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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의 체온

  • 승인 2020-06-10 14:3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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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리와 굴비. 
둘은 모두 한 여름에 나와 만났다. 
지금까지 보리와 함께 보낸 여름은 세 번.
 굴비와 함께 보낸 여름은 두 번이다. 

보리는 에어컨이 옵션으로 들어있던 
신랑의 자취방 ‘장미빌’에서 
아무런 걱정 없이 우리와 
시원한 첫 여름을 보냈다. 

하지만 그 다음 해 결혼식을 올리면서 
에어컨을 혼수 목록에 넣지 않는 바람에 
굴비와 함께한 첫 여름은 
정말이지 처참했다.

 

고양이와 여름 나기
2018년 대한민국 여름의 체감온도는 40도를 육박했고, 정 남향이었던 우리 아파트를 순식간에 뜨거운 건식 사우나로 만들어 버렸다. 

고양이의 체온은 사람보다 약 2~3도가량 높기에 보리와 굴비는 조금만 움직여도 혀를 내밀고 숨을 헐떡였다. 

냉풍기를 들이고 냉수 매트를 깔고 선풍기도 틀어보았지만 콧잔등에 맺힌 땀방울은 별다른 소득이 없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었다. 

 

가장 걱정되는 시간은 우리가 출근하고 없는 시간….

우리는 스티로폼 박스를 구해 속을 얼음 팩으로 가득 채우고 그 위에 냉매젤 매트를 올려 차가움이 오래가도록 유지한 뒤 부지런히 출근을 했다. 

퇴근하고 집에 돌아와  문을 열면 보리와 굴비는 나란히 스티로폼 박스 위에 엎드려 그 시원함을 최대로 만끽하고 있었는데, 걱정이 되면서도 그 모습을 맞닥뜨리면 ‘너네도 정말 더웠구나?!’  하고 피식 웃음이 나왔다. 

박스 속 얼음 팩들은 우리가 출근하고 돌아올 시간에도 신기할 정도로 꽝꽝 얼어있어서 스티로폼의 보냉성을 굉장히 신뢰하게 되었달까?
 

그렇게 곤욕을 치렀던 여름날은 갔지만 우리는 벌써 다음 해 여름이 두려워졌고, 말도 못 하고 더위를 감당해야 하는 작은 고양이들이 걱정되어 에어컨까지 구매했다. 

'그래… 이제 우리나라는 에어컨 없이는 절대로 여름을 버틸 수 없는 나라가 되어버린 거야…!!!!’

고양이 난로

코 끝에 선선한 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고양이들은 단박에 조금이라도 따뜻한 곳을 찾아 식빵을 굽는다. 예를 들면 집사의 배 위라던가 집사의 무릎 위….
 

뜨거운 여름날엔 곁에도 잘 오지 않던 고양이들이 가을에 골골거리며 내 배 위로 올라온다.

배 위에 있는 고양이는 은근히 묵직해서 어떨 땐 숨이 막힌다. 잘 때 밟히기 라도 한다면 억 소리 나도록 치명타를 입지만 그 따뜻한 체온이 난로 역할을 해준다.  

가슴속 깊은 곳까지 따뜻하게 만들어 주는 고양이 난로와 함께 있다 보면 영원히 이렇게 있고 싶다고 느낄 만큼의 행복감이 물밀 듯이 밀려온다. 

또한 운이 좋다면 꾹꾹이 안마까지 받을 수 있기에 우리는 이 행운(?)을 최대한 조심스럽게 유지해야만 한다. 

무턱대고 큰 동작으로 움직였다가는 이 따뜻한 고양이 난로가 크게 노하며 한심하다는 눈빛을 하고는 휙 미련도 없이 가버릴 것이기 때문이다. 

이렇듯 고양이들은 쌀쌀한 가을이나 겨울에 난로로도 활용이 가능하다.(?) 

여름에는 털을 조금 밀어주며 시원한 환경 조성하기. 겨울에는 따뜻한 극세사 이불과 쿠션을 제공해 주기. 

반려동물을 키우는 사람이라면 이쯤은 가볍게 감내하는 부분일 것이다. 체온이 주는 따뜻함은 그 어떤 따뜻함과도 다르다. 

따뜻함을 넘어서 울컥하기까지 한 고양이들의 체온. 이 체온이 오래도록 내 곁에 머물기를 오늘도 바라본다.











글.사진 차아람
에디터 조문주

<나만 없어 고양이 탈출기-고양이의 체온>
해당 글은 MAGAZINE C 2019년 11월호에 수록된 것으로, 저작권은 (주)펫앤스토리에 귀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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