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고양이는 성스러운 신화 속 고양이
버만 고양이
본래 동남아에서 살던 버만 고양이가 서구세계로 전해진 유래는 확실치 않다. 다양한 설이 있으나 하나같이 검증되지 않은 것 뿐으로 결국 버만의 기원은 미스터리라는 사실만 되새겨 줄 뿐이다. 아마도 평생토록 이들이 우리 곁으로 오게 된 정확한 사연을 알기는 힘들 듯 하지만 실망하지 말자. 당신의 고양이 버만에게는 아주 근사한 전설이 깃들어 있으니 말이다.
전설 속 고양이
버만 고양이는 본디 버마(오늘날의 미얀마)의 승려들과 함께하던 반려묘였다. 흰 털에 금빛 눈을 지닌 그 고양이들은 버마 사람들에게 신성시되었는데, 세상을 떠난 승려의 영혼을 고양이들이 극락으로 인도해 준다고 믿었기 때문이었다. 버마의 서부 한 편에 있는 라오춘 사원은 영혼의 윤회를 관장하는 여신, 춘크라얀세를 모시는 곳이었다. 그곳의 대(大)라마 ‘문하’는 평생 춘크라얀세를 섬겨 기도했고 그의 옆에는 늘 ‘신’이라는 이름의 버만 고양이가 함께했다.
어느 날 시암(오늘날의 태국)의 침입자들이 라오춘 사원을 침략해 그날 밤 문하는 생명을 잃게 되었다. 그의 반려묘 신은 춘크라얀세 상을 바라보며 누워있는 문하의 몸 위로 올라가 그의 영혼을 극락으로 인도해 주기를 기도했는데, 숨을 거둔 문하의 영혼이 고양이의 몸에 들어가자 놀라운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고양이의 금빛 눈이 여신의 눈과 같은 푸른 빛으로 변함과 동시에 하얀 털 또한 여신의 머리칼처럼 황금색으로 물들게 된 것이다. 단, 귀와 다리 등 몸의 끝 부분은 짙은 빛깔을 띠었는데 땅에 닿는 모든 것은 불순하기 때문이었다. 그 와중에 승려의 옷에 딛고 있던 고양이의 네 발만은 하얀 빛을 뿜어냈다. 순수하고 거룩한 승려의 영혼과 닿아 세속의 더러움에 물들지 않은 것이다.
그런 일이 있은 다음 날, 놀랍게도 사원의 모든 고양이가 황금 빛 털과 푸른 눈을 가지게 되는 기적이 일어났다. 그리고 죽은 문하의 곁을 충실히 지키던 버만 고양이는 7일 후 주인의 영혼을 인도하며 함께 극락으로 올라갔다고 전해진다. 이렇듯 성스러운 전설 속 고양이 버만은 사람들로 하여금 ‘버마의 신성한 고양이’로 불리며 신비로운 매력을 더해갔다.
샴과는 달라요
긴 털에 물든 짙은 포인트 컬러가 너무나도 아름다운 당신의 고양이 버만은 총 일곱 가지의 컬러 포인트 유형을 지니고 있다. 짙은 푸른색의 블루 포인트와 부드러운 초콜릿색의 초콜릿 포인트, 분홍빛에 회색이 섞인 라일락 포인트 그리고 짙은 갈색을 띄는 씰 포인트가 있으며 이 외에도 크림·레드·토티 및 무늬가 있는 링스 포인트까지 전부 국제 고양이 애호가 협회 CFA(Cat Fancier's Association) 에 승인된 유형들이다.
샴을 쏙 빼닮은 포인트 컬러에 길고 뽀송한 장모를 보면 혹 샴과 페르시안의 교배종이 바로 버만이 아닌가하는 의혹이 일지만 실은 그렇지 않다. 비록 2차 세계대전 이후 단 두 마리만 남은 버만 고양이를 유지하기 위해 다양한 종과의 교배가 이루어진 역사가 있기는 해도, 개체수가 안정된 이후부터는 다시 동일종의 혈통을 유지해 오늘날의 버만 고양이는 샴 그리고 페르시안과는 거의 교집합을 지니고 있지 않은 독립적인 개체라고 전해진다. 이 사실은 체형만 살펴봐도 간단히 알 수 있다. 버만 고양이는 샴 고양이처럼 호리호리한 몸매도 페르시안처럼 땅딸막한 코비 체형도 아니다. 다부진 직사각형의 몸통을 지녀 튼튼하고 넓은 골격을 자랑하는 당신의 고양이는 머리와 몸통에 이어 꼬리까지 떨어지는 비율 또한 훌륭하다.
하얀 글러브를 신은 고양이 버만의 자랑은 또 있는데 바로 뒷발에 뾰족하게 퍼져나간 흰색 레이스다. 양쪽 다리의 레이스는 대칭을 이루는 것이 바람직하며 완벽한 글러브와 레이스를 지닌 버만 고양이의 탄생엔 신의 개입이 필요할 것이라는 여담이 전해지니, 당신의 고양이 버만은 유래로 보나 외모로 보나 특별 그 자체임에 누구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을 것 같다.
느긋한 성격의 반려묘
사파이어 빛의 눈에서 배어나오는 엄숙하고 성스러운 기운이 인상적인 당신의 고양이 버만은 승려와 함께한 반려묘답게 느긋하고 자애로운 성품을 지녔다. 또한 머리가 좋고 사교적인 성격으로 다양한 동물 및 아이와도 잘 지내고 어떠한 환경에서도 비교적 무난히 적응하는 특성이 있다. 다만 주인과 어울리길 좋아하는 버만은 긴 시간 홀로 남겨지면 심한 외로움을 느낀다고 하니 예비 반려인은 이 점을 고려한 후 입양하도록 하자.
뽀송뽀송하고 부드러운 털은 잘 엉키지 않아 많은 관리를 필요로 하지 않는데 이 점도 다른 중장모종 고양이와 비교해 큰 장점이 될 수 있겠다. 다만 어디까지나 많은 모량에 비교해 관리가 쉽다는 것이지 털이 아예 빠지지 않는다는 것은 아니다. 아무리 손이 덜 가는 고양이라도 결국은 고양이라는 이야기다. 이 사실을 명심하면 버만뿐만 아니라 다른 새로운 가족을 맞이하는 데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신비로운 사원의 땅 미얀마에서 건너와 황홀한 반려생활로 당신을 인도하는 버만 고양이. 그들과 함께하는 나날은 간혹 분에 넘친다는 생각이 들 정도의 충만감을 당신에게 안겨 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