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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에 찾아온 가을 선물

  • 승인 2020-06-10 14:35: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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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리, 하니와 함께 맞이하는
세 번째 가을이다.

가을은 멋진 계절이지만
솔직히 나는 가을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일단 해가 짧아지는 게 싫고
옷이 점점 두껍고 무거워져서
어깨가 결리는 게 힘들어서 싫다.

그리고 ‘이렇게 한 해가 가고
또 나이를 먹겠구나’

하고 느껴지는 그 자조 섞인 감정이
썩 유쾌하지 않기 때문에,
소위 ‘FW 시즌’은 영 별로다.

첫 만남사무실에 고양이가?

폴리와 하니를 처음 만난 것도 내 생일 즈음인 7월 초였다.

당시 나는 디자이너가 되기 위해 고심 끝에 퇴사를 결정하고 공유 사무실을 찾고 있었다인터넷으로 관심 가는 몇 군데를 우선적으로 추렸고당시 회사 근처였던 성수동에 위치한 사무실을 첫 번째로 방문했다.

사무실에 고양이가 있다는 것이 이유였다나는 평소 개와 고양이를 너무 좋아하지만집에서는 동물을 키울 수 없는 상황이었다.

겸사겸사 그런 아쉬운 마음도 달래고사람에 치여 지친 마음을 귀여운 털뭉치 고양이를 통해 위로받고 싶다는 흑심을 품고 가보니 정말로 뱅갈 고양이 두 마리가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나를 반겨주었다.

고양이 집사이자 사무실 주인도 친절했다또 한강도 무척 가까워 시야가 탁 트인다는 점지금은 엄청 유명해진작지만 멋진 카페가 지척에 있다는 점도 마음에 들었다.

나는 더 볼 것도 없겠다 싶어 바로 그곳으로 결정해버렸다.

새하얗고 복슬거리는 털도도한 몸짓으로 사뿐사뿐 바닥을 디디는 모습내가 상상하던 고양이는바로 그런 모습이었다.

그런데 웬걸날렵해 보이는 마른 체구짧은 털게다가 조금은 무섭고 센(?) 호피 무늬라니!

저 뒤편에는 한 번도 본 적 없는 얼룩덜룩하고 복잡한 줄무늬를 지닌 고양이 한 마리가 웅크리고 있었다두 녀석들은 도도하기는커녕 사무실에 사람이 오면 마치 강아지처럼 킁킁거리며 냄새를 맡으러 다가오기까지 했다.

그렇게 이름도 행동도 생소한 뱅갈 고양이를 처음으로 만난 나는 적잖이 놀랐다.

고양이에게로 흐르다

고양이에 대해 잘 알지 못했던 나는 뱅갈 고양이가 품종묘인줄은 꿈에도 몰랐으니 껄껄 웃으며 길냥이를 냥줍하신거냐’ 는 말로 무식을 뽐내, ‘뱅갈은 제 로망묘였는데요…’라고 말하는 고양이 주인의 말문을 막아버렸다.

지금은 당연히 세상에서 제일 예쁜 고양이는 뱅갈이고 하얀 고양이는 어딘가 심심하고 밋밋하게 보이기까지 하는 지경에 다다르고 말았지만 뭐그때는 그랬다.

그렇게 나는 회사원에서 그래픽 디자이너라는 자영업의 세계로 뛰어들었고, ‘오이스터라는 브랜드를 조금씩 구체적으로 그려나가기 시작했다.

역마살이 낀 내 관심사는 그때나 지금이나 여행과 방랑이다.

그래서 초기에 내가 하고자 했던 디자인 역시 거기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하지만 디자이너 경험이 전무했던 나는 처음엔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많이 방황했었다.

그럼에도 나는 귀여운 고양이들을 보기 위해 매일매일 빠지지 않고 작업실에 얼굴도장을 찍었고애교 많고 영리한 폴리와 하니에게 점점 더 푹 빠지고 말았다.

그렇게 고양이를 그리며 조금씩 고양이 디자인에 관심을 가질 무렵더는 사무실을 유지할 수 없다며 혹시 고양이를 데려가실 수 있느냐는 주인의 말에 나는 흔쾌히 알았다고 대답했다.

처음 만났던 때로부터 약 1년이 지난 2018년의 여름이었다.

그렇게 내 삶에는 고양이라는 새로운 카테고리가 하나 추가되었다디자인의 방향 역시 고양이에게로 흘렀다.

 너희가 있어 풍성한 가을

폴리하니와 함께 살아가기란 정말이지 쉽지만은 않다.

요 뱅갈 녀석들은 겉으로는 새침해 보이는 레이디임에도 실은 완전히 천방지축에 에너지가 넘쳐흘러서 도무지 가만히 있지를 않고선 배기질 못한다.

끊임없이 이곳저곳을 뛰어다니다 장난감을 물고 와서 놀아달라고 하질 않나숨겨 놓은 간식까지 척 하니 찾아 물고 와서 내 앞에 떨어뜨리질 않나정말 정신이 하나도 없다.

고양이는 잠이 많고 고고하고 얌전한 동물이라는 상식이 와장창 깨진 지는 이미 오래다.

이 녀석들과 함께 한지도 어느덧 벌써 3년째디자인하랴 잡무하랴 냥님들 모시랴 정말 정신이 멀쩡히 붙어서 퇴근하는 날이 거의 없을 정도다

그래서 경고하건대잠 많고 조용한 고양이를 원한다면 뱅갈은 절대적으로 피하시라!

뱅갈이야말로 고양이 계의 비글임을 절절하게 체감할 수 있는데소름 끼치게도 비글과 뱅갈은 초성마저 같다!

사실 나는 강아지 중에 비글을 무척 좋아했는데나름 꿈이 이루어졌다고 생각하고 받아들이며 사는 중이다하하!

온종일 집사를 부려먹는 귀여운 악마들에게 푹 빠져있다 보면 추우나 더우나 비가 오나 눈이 오나 계속 정신은 육체를 이탈하려 하지만 마음만은 행복하고 평온하다.

요즘처럼 날이 선선해지면 곧바로 무릎으로 올라와서 골골거리며 노래 부르는 폴리와 품 속으로 쏙 파고들어 오는 하니 덕분에 늘 고양이가 풍성한 가을을 누릴 수 있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폴리는 나와 함께 자판을 누르고 있고 하니는 놀아달라고 어깨에 올라타서 앙탈을 부리고 있어서 이제 그만 마무리를 하고 카샤카샤(고양이 장난감)를 힘차게 흔들러 가야 한다.

문을 활짝 열어 기분 좋은 바람 냄새도 맡게 해줘야겠다 






글.사진 장보영
에디터 이혜수

<오이스터 스튜디오-여름에 찾아온 가을 선물>
해당 글은 MAGAZINE C 2019년 11월호에 수록된 것으로, 저작권은 (주)펫앤스토리에 귀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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