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고양이란
캣쇼 심사위원 이선희
2014년 8월 31일, 한국인 최초의 캣쇼 공인 심사위원이 탄생했다. 11월 22일 일본에서의 데뷔 쇼를 앞두고 있는 이선희 씨. 브리더(특정 품종을 전문적으로 키우는 사람)로 시작했고 캣쇼 심사위원으로 활동할 예정이자 고양이를 사랑하는 한 사람인 그녀가 생각하는 아름다운 고양이란 어떤 모습일까.
글 이지희 사진 박민성 자료협조 러블미
심사위원이 되신 걸 축하드립니다. 장장 14년이 걸렸다고 들었어요. 원래 그렇게 오래 걸리는지요
우리나라처럼 캣쇼가 자주 개최되지 않는 지역이라면 힘든 편입니다. 캣쇼 참가 횟수나 그랜드 챔피언 이상의 고양이 배출 여부, 다른 품종을 브리딩한 경력 등 자격 요건이 많거든요. 지금은 캣쇼가 1년에 3~4회 정도 열리지만 예전에는 그보다 적어서 조건 갖추기가 어려웠어요.
그럼 그전엔 브리더셨군요. 캐터리(브리더의 계획 하에 번식이 이루어지는 곳)는 어떤 계기로 시작하신 건가요?
어렸을 때부터 집에 늘 강아지가 있었습니다. 결혼하고는 키우지 않았는데 아이가 세 살 쯤 되니 역시 반려동물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러다 문득 어린 시절 저희 집에 자주 나타나던 길고양이가 떠올랐습니다. 그 아이를 무척 예뻐했던 터라 고양이를 키우기로 하고 웹서핑을 하다가 우연히 러시안블루를 봤어요. 생전 처음 보는 고양이였는데 한눈에 반했습니다. 이렇게 아름다운 고양이가 있었구나 싶었지요. 키우고 싶다는 열망이 들었습니다.
10여 년 전이면 국내에는 캐터리가 거의 없었을 텐데요
네. 러시안블루 수입업자를 통해서 한 아이를 데리고 왔는데 사진하고 많이 달랐어요. 실망했다기보다는 놀랐지요. 그래서 공부를 시작했고 순혈종에 대해 알게 됐습니다. 제 눈으로 꼭 한번 러시안블루를 보고 싶었는데 우리나라에서는 도저히 방법이 없더군요. 이럴 바엔 스스로 브리더가 되겠다고 결심했습니다.
그전까지는 고양이와 전혀 관련 없는 삶을 사셨군요
이런 길을 걸을 거라곤 상상도 못했어요. 브리더가 되려고 해외 브리더들에게 이것저것 문의했는데 그때만 해도 우리나라에 대한 인식이 많이 나빴습니다. 이메일을 보내면 한국은 보신탕을 먹지 않느냐는 답변을 보내는 분들도 있었고 아예 답장이 없는 경우가 대다수였어요. 지극정성 끝에 일본의 한 브리더로부터 러시안블루 한 마리를 받게 됐습니다. 그 후 고양이에 뜻이 있는 사람들끼리 모여 KOCC(한국캣클럽)를 만들었어요. 그리고 한국 최초의 캣쇼를 개최했지요.
말 그대로 맨땅에 헤딩이었네요. 쉬운 일이 아니었을 것 같습니다
고양이를 좋아하는 마음이 원동력이 됐어요. 원래 동물을 예뻐했지만 고양이는 정말 저랑 성격적으로 딱 맞았거든요. 고양잇과 동물의 우아한 아름다움에 빠지고 나니 그 매력에서 헤어나오기가 힘들었습니다.
오랜 시간 브리더를 하시다가 심사위원이 되기로 결심하신 이유가 궁금합니다
의무감이 컸어요. KOCC는 비영리적 클럽으로 자원봉사와 갹출로 운영되는데요, 캣쇼 개최를 위해 외국 심사위원을 초청하면 비용이 부담스러울 정도로 많이 듭니다. 그래서 우리나라 심사위원이 있어야겠다는 생각을 계속 했었어요. 캣쇼 공인 심사위원이 되기 위한 조건이 20~30개 되는데 그나마 제가 조건에 근접한 사람이었고요. 한국에서는 갖추기 불가능한 조건이 몇 개 있어 TICA(국제고양이협회)와의 협상 끝에 2011년부터 심사위원 트레이닝을 시작했습니다.
수업을 받는 건가요?
거의 자습이에요. 여러 가지 규칙과 유전학, 심사 기준 등에 대해 공부하고 시험도 치러야 합니다. 제가 소속된 TICA에서 공인한 품종이 60개 정도 되는데 각 품종마다 기준이 다르니 전부 외워야 하지만 그게 다는 아니에요. 캣쇼에 나가서 고양이들을 많이 보고 계속 배워야 제대로 심사할 수 있습니다.
캣쇼란 한마디로 어떤 행사라고 할 수 있을까요?
그 품종의 기준에 누가 더 알맞으냐를 경쟁하는 자리입니다. 해당 묘종만의 독특함을 얼마나 많이 가지고 있는지가 중요하지요.
심사 도중 장난감도 흔들더라고요
얼굴 모양이나 몸길이를 보기 위해서입니다. 새끼 고양이들은 캣쇼에 익숙하지 않으니 몸을 움츠리는 경우가 많거든요. 장난감을 가지고 놀다보면 자연스럽게 몸을 펴지요. 단모종 같은 경우에는 활동성에 따라 추가 점수가 있을 수 있고요. 마지막으로는 팬서비스입니다. 캣쇼에 오는 즐거움 중 하나가 자기 고양이가 사람들 앞에서 귀여움 받는 거거든요. 잘 노는 걸 보면 뿌듯하고 관람객들도 그런 모습 보면서 고양이를 더 좋아하게 되고요.
단순히 경쟁만을 위한 자리는 아니군요
고양이 키우는 사람들끼리 만나면 한도 끝도 없이 수다를 떨잖아요. 캣쇼 때도 그래요. 심사에 나가야 하는데 모여서 이야기하느라 순서를 놓치시는 분들도 많습니다. 나오라고 방송하면 그제야 뛰어나가죠. 흥겨운 분위기예요.
일반인들도 참여할 수 있나요?
중성화 수술을 완료한 고양이들이 나오는 분야가 있습니다. 많은 반려묘들이 중성화 수술을 받으니 일반 반려인분들을 위한 참가 부문이라 할 수 있지요. 제가 개인적으로 굉장히 집중하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많은 분들이 즐겁게 놀다 가시면서 캣쇼가 더 활성화됐으면 좋겠어서요.
코리안 쇼트헤어도 캣쇼에 나갈 수 있는지요?
물론입니다. 하우스홀드 펫(Household Pet) 분야에서 심사받을 수 있어요. 우리나라에서는 코리안 쇼트헤어, 줄여서 코숏이라고 부르는 고양이들을 외국에서는 하우스홀드 펫이라고 해요. 그 나라의 기후에 따라 조금씩 차이는 있지만 거의 다 비슷하게 생겼습니다.
코숏의 심사는 어떻게 보나요?
기준이 따로 없기 때문에 가장 중점적으로 살펴보는 건 건강함이고 두 번째가 독특한 아름다움이에요. 건강한 아이들은 털에 윤기가 있고 눈빛에 생기가 돕니다. 고양이 스스로 만족스럽게 살고 있는 티가 나는 게 제일 중요해요. 기준이 없다 보니 결과가 주관적일 수 있는데 신기하게 심사위원들끼리 의견이 일치할 때가 많습니다. 예쁘다고 생각하는 건 다들 비슷한 것 같아요.
코숏이 실제로도 많이 참가하는지 궁금해지는데요
안타깝게도 거의 없습니다. 맨 처음 캣쇼 시작했을 때가 오히려 많았지요. KOCC를 처음 만들었을 때 순혈종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을 가진 애묘인들이 많아서 코숏도 캣쇼에 나와 달라 독려했고 많이들 참가해주셨거든요. 외국에서도 점점 줄어드는 추세라 아쉽습니다.
순혈종이라는 단어가 주는 거북함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렇지요. 적절한 표현이 있으면 좋겠습니다. 영어로는 퓨어브리드(Purebreed)와 페디그리(Pedigree)이라는 말을 쓰는데 저는 혈통서가 있는 고양이를 뜻하는 페디그리 캣이 맞다고 봐요. 혈통 고양이는 외모가 아니라 혈통서로 판별하거든요. 순혈종이라는 건 유전적으로 성격과 외모가 굳어진 고양이를 의미하지 그 외엔 특별할 게 없습니다.
품종이라는 게 꼭 있어야 할까요?
사람마다 심미안이 다른데요. 품종마다 특징적인 모습과 성격이 있다 보니 본인이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기준에 가까울 확률이 높지요. 눈길이 가는 건 자연스러운 일인 것 같습니다. 물론 브리딩이 인위적인 방식이라는 의견도 맞습니다. 그렇지만 고양이는 이미 반려동물의 길을 걷고 있잖아요. 인간의 기호에 맞게 변했고 사람과 교감하며 살아가는 존재이니 야생동물과는 다르지요. 어느 게 더 좋다, 필요하다가 아닌 다양성으로 인정해주셨으면 합니다. 브리더는 그 과정에서 품종이 가진 특징을 유지하고 나아가서는 발전시키는 사람으로서 반려인들에게 선택의 한 부분을 제공하는 것이고요.
사실 브리더에 대한 안 좋은 인식도 많지요
어떤 목적을 가졌느냐에 따라 명망 있는 브리더가 될 수도 있고 흔히 이야기하는 업자가 될 수도 있어요. 캐터리 브리더들은 대부분 직업이 따로 있기 때문에 고양이를 돈벌이 수단으로 여길 필요가 없습니다. KOCC도 비영리성과 학구적인 분위기를 계속 지켜나가고 있고요. 그런 전통이 이어져서 다행이라 생각하고 앞으로도 그랬으면 합니다.
브리더든 업자든 수익이 목적이라는 이야기도 많더군요. 속상하실 것 같습니다
돈 때문에 하는 일이라면 브리더들이 3년에 두 번 번식을 시킬 이유가 없지요. 고양이는 1년에 네 번까지도 임신이 가능하기 때문에 이윤을 얻고자하는 순간 그럴 수 있는 구조가 됩니다. 그렇지만 그렇게 하면 복지는 엉망이 돼요. 고양이가 오래 살기 힘듭니다. 브리더를 해서 아이들 사료 값만 댈 수 있어도 다행이고 대부분은 비용을 들여가며 해요. 본인이 좋아서 하는 일이니 그에 대해 불평하는 브리더도 있어서는 안 되고요.
아, 그런지는 미처 몰랐습니다
단순 계산으로 한 마리에 얼마씩 분양하면 1년에 얼마 벌겠다 하시는 분들도 계신데 아이들 관리비용 대기도 빠듯해요. 한번 아프면 병원비가 어휴……. 남들 은 돈방석에 앉는 줄 알지만 가족들 눈에는 똥더미 위에 앉아있는 거예요(웃음). 혹시 그렇지 않은 브리더들이 있더라도 도매급으로 보지는 말아주셨으면 합니다.
그간 수많은 고양이를 보셨지요. 심사위원님이 생각하는 아름다운 고양이는 어떤 모습인가요
고양이는 다 예뻐요. 생명은 다 아름답고 사랑스럽지요.
심사 기준과는 별개인 건가요?
제가 맨 처음에 러시안블루인 줄 알고 데려왔던 고양이의 이름이 아롱이에요. 기대했던 모습은 아니었지만 제일 사랑한 건 그 아이였습니다. 희귀병에 걸렸는데 나이가 만으로 열세 살이라 수술할 수가 없다고 해서 고통을 경감하는 치료만 하다 재작년에 떠났어요. 아롱이 생각만 하면 아직도 눈물이 납니다. 어떤 품종에 열정을 가지고 브리딩하는 것과 자기 고양이를 사랑하는 건 완전히 다른 일이에요. 꿈꿔왔던 완벽한 고양이가 태어난다고 해서 그 애를 가장 사랑하진 않아요. 고양이를 사랑하는 건 그냥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아무런 조건도 이유도 없지요.
그러고 보니 품종이냐 아니냐를 사랑과 연관 지었던 것 같네요
그럴 때 안타깝습니다. 굳이 그렇게 나눌 필요가 없다고 생각해요. 품종묘 키운다고 길고양이한테 “어머, 똥고양이네”하지 않거든요. 브리더들도 고양이라면 다 좋아해요. 캣맘 활동하는 사람들도 많고요. 애묘인들끼리 힘을 모아서 더 많은 사람들이 고양이를 좋아하고 보호하는 문화를 정착시켰으면 하는 바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