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난감 가게의 틸대리
고양이와 사랑에 빠지다
침대에 깨끗이 세탁한
새 시트를 씌울 때면,
틸다는 신나게 달려와
온몸을 부비며
침대에 털을 묻힌다.
오죽하면 프로 방해꾼이라는
별명이 생겼을 정도일까.
덕분에 쉽게 끝나는 일이 없어
의도치 않게 느리게 사는
삶을 살고 있다.
귀여운 나의 스토커
우리 집에는 나의 일거수일투족을 관찰하는 엄청난 참견쟁이가 산다. 그것도 아주 복슬복슬 귀여운!
이 스토커는 내가 밥을 먹을 때나 일을 할 때나 심지어 화장실을 갈 때도 호기심을 참지 못하고 나를 졸졸 쫓아다닌다.
그 귀여운 스토커의 정체는 고양이, 이름은 ‘틸다’다. 배우 틸다 스윈튼의 고유한 분위기를 닮았으면 해서 지어준 이름인데, 분위기는 닮았을지 모르나 하는 행동은 영락없는 왈패다.
밥을 먹기 위해 밥상을 차리면 떡 하니 식탁 한가운데를 차지하는 건 이미 익숙해졌다. 또 업무상 원단을 재단할 일이 많은데 원단을 펼치는 순간 그 자리는 곧 틸다의 침대가 된다.
운동하려고 매트를 펼치면 슬금슬금 올라와 배를 깔고 누워버리고는 꿈쩍도 하지 않는다. 가끔은 틸다가 ‘너는 언제나 나만 봐야 해, 나의 허락 없인 아무것도 할 수 없어’라고 이야기하는 것 같다.
그녀의 매력은
틸다의 주특기는 바로 발라당 배 보여주기. 보통 고양이들은 배 만지는 걸 그리 선호하지 않는다고 알고 있는데, 틸다는 정반대이다. 뱃살을 조물조물 만지고 있으면 더 만져달라는 듯이 발라당 뒤집어 눕는다.
틸다의 배를 쓰다듬어주고 있으면 아주 만족스럽다는 듯 뒷다리를 내 팔에 턱 걸친다. 자기 마음에 들면 처음 보는 사람에게도 배를 보여준다. 이 사랑스러운 기술에 넘어가지 않을 사람이 있을까?
가끔은 틸다가 고양이 탈을 쓴 사람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한다. 듣고 싶은 말에는 온갖 애교와 함께 화답하고, 혼을 내거나 듣고 싶지 않은 말을 할 때면 안 들리는 척 무시하기 때문이다.
이런 틸다를 보고 우리 엄마는 틸다가 3세 유아의 지능을 가진 것 같다며 농담 삼아 말씀하셨다.
틸다는 간식 앞에서 ‘앉아, 손, 하이파이브, 예쁜 짓’이라는 개인기를 선보인다.
그래서 똑쟁이라는 별명이 붙었는데, 사실 틸다는 어릴 때부터 식탐이 강한 고양이였기에 훈련이 그다지 어렵지 않았다.
틸다의 이런 재롱을 좋아해 주는 사람들이 많아 인스타그램에 해시태그 ‘#틸다재롱’을 걸어 개인기를 선보이는 틸다의 모습을 모아두었다.
이 밖에도 틸다가 알아듣는 단어들이 몇 개 있다. 주로 단어의 모음을 듣고 유추하는 것 같은데 ‘까까’의 ‘ㄲ’과 ‘츄르’의 ‘ㅊ’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동물들이 주로 먹는 것과 관련된 기억이 뚜렷하다 들었는데 틸다도 마찬가지다. 또 ‘안돼, 이놈’ 같은 부정적인 단어에도 반응한다.
딱히 혼을 내거나 벌을 준 적이 없는데도 낮은 목소리로 ‘안돼!’, ‘이놈~’이라고 말하면 평소와 다른 가늘고 떨리는 목소리로 야옹-하며 대답한다. 그리고 나선 혼내지 말라는 표정으로 내 다리를 몸으로 비비고 발라당 드러눕는다. 이런 똑쟁이.
서로가 서로의 사랑꾼
틸다가 집에 온 이후부터 나는 사랑꾼이 되었다. 보고 있어도 보고 싶고 만지고 있어도 만지고 싶은,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다는 말에 마음 속 깊이 공감한다.
하루가 다르게 커가는 틸다와 야속하게만 흘러가는 시간이 아쉬워 나와 언니는 재택근무를 택했다.
틸다와 친해지고 싶어서 만들었던 장난감, 첫 생일을 기념하고 싶어서 만들었던 파티 모자는 우리의 브랜드 ‘로얄그로서리’의 시작점이 되었다.
나의 삶은 틸다로 인해 달라졌다. 또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도 바뀌었다. 틸다로 인해 고양이는 나에게 단순히 세 글자로 정의될 수 있는 단어가 아니라 그 이상의 영적 스승 같은 존재가 되었다.
고양이들이 삶을 대하는 태도, 자유롭지만 나름의 규칙이 있는 생활방식, 철없는 한량 같아 보이지만 사실은 여유 있게 걱정 없는 삶을 살아가는 모습을 보며 다음 생에는 고양이로서의 삶을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도 든다.
내가 사랑을 보여주면 늘 그보다 더 크게 화답해주는 고양이 틸다.
존재 자체만으로 우리에게 위로와 위안이 되어주는 너를 만나 참 다행이야.
CREDIT
글.사진 송지영
에디터 조문주
<장난감 가게의 틸대리-고양이와 사랑에 빠지다>
해당 글은 MAGAZINE C 2019년 9월호에 수록된 것으로, 저작권은 (주)펫앤스토리에 귀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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