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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를 넘어서

  • 승인 2015-01-02 18:27: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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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를 넘어서
나는 고양이 비욘드

후지마비 고양이 비욘드. 장애묘 비욘드. 비욘드라는 이름 앞에는 항상 붙는 말들이 있다. 그렇지만 비욘드의 반려인이자 동화책 <연두 고양이>의 저자 류은 씨에게, 비욘드는 그냥 고양이일 뿐이다. 첫눈에 반해 묘연을 맺었고 어느 가족들처럼 서로 교감하며 살아가는 둘의 모습은 평범하지도 특별하지도 않다.

글 이지희 사진 박민성 자료협조 도서출판 리젬, 류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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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화책 <연두 고양이>의 후지마비 고양이 연두가 실재한다는 걸 알고 근황이 궁금했어요. 비욘드라는 이름으로 살고 있었군요
어린 아이들이 발음하기가 조금 어려울 것 같아 책에서는 연두라는 이름을 썼어요. 원래 이름은 비욘드(이하 욘드)입니다. 저와 욘드가 함께 일하는 곳인 ‘비온뒤무지개재단’에서 따왔어요.

욘드는 어떻게 만나게 되셨는지요
토끼똥 공부방이라는 곳에 길고양이를 돌봐주는 동아리인 ‘길냥이 돌봄이’가 있어요. 당시 제가 지도교사였는데요. 공부방 선생님 중 한 분이, 비를 맞으며 음식물 쓰레기를 뜯고 있는 욘드를 발견하셨습니다. 처음엔 그냥 지나쳤는데 다리가 불편해 보이는 새끼고양이를 도저히 두고 갈 수가 없었다고 해요. 욘드는 공부방에서 머물며 아이들의 보살핌을 받게 됐고 제가 첫눈에 반해 입양했습니다.

다리는 어떻게 다치게 된 건지 혹시 아시나요?
욘드를 데리고 수많은 병원에 다녀봤는데 교통사고다, 낙상사고다 의견이 분분했어요. 최근에 후지마비를 잘 보는 동물병원에 갔더니 유전일 가능성이 아주 높다고 하더라고요. 태어날 때부터 다리를 못 썼던 거죠. 처음엔 아예 다리가 안 움직였는데 지금은 많이 좋아졌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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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를 가진 고양이를 입양하는 게 쉽진 않았을 텐데요
욘드를 처음 만났을 때 가장 먼저 보인 건 장애가 아니라 사랑스러움이었어요. 욘드 표정이 정말 발랄했거든요. 뒷다리는 불편했지만 두 앞발로 활발하게 걸어 다니더라고요. 그 모습이 잊히지가 않았습니다. 그리고 혼자 키워야 하는 거면 힘들었을 텐데 제가 일하는 재단 사람들과 공동양육을 하기로 하면서 입양을 결심할 수 있었어요.

욘드를 같이 키우는 것에 다들 찬성하셨던 건지요
모든 사람들의 동의가 제일 중요했죠. 특히 재단 이사장님은 동물이 편안하게 지낼 수 있는 환경이 아니라면 동물을 키우지 않는 게 낫다는 생각을 가지신 분인데요, 그 분도 욘드를 보자마자 키우기로 마음먹으셨더라고요. 그래서 저도 용기를 낼 수 있었던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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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욘드는 사무실에서 지내는 건가요?
저랑 같이 출퇴근해요. 그럴 수밖에 없는 게 다섯 시간에 한 번은 압박배뇨를 해야 하거든요. 제가 외근을 하거나 지방에 가야하는 상황이면 다른 직원들이 돌봐주고요. 욘드 집이 서너 군데는 되는 것 같습니다. 고양이가 영역동물인지라 스트레스 받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어렸을 때부터 그렇게 살아서인지 다행히 괜찮은 듯해요.

도와주시는 분들이 많긴 하지만 힘드실 것 같기도 한데요
욘드를 위해 해야 하는 일들이 있는 건 맞아요. 그렇지만 제가 욘드에게 해주는 것보다 욘드가 제게 해주는 것들이 훨씬 많습니다.

예를 들자면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욘드가 특별히 애교를 부리진 않지만 존재 자체가 기쁨인 것 같아요. 사무실 분위기도 훨씬 좋아졌어요. 욘드가 오늘 밥은 잘 먹었는지, 압박배뇨는 했는지 이야기하면서 자연스럽게 사람들 사이의 거리감이 좁혀졌습니다. 재단에 방문하시는 분들께도 ‘같이 일하는 고양이’라며 욘드를 소개했는데 오실 때마다 고양이 용품을 챙겨주시더라고요. 다 같이 키우는 느낌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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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실에서 키우는 고양이가 아니라 사무실에서 일하는 고양이군요
그럼요. 저희 비온뒤무지개재단은 성적 소수자를 위한 활동을 하는 곳인데요, 욘드도 동등하게 활동가 자격으로 이곳에서 지내요. 재단의 마스코트죠. 홈페이지 조직도에도 욘드가 들어가 있답니다. 월급도 15만원으로 책정해 사료 값으로 사용하는데 병원비를 많이 써서 월급을 가불한 상태예요(웃음).

다리 말고는 아픈 곳이 없는 건가요?
혈뇨 보는 것 빼고는 건강해요. 압박배뇨가 혈뇨의 원인인데, 욘드는 사람이 계속 배뇨를 도와줄 수밖에 없으니 당뇨 같은 만성질환이라 생각해야 한다더군요. 처음 욘드가 피를 흘렸을 땐 너무 놀랐고 많이 울었는데 지금은 어떤 방법으로 관리해 주는 게 좋을지 차분하게 생각해요. 그래도 마음은 아프지만요.

모든 일에 의연하신 것 같아요
장애묘를 키우는 게 굉장히 힘든 일처럼 여겨져서 그런지 저한테 대단하다, 좋은 일 한다 말씀하시는 분들이 많아요. 그런 이야기를 들으면 무척 부담스러워요. 전신마비 고양이처럼 욘드보다 더 아픈 동물들을 보살피시는 분들도 계시는 걸요. 그에 비하면 저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욘드를 향한 시선은 어떤가요?
한번은 집에 가는데 어떤 아주머니께서 욘드에게 관심을 보이셨어요. 사연을 들려드리자 저를 꼭 안아주시더라요. 장애 고양이라고 하면 안쓰럽게 바라보시는 분들이 많은 것 같아요. 사실 남을 불쌍하게 여기는 마음은 나보다 못하다는 생각에서 나오는 건데, 욘드는 전혀 그렇지 않아요. 자기가 남과 다르다거나 남보다 못났다고 생각하지 않죠. 다른 고양이들처럼 활발하고 명랑하거든요. 장애묘라는 이유로 무조건 동정하진 말아주셨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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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두 고양이>에서도 그런 바람이 느껴졌던 것 같아요. 아이들과 연두가 동등하게 걸어가는 마지막 장면이 인상 깊었거든요
컨셉을 어떻게 잡을까 ?고민을 많이 했는데 후지마비 고양이와 사람들이 같이 살아가는 모습을 자연스럽게 보여주고 싶었어요. 갑자기 연두가 장애를 극복한다는 식의 판타지는 원하지 않았거든요. 물론 토끼똥 공부방 아이들을 주인공으로 했기 때문에 픽션인 부분도 있지만 실제로 아이들이 임시보호를 했으니까요. 누가 주인공을 할지는 애들끼리 가위바위보로 정했다고 하더군요(웃음).

책 속 아이들은 정말 책임감 있는 모습이었지만 현실에서는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잖아요
그렇죠. 어느 날은 슈퍼에 가다가 엄마랑 초등학생쯤으로 보이는 아이가 싸우는 모습을 봤습니다. 손에는 상자가 들려있었죠. 엄마가 “갖다 버려”, “또 들고 오면 혼날 거야”하니까 애가 울면서 담벼락 밑에 상자를 놓고 갔어요. 고양이더라고요. 머릿속이 하얘지더군요. 난 욘드도 있는데 어떡해야 하는 건가 정신이 없는데 고양이는 계속 야옹 야옹 울고. 지나가던 커플이 정말 예뻐하면서 키우겠다고 데려가는 걸로 마무리됐지만 그때 참 많은 생각이 들었어요. 욘드를 발견한 선생님도 정말 괴로웠다고 하셨는데 이런 기분이었겠구나 싶었습니다.

그러고 보니 구조 결정도 정말 힘들었을 것 같아요
욘드를 처음 봤을 때 ‘왜 나는 돈이 없나’, ‘왜 나는 이런 집에서 사나’ 많이 한탄하셨대요. 어찌 보면 욘드를 키우기로 한 저보다 길에서 데려오기로 결정한 그분이 더 큰 결심을 하신 거죠. 정말 감사해요. 얼마 전에는 나양이라는 고양이가 토끼똥 공부방에 들어왔대요. 사고로 앞발을 다쳐 큰 수술을 받았는데 다리를 절게 됐어요. 다행히 좋은 분께 입양됐습니다. 바로 연두 고양이 책을 낸 출판사로요. 욘드를 공동양육하는 모습을 보고 용기를 내신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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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두 고양이>가 어린이뿐만 아니라 어른들에게도 영향을 주는군요
제 꿈이 바로 어른들이 볼 수 있는 동화책을 내는 거예요. 두 번째 책에는 공동양육에 관한 구체적인 이야기를 담고 싶습니다. 조금씩 준비하고 있어요.

그 책 얼른 보고 싶네요. 또 계획 중이신 일은 없는지요?
올해 9월 9일 고양이의 날 전시 주제가 ‘행운’이라고 해서 같이 이야기해보기로 했어요. 욘드를 만나고 많은 분들이 각자의 자리에서 길고양이를 위한 일들을 하고 있다는 걸 새삼 깨달았습니다. 여기에 사회적인 노력이 같이 이루어졌으면 하는 바람이에요. 강동구청에 마련된 고양이 급식소나 망원 파출소에서 돌보는 고양이 망고처럼, 공공기관에 고양이를 접할 수 있는 요소들이 생겼으면 해요. 사람들과 공감대를 형성해야 길고양이에 대한 인식이 좋아질 것 같습니다.

그런 면에선 앞으로 욘드도 많은 역할을 할 듯해요
욘드가 제게 주는 행복에 비하면 후지마비라는 장애는 별 것 아닌 것 같아요. 사람에게서는 받을 수 없는 위로를 욘드가 해 줍니다. 그게 동물의 힘이 아닐까요. 이런 고양이도 있다는 걸 알아줬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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