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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를 키우는 집사의 마음가짐

  • 승인 2020-06-10 14:3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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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 오픈 청소를 마무리하며,
하맹이가 무서워하는
무선 청소기의 스위치를 내렸다.

그때, 마치 연출된 장면처럼
핸드폰이 진동했다.

하맹이가 다니는
동물병원으로부터 온
메세지였다.


잠금 화면을 풀고 내용을 자세히 읽어봤다달갑지 않은 소식이었다.
"하맹이 중성화 수술 적기입니다내원해 주세요."
무슨 소식인지 궁금해 나를 올려다보는 하맹이에게 말없이 츄르를 짜줬다.

다음 날 동물 병원에 방문했다선생님은 두 가지 이유로 중성화 수술을 권했다.

첫 번째암컷 고양이는 높은 확률로 생식기 질병 때문에 사망할 수 있다.

두 번째카페에 지내고 있어 발정기가 오면 집사와 고양이 둘 다 큰 스트레스를 받는다.

모두 납득할 만한 이유였고 반박할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잠시 고민했다째깍거리는 초침 소리가 백 번 정도 들렸던 것 같다.

 

더는 선생님의 눈을 마주치기 어려웠다어렵게 입술을 떼고 다음 주 목요일에 수술하겠다고 말했다선생님은 수술 전 유의사항을 명확하게 일러주고 자리를 떠났다.

나는 하맹이가 좋아하는 습식사료 한 캔을 산 후 동물 병원을 나왔다오늘은 친구가 카페를 보는 날이고 난
지금 약속에 늦었지만 하맹이를 보고 싶었다카페에 도착해 해먹에서 자는 하맹이를 조심스럽게 어루만졌다결국 약속에 늦고 말았다.

 목요일은 금방 찾아와 이른 아침 자취방 문을 두드렸다.

사실 나와 하맹이는 새벽부터 잠에서 깨어 있었다중성화 수술 전공복을 유지해야 한다고 선생님은 말했다조금 뒤면 아무것도 먹지 못하는 하맹이에게 서랍 속에 감춰두고 조금씩 줬던 특식을 꺼내 주었다.

남아있는 전복 우유와 건조된 참치도 몽땅 털어줬다
이유도 모른 채 잔칫상을 받아 골골거리며 먹는 하맹이를 보며 부디 수술이 무사히 끝나길 빌었다.

열 시쯤하맹이를 이동장에 넣고 열기 싫었던 자취방 문을 열었다병원에 도착했다낯선 곳에서 잔뜩 주눅이 든 하맹이가 안쓰러웠다.

선생님은 간단한 피 검사를 마친 뒤 하맹이를 데리고 수술실로 들어갔다.

수술은 한 시간도 안 돼서 끝났다두 시간이 흐르자 회복실에서 하맹이가 깨어났다병원보다 익숙한 집에서 쉬는 게 하맹이에게 더 편할 거라는 선생님 말에 이동장에 하맹이를 넣었다.

병원을 나와 이동장이 흔들리지 않게 아주 천천히 걸었다병원에서 십 분 거리인 자취방을 이십 분이 넘게 걸려 도착했다.

이동장에서 하맹이를 꺼냈다하맹이는 몸을 둥글게 말고 부르르 떨고 있었다눈에서 눈물도 흐르고 있었다마취가 풀려 아파하는 하맹이를 보니 더없이 안타깝고 미안했다.

그렇게 하루를 뜬 눈으로 보냈다다행히 하맹이는 회복이 빨라 다음 날 아침부터 밥을 먹었고 일주일이 지나자 평소와 같은 모습으로 돌아왔다이 주가 지난 후에는 실밥을 제거하고 환묘복까지 벗었다예전과 다름없는 하맹이를 보고 안심이 됐다.  

하맹이의 입장에서 생각하면
 
어느 주말 저녁여자 친구를 만나고 집으로 돌아왔다자취방 문을 여니 신발장 앞에 하맹이가 마중 나와 기다리고 있었다하맹이는 야옹거리며 울면서 내 가랑이 사이를 지나다니며 자기 몸을 비볐다.

수술 후에 부쩍 더 어리광이 늘었다하맹이를 달래 주려 얼굴을 만져 주고 털을 빗겨준다수술 탓에 배에 털이 밀려 분홍색 속살이 보이고 가운데엔 아직 아물지 않은 흉터가 보인다.

내 품을 뿌리치고 하맹이는 창가로 점프해 앉는다밖을 내다보며 무엇을 찾는 눈빛이다가끔 창가로 찾아와 시끄럽게 울던 검은색 고양이가 요즘은 통 보이지 않는다.

조용한 방에서 나는 바닥에 앉아있고 하맹이는 창문을 내다보고 있다작게 켜진 라디오에서 여덟 시 정각을 알리는 소리가 들린다동시에 지난주 동물 병원에서 들리던 초침 소리가 생각났고 선생님의 목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다.

이제 생각해보니 그때선생님은 '인간의 입장에서 생각하면'을 생략하고 말한 것 같았다.

정확히 말하자면 인간의 입장에서 고양이가 오래 사는 게 좋고고양이가 시끄럽게 울거나 밖으로 뛰쳐나가는 건 싫지 않나요?’가 맞지 않을까.

서랍에서 츄르를 꺼냈다창문을 주시하는 하맹이를 불러 머리를 쓰다듬으며 츄르를 먹였다.

하맹아내가 잘할게
 
높은 곳에 있는 물건을 하맹이가 떨어뜨리면 집어서 낮은 곳에 둔다손가락이나 발가락을 물면 대수롭지 않게 내어준다어차피 손가락과 발가락은 열 개다한두 개쯤 내어줘도 무방하다.

좁은 원룸에서 벗어나 쾌적한 숙소를 제공하기 위해 잠을 줄여 일한다매일 맛있는 음식은 못 주지만 가끔은 특식을 제공한다따로 시간을 내어 자주 함께 있으려고 한다.

고양이에게 중성화 수술을 시킨 집사들은 항상 생각해야 한다우린 고양이에게서 아주 큰 것을 희생시켰다.
잠이 든 하맹이를 쓰다듬는다.
"하맹아 오래도록 함께하자내가 잘할게."





CREDIT
글 사진 양세호
에디터 이유경

<바리스티 하맹이-고양이를 키우는 집사의 마음가짐>
해당 글은 MAGAZINE C 2019년 11월호에 수록된 것으로, 저작권은 (주)펫앤스토리에 귀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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