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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는 잘못이 없다.

  • 승인 2020-06-10 14:2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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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핑크스 고양이 자몽이

고양이는 잘못이 없다
고양이를 집 안에 들이기 전,
가장 염려했던 것은 바로
‘고양이는 물건을
잘 떨어뜨리지 않나?’
하는 점이었다.

나는 본디 성격이 예민한 편인데,
오죽하면 신랑이 가끔가다 실수로
물건을 떨어뜨리기라도 하면 ‘
괜찮아?’라는 말보다
‘조심해야지!’ 가 먼저 나올 정도였다.

그런 나였기에 혹시라도 고양이가
물건들이 놓여있는 선반을 와르르
무너뜨리지는 않을까 하는 걱정은
어찌 보면 당연하였다.




 

우리 잘못이라고 보면 돼

어느 날, 고양이 4마리를 키우는 친구에게 물어보았다.

"고양이는 진짜로 물건을 잘 떨어뜨려?"

친구는 신박한 대답을 내주었다.

"응! 그런데 떨어뜨릴 만한 물건을 높은 곳에 놔둔 우리 잘못이라고 생각하면 돼."
 
그때 당시에는 사실 그 말을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자몽이와 함께한 지 1년이 되어가는 지금, 나는 저 말의 의미를 깊이 이해하고 있다.
 
실제로 자몽이는 내가 조금이라도 '떨어뜨릴 만한 물건을 높은 곳에 놔두는 잘못'을 저지를 때면 바로 물건을 바닥에 툭, 던져주곤 했다. 물컵을 바로 치우지 않으면 자몽이는 바닥을 물바다로 만들어줬다.
 


또 한 번은 식사를 마치고 넓은 쟁반에 그릇을 잔뜩 쌓아뒀는데 자몽이가 쟁반을 잘못 밟아 그릇을 모두 떨어뜨린 적도 있었다. 그때 컵 하나가 깨졌었는데, 자몽이가 많이 놀라 도망가는 모습을 보고 너무나도 미안했었다. 

그렇다. 물건을 떨어뜨리는 고양이는 아무 잘못이 없다. 그 물건을 그곳에 올려둔 우리에게 잘못이 있을 뿐이다.

자몽이가 집에 오고 난 뒤 나에게 생긴 또 다른 변화가 있다. 이제는 신랑이 실수로 물건을 떨어뜨려도 ‘괜찮아? 안 다쳤어?’가 먼저 나온다. 자몽이 덕분에 이전의 예민함이 조금은 누그러진 것 같다.
 
 

의심해서 미안해

자몽이도 보통 고양이들과 마찬가지로 작은 물건들을 좋아한다. 특히 머리끈이나 반짝이는 링 귀걸이는 자몽이가 한 시간은 충분히 놀 수 있는 최애 장난감 중 하나이다.

가끔 액세서리를 서랍에 넣어두는 것을 잊어버려 자몽이가 신나게 굴리며 갖고 놀 때면 역시나 미리 작은 물건들을 치우지 못한 스스로를 반성하곤 한다. ‘미리 치우지 않은 우리 잘못이야’라고 되뇌며 말이다.
 
우리 집에는 성인 허리 높이쯤의 박스형 선반이 있다. 크기가 작기도 하고, 선반 위에 큰 물건이 놓여 있어 자몽이가 올라가기엔 비좁은 곳이다.

게다가 자몽이가 지금껏 그곳에 올라가 있던 모습을 한 번도 본 적이 없었기에 우리는 그 선반에 귀걸이, 시계, 반지 등 매일 착용하는 액세서리를 보관하곤 했다.
 

어느 날 저녁, 반지를 착용하려고 했더니 보이질 않았다.

기억을 더듬어 어제 아침까지 반지가 선반 위에 올려져 있었다는 사실을 기억해냈다. 갑자기 결혼반지가 사라지자 나는 당황하고 말았다.

신랑은 자몽이가 그 선반에 올라간 모습을 여러 번 봤다고 했다. 우리 둘은 고양이처럼 네 발로 기어 다니며 고양이가 반지를 어떤 다양한 방법으로 갖고 놀 수 있을지에 대해 연구했다. 소파를 들어 올리고 에어컨, 침대, 책상 등을 옮겼다.
 
아무리 찾아도 보이지 않자 우리는 자몽이를 쳐다봤다. 자몽이의 배를 만져보고 화장실을 들여다보았다. 외면하는 자몽이를 붙잡고 하염없이 물었다.

“자몽아 반지 어디에 놨어? 먹은 거야? 괜찮아?”

하루가 지나도 찾을 수가 없자, 우리는 생각만 하던 ‘그것’을 하기로 했다. 자몽이의 화장실을 뒤져보기로 한 것이다.

나는 맛동산을 캐고 신랑은 일회용 장갑을 꼈다. 신랑은 심오한 표정으로 맛동산 속 반짝이는 반지를 찾기 위해 손끝에 집중했다. 그러나 3일이 지나도 반지는 찾을 수가 없었다.
 


마침 심장사상충 예방을 위해 동물병원으로 정기검진을 가는 날이 왔다. 나는 선생님께 조심스럽게 물었다.

“고양이가 반지를 먹기도 하나요?”

“반지를 먹는 경우도 있지만 목걸이 같은 유체물을 삼키는 경우가 더 많습니다. 게다가 반지를 먹게 되면 식욕부진, 설사, 구토 등의 증상이 보이니까 그때 내원하세요.”

자몽이는 3가지 증상 중 어느 하나도 맞지 않았기에 안심을 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우리는 자몽이가 삼킬만한 위험이 있는 작은 액세서리를 잘 정돈했고 그 외에 위험할 만한 물건을 깨끗이 정리했다. 그렇게 1주일이 지났다.
  

 
나는 청바지 하나를 오랜만에 꺼냈다.무심코 주머니에 손을 넣었더니 무언가 작고 둥근 것이 만져지는 게 아닌가.

바로 반지였다. 내 잘못된 기억으로 그동안 무고한 자몽이가 의심을 받았던 것이다.

자몽이는 얼마나 억울했을까. 그저 가만히 앉아서 쉬고 있는데 엄마아빠가 느닷없이 배를 만지며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쳐다보는 게 얼마나 어이가 없었을까 싶었다.

우리는 반지를 액세서리 보관함에 고이 넣어뒀고 자몽이에게 한참 동안 사과하고 또 사과했다.

역시나, 고양이는 아무런 잘못이 없다.
 


 


CREDIT
글.사진 김성은
에디터 이혜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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