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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사장님 이야기

  • 승인 2020-06-10 14:2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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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리스타 하맹이

나의 사장님 이야기



 

노란 페인트가 묻은 손바닥을 
목장갑으로 닦는다. 

바꾼 지 얼마 되지 않은
 핸드폰이 울리며 
‘형수님’이라는 단어가 보인다. 

생각해보니 오늘은 고양이를
입양하기로 한 날이다.





뿌리칠 수 없는 손길

카페 개업이 코앞이라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형수님의 전화를 받고 부랴부랴 씻은 뒤 서둘러 부천으로 갔다. 

지하철을 여러 번 환승하고 엘리베이터가 없는 빌라 계단을 한 칸 한 칸 오르며 곧 만나게 될 고양이보다 카페 개업을 먼저 생각했다. 사실 어젯밤 형수님께 죄송하다고 말하고 입양을 취소하려 했다. 하지만 그마저도 피곤해서 까먹고 잠든 탓에 결국 여기까지 오게 됐다. 

문 앞에 도착해 초인종을 눌렀다. 묵묵부답이다. 노크를 했다. 반응이 없다. 한참이 지나자 현관문이 열렸다. 습기가 느껴졌다. 샤워를 한 모양이다. 약속시간을 미리 말하고 왔는데, 슬슬 짜증이 났다.


일단 안으로 들어가 방문을 열었다. 주먹만 한 새끼 고양이들이 삐약거리며 울고 있었다. 꾸물거리는 고양이들을 보자마자 단숨에 카페 개업 스트레스와 분양자에 대한 짜증은 저 멀리 사라져버렸다. 

나도 모르게 고양이에게 다가가 검지 손가락을 내밀었다. 코 옆에 치명적인 코딱지 점이 있는 고양이가 양발로 나의 손가락을 감쌌다. 검지를 타고 온몸에 온기가 도는 게 느껴졌다. 

영화 아바타에서 나비족이 커다란 새 ‘토루크 막토’와 교감하듯, 나 역시 그 순간 어떤 강렬한 느낌이 날 훅 뚫고 지나가는 게 느껴졌다. 

그렇게 뿌리칠 수 없는 운명처럼 나는 하맹이와 만나게 됐다.
 

외면할 수 없는 눈빛

카페에 출근하기 위해 현관문에 선다. 하맹이가 쪼르르 따라와 날 바라본다. 그 눈빛에서 헤아릴 수 없이 복잡하고 깊은 감정이 느껴진다. 

무튼 어렵사리 해석해 보면 날 혼자 두고 가지 마, 인간’ 정도인 것 같다. 나는 며칠 동안 아랫입술을 질끈 물고 그 애처로운 눈빛을 매몰차게 외면했다. 

실 카페에 함께 데려가고 싶었다. 하지만 털이 날릴 테고, 유리잔을 깰 수도 있으며, 고양이를 무서워하는 손님도 있을 것이다. 따라서 매출에 부정적인 영향을 줄 것 같은 지극히 자본주의적인 이유로 하맹이를 데려갈 수 없었다.

하지만 카페에 출근을 한 후에도 현관문만 바라보고 있을 하맹이 생각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장사가 잘 되어 몸이 바쁘다면 생각할 겨를이 없었겠지만 애석하게도 온종일 하맹이 생각만 할 만큼 카페엔 손님이 없었다. 

나는 결국 5분 거리에 있는 집으로 단숨에 달려가 현관문을 열었다. 외면할 수 없는 하맹이의 눈빛을 보며 말했다. 

“그래, 함께 가자, 하맹아.”

장사할 줄 아는 고양이

손님이 없는 카페에 하맹이와 둘이 멍하니 앉았다. 그러다 어느 순간 하맹이가 나를 올려다보더니 입을 오물거렸다. 지금 생각해보면 ‘내가 사료값이라도 벌어 볼 게’ 정도를 함축한 말 같다. 

그리고는 펄쩍 뛰어올라 창가에 자리 잡았다. 하맹인 창문을 통해 지나가는 손님들을 뚫어져라 쳐다봤다. 거리를 지나가던 사람들은 귀여운 고양이에 홀려 카페 창가로 몰려들었고, 창문에 손을 갖다 댔다. 그러면 하맹이 역시 안에 창문에 손을 갖다 댔다. 손님과 하맹이 사이에는 창문이 가로막고 있었지만 어떤 특별한 교감이라도 나누는 것 같았다. 

분명 어디선가 본 듯한 장면이었다. 그래 맞다. 처음 하맹이를 만나던 날, 내가 검지 손가락을 내밀자 하맹이는 양 손을 내어줬다. 이것은 거부할 수 없는 손길이다. 

홀리듯 카페에 들어온 손님들에게 하맹이는 카페 안을 유유히 돌아다니며 손을 주고 적당히 애교를 부렸다. 그리고 이내 나를 돌아보고 입을 오물거린다. 

“야, 장사는 이렇게 하는 거야.” 

나는 속으로 대답했다.

“ 네 알겠습니다, 사장님.”

사장님께 드리는 작은 약속

창문에 달린 작은 고양이 해먹, 우유갑 모양 스크래처, 이글루 화장실까지 카페는 나와 손님들의 공간이 아닌 오직 고양이 사장님을 위한 공간이 되었다. 

하맹이의 팬들도 많아졌다. 국적이 다양한 외국인 손님, 사진과 그림을 그려 선물해주는 손님, 츄르와 장난감을 사 들고 오는 손님도 있다. 덕분에 입에 겨우 풀칠만 하던 내가 가끔은 고기를 먹을 수 있을 만큼 조금의 여유가 생겼다. 

오늘도 나의 사장님은 창가로 가 외면할 수 없는 눈길로 지나가는 사람들을 쳐다보거나 테이블을 돌아다니며 거부할 수 없는 손길로 인사를 한다. 

내가 하는 일은 그저 사장님이 배고프지 않게 사료를 주고, 화장실에 양질의 모래를 깔고, 아름다운 털이 엉키지 않게 빗질을 해줄 뿐이다. 가끔 자투리 시간이 남는다면 사장님이 거슬리지 않을 정도로 약간 커피 공부를 하기도 한다. 

카페 영업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니 11시다. 노곤한지 책상에서 곯아떨어진 사장님을 의자에 앉아 바라본다. 안쓰럽고 고맙다. 나는 자고 있는 사장님에게 작은 보은을 약속한다.

 “한 달에 한 번은 연어와 참치를 대접해 드리겠습니다. 잘 자요, 사랑하는 나의 사장님 하맹.”


CREDIT
글.사진 양세호
에디터 조문주


<바리스타 하맹이-나의 사장님 이야기>
해당 글은 MAGAZINE C 2019년 9월호에 수록된 것으로, 저작권은 (주)펫앤스토리에 귀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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