 쉽게 개고기를 접해요. 어쩌면 처음엔 제 행동을 합리화하고 타당성을 찾고 싶었던 것도 같습니다. 이게 정말 일어나는 일인지 정보를 알고 싶어서 시청자 게시판에 들어가 봤는데 생명을 위해 애쓰시는 분들이 계시더라고요. 그 후 동물보호 관련 단체에 가입했고 그때부터 꾸준히 활동 중입니다.

굉장히 오래전부터 관심을 갖고 계셨던 거군요
13년 정도 됐어요. 그동안 채식도 여러 차례 시도하다가 실패하고 지금은 채식 지향주의를 하고 있습니다. 고기를 먹는 게 나쁘다고 말하려는 건 아니에요. 다만 생명이니까 인간으로서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존중을 해 주자는 거죠. 얼마 전에는 개들이 가득 실려 있는 트럭을 난생처음 맞닥뜨렸어요. 철장 안에 겹겹이 쌓여서 정신을 잃어가고 있는데…… 차라리 쟤네들이 빨리 죽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실 그런 모습을 보면 ‘동물 보호법 몇 조 몇 항 위반이다’ 당당하게 이야기하고 싶었는데, 그냥 그 자리에 멈춰 버렸어요. 오열하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못했죠. 운동가는 못되는 것 같고 제가 할 수 있는 소소한 활동에 참여하면서 목소리를 높여야 할 때 나서는 게 제게 맞는 듯합니다. 이렇게 고양이들 입양해서 키우는 것도 그런 작은 일들 중 하나고요. 생명을 사랑하는 모습을 보여 주는 게 제 몫인가 봐요. 전 싸우고 싶은데 잘 안되더라고요(웃음).

차분한 성격이신 줄 알았는데 의외입니다
예전엔 정말 감정적이었어요. 동물을 발로 차는 모습을 보면 소리 지르며 달려가려고 해서 주변 사람들이 말리기도 했지요. 그런데 그런 식으론 얻어지는 게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오히려 제가 하고자 하는 일에 반하게 되고요. 감정을 추스르고 다른 방식으로 무언가를 보여 줬을 때 사람들의 마음이 더 동하는 것 같아요. 누군가 정말 몸이 건강해지고 좋아지면 쟤는 어떻게 살까, 뭘 먹고 살까 궁금해하는 것처럼요.

사실 강한 주장으로 반감을 사게 되는 경우도 많지요
물론 적극적으로 활동하는 사람도 필요합니다. 그러지 않고서는 너무 관심이 없거든요. 아직까지도 동물 복지 이야기하면 사람이 먼저냐 동물이 먼저냐 일차원적인 질문하는 경우도 많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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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질문엔 뭐라고 대답하시나요?
저는 어린이들도 돕고 있다고 이야기해요. 기아대책 홍보대사로 활동하면서 아이 네 명을 후원하고 있거든요. 생명에 우선순위가 있나요. 다 같은 생명체들인데요. 사회가 너무 척박하고 사는 게 어렵기 때문에 동물이 힘든 것까지 알고 싶지 않은 것도 있는 듯합니다. 전 누구나 착하게 살고 싶은 마음을 지녔다고 믿어요. 다들 이야기해 보면 평화로운 삶을 추구하고 싶어 하거든요.

동물 학대처럼 끔찍한 일도 자주 일어나는데, 그럴 땐 좌절감 들지 않으세요?
물론 그런 사람도 있죠. 하지만 선한 사람이 더 많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사람들끼리 힘을 합쳤을 때 뭐든 할 수 있다고 믿고요. 저부터라도 소소하지만 아름답게 살려고 노력 중이에요. 그래서 제 주변의 단 한 명이라도 변할 수 있으면 좋겠고요.

봉사활동이나 자선 행사 등 여러 활동에 참여하고 계시죠
취지가 좋은 행사엔 가능한 참석하려고 하는 편이에요. 요청이 많아서 부담되지 않느냐는 이야기도 듣는데, 할 수 있을 때 한 번이라도 더 하려고 합니다. 제가 육십 칠십이 되면 아무도 부탁하지 않을 수도 있잖아요. 그때는 한 명에게라도 더 알리고 싶은데 못할 수도 있으니까 지금 해야죠. 후원이나 봉사활동은 꾸준히 하고 있어요.

봉사 다녀오시면 아무래도 힘드시지요?
마음이 무겁습니다.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같아서요. 아무리 봉사해도 달라지는 게 없으니 저랑 같이 봉사활동 다니시는 분들도 많이 힘들어하세요. 힐링하려고 하는 건지 속죄하려고 하는 건지……. 그런데 사람이 어떻게 생산적인 일만 하겠어요. 계속 하다 보면 언젠간 좋은 결과가 있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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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이 지치신 것 같습니다
힘들어요. 제가 행복하고 열정적이어서 동물을 위해 활동한다고 생각하시는 분들도 많은데 정말 스트레스 받거든요. 안 보고 싶고 안 하고 싶은데도 자꾸 신경 쓰여서 하긴 하지만 쉽지는 않습니다. 가슴 아픈 일인데 좋아서 하는 사람이 어디 있겠어요.

그럴 땐 반려묘들이 좀 힘이 되나요?
고양이들이 있어서 힘든 점이 더 많죠(웃음). 눈뜨자마자 물도 못 마시고 고양이 화장실 청소해 주고 털 치우고 하다 보면 한 시간 반은 지나요. 저녁때도 박스 뜯어놓은 거 정리하고 또 청소하고. 누가 입양하고 싶다 하면 무조건 말립니다. SNS에 올라온 고양이 사진 보면 예쁘지만 실제는 그게 다가 아니잖아요. 제가 키우는 모습을 직접 보면 마음 접더라고요.

외로운 직업이라 위로를 많이 받으시지 않을까 예상했는데요
물론 사랑스럽죠. 동물과의 교감도 정말 있고요. 그렇지만 생명에 너무 감정적으로 접근하진 않았으면 해요. 동물 문제도 마찬가지인 듯합니다. 더 이상 울 때는 아닌 것 같아요. 슬프고 불쌍한 건 한도 끝도 없잖아요. 현실을 올바르게 바라보고 행동으로 옮길 때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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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고양이를 위해 하시고 계신 활동도 있나요?
자동차 트렁크에 사료 싣고 다니는 정도일 뿐인데요, 강동구 고양이 급식소 정말 지지해요. 어떤 동물이든 그렇게 원인 치료를 했으면 좋겠어요. 동물이 인간의 삶을 침범한다고 하면 왜 그런 건지, 그들의 터전을 빼앗아서 그렇다면 다른 대안으로 무엇을 마련할지 고민했으면 합니다.

앞으로의 계획은 어떻게 되시는지 궁금합니다
우선 음악을 더 열심히 할 생각이에요. 제가 영향력 있는 사람이 되어야 그만큼 목소리를 높일 수 있잖아요. 세상을 바꾸고 싶다거나 그런 마음은 아니고요, 저부터 사랑을 실천하면서 동물을 싫어하는 사람들에게까지도 그 사랑을 전하고 싶습니다.

언젠가는 동물 문제가 해결될 수 있을까요?
매일 나쁜 짓을 하면 절대 들키지 않을 수 없는 것처럼, 매일 좋은 일을 하면 언젠가 복을 받는다고 생각해요. 지금 당장 희망이 보이진 않지만 ‘아, 희망이 느껴진다’하면서 투자를 하는 건 아니니까요. 희망은 있다면 있는 거고 없다면 없는 건데…… 각자의 마음속에 존재하는 것 같아요. 모두가 더불어 사는 아름다운 세상이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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