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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유묘 일기

  • 승인 2020-06-10 14:2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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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t's Life

-수유묘 일기-




사과야, 살구야, 카레야.

언니는 계속 자책을 하게 되네.

온도가 너무 뜨거웠나, 아니면 차가웠나.

사료를 조금 더 잘게 부수어 줄 걸 .
분유를 좀 더 미지근하게 해 줄 걸 .
조금 더 많이 안아주고 시간을 보낼 걸.

자주 찾아갈게, 절대 잊지 않을게.
나에게 와주어서 고맙고 미안했어.

많이 사랑했어. 
너희들 모두 나의 고양이란다.


수유묘 인공 포육의 일상

3시간에 한 번씩 일어나 분유를 먹인다. 위가 작아 한 번에 많은 양을 먹지 못하므로 등을 토닥토닥 두드려 트림을 시키고 생식기를 부드럽게 자극해 대소변을 받아낸다. 

그리고 다시 한 번 분유를 먹인다. 입가를 닦아주고 케이지 온도를 점검하고 오물이 묻은 부분을 청소한다. 수유묘 인공 포육의 일상이다. 

수유기가 끝날 때까지는 외출은 물론이고 잠을 자기도 어렵다. 그동안 꾸준히 어미 없는 젖먹이들 인공 수유를 해 왔지만, 이번 녀석들은 너무나 작았다. 

탯줄을 그대로 달고 온 치즈 3형제는 기껏해야 태어난 지 하루 이틀. 갓 출산한 어미 고양이에게 누군가 뜨거운 물을 뿌려 쫓아낸 뒤 구청에 신고해 이 작은 것들을 보호소에 넣었다고 했다. 
 


손바닥 위에 세 마리를 모두 올려놓아도 넉넉할 만큼 작디작았던 치즈 3형제는 젖병을 물 줄도 몰랐다. 어미젖이 아니니 분유의 맛도 어색해서 계속 먹기를 거부했다. 

대부분 젖먹이들이 이렇다. 포기하지 말고 조금씩 혓바닥에 흘려 넣어주며 ‘이것은 분유고 네가 먹어야 하는 거야. 먹어야 살아’ 하고 알려주어야 한다. 억지로 많은 양을 흘려 보내면 기도로 넘어가 위급한 상황이 되니 혀에 묻을 만큼만, 맛을 보여준다는 느낌으로 말이다. 

분유의 맛에 적응한 3형제에게 사과, 살구, 자두라는 이름을 붙여주었다. 늘 그랬듯이 반짝반짝한 어린 고양이로 성장하면 좋은 가족을 찾아줄 계획이었다. 

며칠이 지났을까, 갑자기 한 마리가 분유를 먹지 않고 축 늘어지기 시작했다. 동물 병원에 달려가 수액을 맞히고 이름 모를 주사도 맞혀왔지만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그날 밤 내 손바닥 안에서 작은 아기 고양이가 떠났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다른 한 마리 역시 별이 되었다.
 


난생 처음 겪는 일이었다. 열 마리가 넘는 젖먹이들을 돌보면서 한 번도 겪지 못했던 일이었다. 내 품 안에서 가쁜 숨을 몰아쉬며 힘들게 버티고 있는 젖먹이에게 해 줄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너무 무력했다. 

젖먹이들의 숨이 점차 잦아들고 입가에 말간 침이 흘렀다. 선홍색이던 코와 젤리가 창백하게 변했다. 작은 생명이 내 품 안에서 꺼져가는 것을 지켜보며 나는 그저 울고, 쓰다듬고, 입맞춤을 해주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그렇게 생애 처음 고양이와 이별을 했다. 함께 보낸 시간이 짧다고 해서 이별의 무게가 가벼운 것이 아님을 그렇게 배웠다. 나는 아직도 그날의 기억을 떠올리면 마음이 저려온다.

다행히도 남은 한 마리는 악착같이 자라주었다. 젖병을 힘차게 빨고 배가 고프면 우렁차게 나를 불러댔다. 

그러던 어느 날, 치즈 3형제를 내게 임시보호 보냈었던, 유기묘 구조활동을 하시는 지인 분께 연락이 왔다. ‘집사님, 힘드신 거 알지만…. 정말 젖먹이들을 더 받아주실 수는 없으실까요.’ 하며 젖먹이 두 마리가 보호소로 또 들어왔다는 소식을 전해주셨다. 

그맘때 나는 조금 패닉에 빠져 있었다. 그 어린 것들을 품 안에서 보내고 난 뒤 나는 매일매일 심하게 자책을 했기 때문에, 자신감을 많이 상실한 상태였다. 그래도 다른 수가 없었다. 내가 맡지 않으면 그 젖먹이들이 살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그렇게 두 마리의 젖먹이가 또 내게 왔다. 작은 고양이 두 마리를 받아 들자 눈물이 왈칵 났다. 앞서 보낸 치즈 두 마리와 똑 닮은 아이들이었다. 태어난 날짜도 비슷했다. 먼저 와서 살아남은 한 마리는 이 녀석들이 형제려니 하고 지내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또 눈물이 났다. 

늦게 온 두 녀석에게는 ‘카레’와 ‘고로케’라는 이름을 붙여주었고, 앞서 온 ‘자두’와 함께 세 마리는 별 탈 없이 무럭무럭 자랐다. 카레가 아프기 전까지는.

어느 날부터 카레의 발작이 시작되었다. 너무 어려 CT 촬영 검사도 할 수가 없었지만 심한 전신발작의 증 상으로 미루어 볼 때 신경계 이상이라는 결론이 나왔다.

나는 그렇게 또 한 번, 내 품 안에서 고양이를 보내야 했다. 눈도 떴고 이제 이유식을 먹기 시작한, 다 키워 놓았다고 생각했던 아기 고양이를 보내야 했던 기억은 오래도록 나를 힘들게 할 것이다. 

그리고 남은 두 녀석, 자두와 고로케는 무럭무럭 건강히 자라 좋은 가족 품에서 사랑을 듬뿍 받으며 지내고 있다. 어느 때보다도 치열하게 보살폈던 나의 아기 고양이들. 그 누가 보살폈어도 어쩔 수 없었던 상황이었다고 다들 이야기해주었지만 밀려오는 자책감을 덜어내기가 정말이지 쉽지 않다.CREDIT

 



 

글·사진 장경아 
에디터 조문주



해당 글은 MAGAZINE C 2019년 9월호에 수록된 것으로, 저작권은 (주)펫앤스토리에 귀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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