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고 양 이 의 생 활
이 고양이를
구조해도 될까요?
여기저기서 태어나는 고양이는
여기저기서 주워진다.
주워온 사람은 한결같이 말한다.
불쌍해서.
냥줍이라는 가벼운 단어로 불리는
이 행위의 행위자는
병원에 가져다주거나
구조 요청을 하는 것으로
마침표를 찍었다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사실은,
아주 긴 이야기의 시작일 뿐이다.
얼마나 책임질 수 있나요?
어느 봄, 한 통의 전화가 훈혜 씨에게 걸려왔다. 낯선 사람의 익숙한 질문.
“길에서 불쌍해 보이는 새끼 고양이를 주웠는데, 어떻게 해요?”
도와줄 수 있는 부분과 구조자가 책임져야 할 부분, 그에 따라 발생할 비용을 설명하자 알겠다며 전화를 끊었다. 혹시 임보처가 안 구해지면 다시 연락 달라 부탁했지만 전화기는 잠잠했다. 대신 훈혜 씨의 마음만 불안으로 일렁거렸다. 혹시나 하고 전국 동물보호소 현황을 볼 수 있는 앱에 접속했다.
거기에 전화 상담을 했던 그 고양이 둘이 있었다. 보호소로 달려간 훈혜 씨는 아는 고양이라 설명하고 입양계약서를 쓰려 했다. 하지만 둘 중 하나는 이미 이 세상에 없었다.
젖먹이 고양이는 최소 1시간 30분에서 2시간마다 젖을 먹어야 하고, 그만큼 자주 배변을 유도하고 닦아주어야 한다. 수시로 먹이고 닦아가며 따뜻하게 품어줄 어미를 잃은 젖먹이에게는 어쩌면 당연한 결과였는지도 모른다. 다른 하나만이라도 살려보려 입양 절차 후 데리고 나왔지만, 다음 날 제 형제의 뒤를 따랐다.
이런 전화와 죽음은 절대 특별하거나 예외적인 일이 아니다. 처음도 끝도 아니다. 불확실로 가득한 길고양이의 삶에서 확실한 사실은 그것 하나다.
제일 잘 돌보는 건 엄마
“혹시 구조 좀 도와주실 수 있으세요?” 그렇게 묻는 목소리에는 물기가 가득했다. 산책길에 안면을 익힌 캣맘과 고양이 식구들 이야기에 훈혜 씨는 단숨에 현장으로 갔다. 어미가 새끼를 잘 돌보지 못하니 구조하는 게 좋을 것 같다는 것이 캣맘의 의견이었다. 한 번은 어미에게 밀려 새끼 고양이 하나가 집 밖으로 흘러나온 적도 있다고 했다.
캣맘의 걱정과 달리 새끼 고양이들의 상태는 양호했다. 눈가가 조금 불긋한 걸 제외하면, 털은 깨끗했고 배는 통통했다. 어미가 잘 먹이고 잘 씻기고 있다는 뜻이었다. 다만 기존의 집이 새로 생긴 식구까지 보듬기에는 좁았다. 구조는 필요 없을 것 같다, 어미가 아주 잘하고 있다, 다만 집은 조금 큰 것으로 바꿔주는 것이 좋겠다는 의견을 전했다.
집 교체 요령을 알려주는 것으로 상담을 마무리했지만, 캣맘의 근심은 조금도 덜어진 것 같지 않았다. 뭔가 더 드라마틱한 변화, 거칠고 힘든 길 위의 삶에서 건져내어 위험도 불편도 없는 곳에서 살게 해주길 희망했던 모양이었다.
훈혜 씨는 그런 캣맘에게 지난 몇 년 동안 다양한 곳에서 다양한 사람을 대상으로 했던 그 말을 다시 했다. “엄마가 제일 잘 키워요. 새끼들을 돌보고 싶으시면 어미에게 맛있고 좋은 것을 많이 주세요.”
얼마 후 새끼들이 주변을 헤집고 다니기 시작하자 이 가족은 그 집을 떠났다. 그리고 그 뒤처리와 청소는 캣맘이 맡았다. 이소 후에도 고양이 가족과 두 사람은 간혹 만난다. 어미는 사람의 시선이 덜 닿는 안전한 곳에서, 젖먹이에서 아깽이, 다시 청소년묘로 자라나 갈 세 마리 새끼를 돌본다. 그리고 훈혜 씨와 캣맘은 먼발치에서 와락 다가가고 싶은 마음을 아껴가며 이 고양이 식구를 챙기고 있다.
그래도 구해야 할 때가 있다
한겨울, 집 근처 쇼핑센터의 지하주차장에 차를 대던 중이었다. 훈혜 씨와 친구 진선 씨의 눈에 작은 고양이 하나가 들어왔다.
버려진 걸까? 길을 잃은 걸까? 어미는 근처에 있을까? 가만히 다가가면서 새끼를 살폈다. 냄새도 나지 않았고, 눈가도 깨끗했다. 배는 빵빵했고 털도 뽀송했다. 발은 까만 아스팔트 바닥을 당당하게 딛고 있었고, 활기차고 호기심도 많아서 공처럼 굴러다녔다. 어미의 존재가 어린 고양이의 온몸에서 느껴졌다. 수많은 사람과 차가 오가는 지하주차장이라는 것이 걱정스러웠지만, 추운 겨울을 피할 더 나은 장소가 있을 것 같지도 않았다.
그 후로 두 사람은 한 달 가까이 같은 장소를 찾았다. 처음에는 정말 어미가 있고 잘 관리 받는지 확인하기 위해서였고, 그다음은 구조하지 않겠다는 결정이 옳은지 자신의 눈으로 보기 위해서였다. 이제는 안심하고 안 와도 되겠다 싶을 때쯤, 변화가 감지되었다. 털이 눅진거리는가 싶더니 냄새가 나기 시작했다. 눈곱이 끼고 눈가도 부어올랐다. 이른 독립이라고 하기는 어려운 상태의 어린 것을 보며 어미가 먼 곳으로 먹이활동을 하러 간 것이길 바랐다.
다시 주차장 출근이 시작되었다. 그 고양이를 찾아 주차장을 돌아다니며 관찰하고 확인했다. 어미가 불귀의 객이 된 것이든, 이른 독립을 시킨 것이든 이대로 길에서 살 수는 없는 상태라는 걸 확신하고서야 구조를 결정했다.
발견부터 이 결심까지 6주 동안, 매일 같은 장소를 찾으며 살피고 고민해야 했다. 훈혜 씨의 전화기에는 눈에 회반죽을 얹은 듯한 회색 고양이 사진이 있다. 신비한 우주 풍경 같은 눈동자 대신에 붉게 부풀어 레이스처럼 쪼글거리는 눈꺼풀의 아기 고양이 사진도 있다. 보여주기 위해, 정말 구조가 필요한 상태가 어떤 것인지 알려주기 위해서 저장해둔 사진이다. 선뜻 손 내밀고 싶지 않은 상태, 딱 보기에도 병원에 가야 할 것 같은 상태, 냄새나고 아파 보이는 상태, 그런 상태만이 인간이 개입해도 괜찮은 때이다.
인간에게 맡기는 순간
몇 년 전, 훈혜 씨 집 뒤에 한 고양이 가족이 살았다. 고양이 밥을 싸들고 다니며 동네 고양이들과 눈도장을 찍고 안면을 익혀왔던 덕분에 동네 대장 고양이의 부인인 어미 고양이와 대장 고양이의 새끼 세 마리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 창문을 열면 보이는 담장 위에서 어미와 세 새끼가 평화로이 노니는 모습을 보며 때때로 밥이나 간식을 챙겨주었다.
그러던 어느 날, 창문 아래서 절박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내다보니 새끼 고양이였다. 며칠 전까지 제 가족과 있던 새끼 중 하나였다. 새끼가 사람도 들을 정도로 소리 높여 우는데 어미는 어디 있나 봤더니, 늘 앉아 있던 그 자리에 있었다. 그러나 등을 보인 채였다.
어미가 버린 거구나, 나 주는 거구나. 순간 알았다고 한다. 살려는 운명이었는지, 쉽게 잡힌 새끼는 병원 치료 후 그 집에 셋째가 되었다.
새끼가 너무 약하게 태어났거나, 병이 깊거나, 어미가 힘에 부치면 때때로 새끼를 포기하기도 한다. 하지만 반드시 알아야 할 것은 대부분의 어미 고양이는 제 새끼를 지극히 돌보고 아낀다는 점이다. 쉽게 포기하지 않는다. 그래서 지나가는 길에 아기 고양이가 보인다고 덥석 잡아들거나 불쌍하다고 쓰다듬지 말아야 한다. 또 정리해준다고 이것저것 만지거나 옮겨서도 안 된다. 낯선 냄새가 나는 새끼나 서식지로 돌아오길 어미는 주저한다.
바라봄과 기다림
고양이는 사람과 가까이 살고 있기에, 고양이가 자연의 일부라는 것을 우리는 너무 쉽게 망각한다. 길 위의 고양이와 함께 사는 방법은 인간의 기준과 감정을 성급히 들이대는 것이 아니라, 가만히 바라보고 지치지 않고 기다리다 그들이 필요할 때에야 손을 내미는 것이다.
내가 필요할 거라는 인간의 확신이 아니라 ‘내가 필요하니?’라는 조심스러운 질문과 그들의 대답을 기다리는 자세이다.
글 김바다
자료협조 배훈혜, 노진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