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나 고양이
삶, 고양이로 가득 채우다
포기도 빠르고, 뭐든지 쉽게
질려 하는 성격 탓에
새롭게 시작한 취미도 연애도
금방 시들해지곤 했다.
‘내가 과연 꾸준히 지속할 수 있을까?’
염려하며 시작했던
길고양이 밥 주기는
어느덧 벌써 9년째에
접어들고 있다.
그렇게 길에서 시작된 고양이 사랑은
현재 나를 6마리나 되는
고양이를 돌보는 집사가 되게 했다.
나를 성장시킨 친구들
내가 처음 관심을 가진 건 길고양이들이었다. 그 아이들을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고민하다 밥 주기를 시작했다.
간단하게 생각했던 밥 주기는 생각처럼 호락호락한 일이 아니었다. 밥 주는 장소에는 ‘밥 주지 말라’는 경고장이 붙기 시작했고, 고양이를 싫어하는 사람들의 눈치를 봐야 했다. 떳떳하게 주던 밥은 어느덧 눈칫밥이 되기 일쑤였다.
냉혹한 길고양이의 삶을 알면 알수록 마음이 아팠고, 사람들에게 상처를 받아 눈물을 토해내는 날도 생겨났지만 힘겹게 오늘을 살며, 날 기다리는 길 위의 친구들을 보며 책임감이 절로 생겨났다/
오늘 하루도 무사히 잘 보낸 후 밥을 먹으러 찾아오는 아이들의 모습에 하루하루 감사함을 느꼈다. 철없고 이기적이던 나는 어느덧 작은 일에도 감사하며 친절을 베풀 줄 아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고양이와 함께 살다 보니 해주고 싶은 것들은 점점 늘어났고 나중엔 ‘직접 만들어 줘야겠다’는 생각까지 하게 됐다. 처음에는 간단한 것들뿐이었지만 몇 번이고 반복해서 만들다 보니 저절로 실력이 쑥쑥 늘어났다.
내가 내 아이들에게 무엇인가를 직접 만들어주는 데서 오는 즐거움은 생각보다 성취감이 높았다. 그 덕에 내가 알지 못했던 나의 숨겨진 재능을 찾아내기도 했다. 이런 걸 보면 고양이들은 자신들의 귀여움을 통해 조용히 뒤에서 나를 다방면으로 성장시키고 있었게 아닐까 생각이 든다.
고모찡찡모모카
하나, 둘, 셋, 넷, 다섯, 여섯
이상 무!
(고,모,찡,찡,모,모,카:
6마리 고양이 이름을 줄여서 부르는 말)
출근 시간 현관을 나서기 전의 나의 외침이다.
다묘가정으로 살다 보면 수많은 일이 일어나곤 한다. 출근 준비로 분주한 아침, 공기처럼 조용히 내 곁을 맴도는 고양이들을 미처 발견하지 못하고 옷장이나 화장실 문을 닫아버린 적이 있었다.
퇴근하고 돌아와 아무리 이름을 불러도 아이가 보이지 않자 쿵, 하고 마음이 내려앉는 듯했다.
온갖 상상을 하며 집 안을 뒤지다 우연히 열어본 옷장 안에서 자다 깬 부스스한 모습으로 날 바라보는 모습에 허탈함과 안도감이 밀려와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그때부터 출근 전이나 외출 전 현관을 나서기 전에는 주문처럼 항상 ‘6’을 외친다. 물론 돌아온 후도, 하나, 둘, 셋, 넷, 다섯, 여섯 이상 무! (고.모.찡.찡.모.모.카 이상 무)는 버릇처럼 세어지고 있다.
묘연? 그 알 수 없는 인연
글을 쓰는 동안 내 삶에 또 한 번의 변화가 일어났다.
아파트 단지 안을 돌아다니던 삼색 고양이가 화두로 떠오르면서, 삼색 고양이 구조작전이 시작되었다. 건강검진과 중성화를 해주고, 회복될 때까지 돌봐주며 좋은 가족을 찾아줘야겠단 생각이었는데, 병원에 가니 녀석이 5마리의 새끼를 품고 있다고 했다.
생각지도 못한 일이었다. 수많은 고민과 걱정이 머릿속에 헤엄을 쳤지만 뾰족한 방법이 없었고 살아있는 생명은 제 명을 다해야 한다는 생각에 우선 집으로 들였다.
병원에선 사람 손을 타지 않는 애라 검사가 힘들어 마취를 할 수 밖에 없었다고 했다. 하지만 집에 데려온 삼색이는 사람만 보면 열정적으로 부비부비를 하는 엄청난 애교쟁이인 데다가 집에 있는 여섯 마리의 고양이들과 바로 합사가 될 정도로 사교성이 좋았다.
이미 여섯 마리 고양이가 있지만 다들 엄마 바라기들이라 항상 외로운 남집사에게 삼색이는 집중 애교를 떨며 단숨에 남집사의 마음을 흔들어놨다.
우리는 그 날 성묘인 삼색이가 입양이 되지 않으면 우리가 키우자는 이야기를 나눴다. 우리보다 더 좋은 가족이 나타난다면 입양을 보내자고 말을 했지만 우리는 벌써 단비라는 예쁜 이름을 지어주며 자연스럽게 가족이 될 준비를 마쳤다.
이제는 단비가 안전한 집에서 마음 편히 순산하기를 기도한다. 가끔 사람들은 묻곤 한다. 고양이가 늘어나면 힘들지 않으냐고. 분명 쉬운 일은 아니다. 하지만 내가 정말로 힘들 땐 고양이가 한 마리 더 늘어나는 지금 이때가 아니라, 시간이 흘러 하나둘 고양이들이 먼저 우리 곁을 떠나게 될, 그때일 것 같다.
<언제나 고양이-나의 삶, 고양이로 가득 채우다>
해당 글은 MAGAZINE C 2019년 9월호에 수록된 것으로, 저작권은 (주)펫앤스토리에 귀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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