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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고양이와 나, 우리, 같이 살아요 프…

  • 승인 2015-01-02 18:1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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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고양이와 나, 우리
같이 살아요 프로젝트

경기 불황, 청년 실업, 삼포 세대. 먹고 살기 참 힘든 세상이다. 내 몸 하나 건사하기도 힘든데 남을 신경 쓴다는 건 여유를 넘어서 사치다. 하물며 그게 길거리의 고양이라면 더더욱. 그런데 공책 한 권만으로 길고양이를 돕는 젊은이들이 있다. 그림을 잘 그리는 친구는 예쁜 공책을 만들고, 말솜씨가 좋은 친구는 사람들에게 공책을 소개한다. 그런 공책 한 권을 사는 것처럼, 길고양이와 같이 사는 것도 어렵지 않을 수 있다.

글 이지희 사진 박민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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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손을 잡았던 그날
서울시 성북구 석관동에 자리한 ‘같이 살아요 프로젝트’ 작업실. 빈 집 혹은 동네 슈퍼처럼 보이는 이 공간이 길고양이와의 공존 프로젝트를 추진 중인 ‘FIREFISH’팀의 아지트이다. 대학원에서 처음 만나 애니메이션을 창작하려고 뭉친 세 청년들이 어쩌다 길고양이를 위해 디자인 상품을 만들어 판매하게 된 걸까. 프로젝트를 기획한 춘배 씨는 이 모든 것이 새끼 고양이 한 마리가 내민 작은 손에서 시작됐다고 했다.
“2년 전쯤엔 용산에 사무실이 있었어요. 건물 4층이었는데 어느 날 밑에서 고양이 울음소리가 들렸습니다. 엄마 고양이가 데려가겠거니 했는데 저녁 여덟 시부터 다음날 아침 일곱 시까지 울더라고요. 버려진 아이구나 싶었어요. 1층에 내려가 보니 실외기 뒤에 쥐인지 고양이인지 구분이 안가는 동물이 꿈틀거리고 있었죠. 사람이 들어갈 수 없는 좁은 공간이어서 손만 겨우 내밀었는데, 새끼 고양이 한 마리가 쫄래쫄래 나와서는 장난을 걸더군요.”
춘배 씨는 그렇게 고양이 ‘장수’를 처음 보았고 그대로 두면 죽을 것 같아 작업실로 데리고 왔다. 영화 같은 그들의 만남, 그러나 고양이 치료비는 현실이었다. 털은 숭숭 빠져있고 눈에는 덕지덕지 눈곱이 낀 장수와 동물병원에 가고 나서야 알았다. 병원비가 그렇게 비싸다는 것을.
“정말 놀랐어요. 주머니에 삼만 원 있었는데……. 다행히 장수는 치료 후 건강을 되찾고 저희와 같이 살게 됐지만 길고양이의 고생스러운 삶에 대해 생각하는 계기가 됐어요. 장수처럼 아파서 죽어가는 고양이들이 많겠다 싶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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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부는 투명하고 분명하게
장수와 같은 처지에 놓인 길고양이를 위해 무엇이든 하자고 뜻을 모은 춘배 씨와 팀원들. 그런데 봉사활동을 하자니 다들 심하게 낯을 가리는 게 문제였다. 결국 각자의 재능을 살려 디자인 상품을 제작하고 판매해, 수익금의 일부를 길고양이를 돕는 비영리 시민단체 ‘한강맨션 고양이’에 치료비로 기부하기로 했다.
그러나 여태 애니메이션만 만들었지, 무언가 팔아본 적은 없었기에 잘 안되면 어떡하나 걱정이 앞섰다고. 제일 먼저 커다란 노트 하나를 내놨는데 아니나 다를까, 판매가 영 신통치 않았다.
“한 달 동안 노트 열 몇 권 팔았던 것 같아요. 적은 돈을 보내기 미안해서 판매 금액과 관계없이 사비를 보태 기부했죠. 그러다가 한강맨션 고양이에서 주최하는 바자회에 초대를 받았어요. 다양한 제품을 선보이는 게 좋을 것 같아 공책 여러 개와 에코백을 제작해 가져갔습니다. 그런데 예상 외로 반응이 뜨거워서 가져간 물건을 거의 다 팔았어요. 그날 바자회 수익 중 5분의 1이 저희가 낸 거였죠.”
그 후 입소문을 타 판매량이 조금씩 늘었고 드립 커피세트, 보온병까지 상품 군에 추가됐다. 모든 제품은 수익금의 반액을 기부하는 것이 원칙인데 현재 한 달 평균 사십만 원가량을 길고양이 치료비로 보내고 있다.
“수익의 일부를 좋은 일에 쓴다는 상품들을 보면 판매 금액의 일 프로 혹은 정말 미미한 수준이 기부되더라고요. 기부 내역이 구체적이고 분명해야 사는 사람 입장에서도 의미가 있을 것 같아 금액도 정확히 밝히고 용도도 치료비로 정했습니다.”
같이 살아요 프로젝트의 올해 목표는 월 백 만원 기부하기. 지금은 블로그를 통해서 판매 중이지만 안정적인 수익 확보를 위해 앞으로 쇼핑몰도 갖추고 상품도 다양하게 만들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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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 같이 살아요
운명처럼 장수를 만나 시작한 같이 살아요 프로젝트. 그 후 고양이 ‘태평이’를 둘째로 맞이하면서 작업실은 사장님 격인 고양이 두 마리와 일꾼인 팀원 세 명으로 복작거리고 있다. 본업과 프로젝트를 병행하느라 힘들지 않을까 싶었는데 오히려 춘배 씨는 고양이들이 없었다면 팀이 진작 해체됐을 것이라 말했다.
“저희들끼리 얼마나 많이 싸우는데요. 장수랑 태평이 먹여 살리려고 지금까지 모여 있는 거예요(웃음). 지금은 생계를 위해 다른 일을 병행하고 있지만 프로젝트가 활성화하면 길고양이들을 돕는 일만 하는 게 꿈입니다.”
임시 오픈 식으로 소소하게 활동한 작년 한 해에 대해 춘배 씨는 ‘만족스러웠다’고 평가했다. 고양이를 위한다는 이유만으로 그들의 프로젝트를 돕는 사람들을 보며 고양이를 좋아하는 이들의 강한 결집력을 느꼈다고. 하지만 가야 할 길이 아직은 멀다.
“저는 길고양이에 대한 인식이 예전보단 훨씬 나아졌다고 생각했어요. 근데 그게 착각이었더라고요. 제 주위에는 고양이를 예뻐하는 사람이 많아서 그런 거였어요. 전혀 다른 부류의 사람을 만나보면 여전히 도둑고양이라 부르고 고양이에 대해 오해하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고양이를 돕는 사람들을 향한 부정적인 인식에 대해서도 춘배 씨는 안타까운 마음을 표했다. 단지 고양이를 좋아하거나 고양이에 집착해서 길고양이를 돕는 게 아니라고.
“이 도시에는 사람 말고도 다른 생물들이 살고 있고 그럴 권리가 있다고 생각해서 하는 일이에요. 큰 해를 끼친다면 고민해야 할 문제인 건 당연하지만 최소한 사람이 필요해서 데려온 고양이나 개들에게는 조금이라도 책임감을 가져야 하지 않을까요? 다 같이 사는 방향으로 갔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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