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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저는 처음이라

  • 승인 2020-06-10 14:4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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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는 내 운 명

진저는 처음이라


너랑 나랑 말이 통하면 
얼마나 좋을까? 

어디가 아픈지, 무엇이 필요한지 
나에게 알려줄 수 있다면 
정말 좋을 텐데.

비록 네가 매일 간식을 사달라고 
조른다고 해도 말이야

부족한 엄마라 미안해

진저를 데리고 오자마자 남편과 나는 교육에 들어갔다. 

일단 앉아와 기다려만 가르쳐 보기로 한 우리는 미리 사둔 훈련용 치즈 볼로 훈련에 돌입했다. 진저의 습득은 예상보다 훨씬 빨랐고 팔불출 개 엄마, 아빠는 ‘이래서 시바가 똑똑한가 보다’ 하고 서로 어깨를 으쓱하며 흐뭇해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진저는 설사를 하기 시작했다. 처음엔 일시적인 현상이라 생각했지만 그 뒤로도 진저의 설사는 수차례 반복됐다. 진저의 전 주인에게 전화를 걸어 상황을 설명하자마자 “혹시 간식 주셨어요?” 하는 말에 아차! 싶었다. 

분명 진저를 데려올 때 간식은 더 클 때까지 절대 주지 말라고 했는데, 훈련해야겠다는 데에 정신이 팔려서 그 중요한 걸 잊고 있었다. 결국 진저의 설사는 주사를 맞고 나서야 멈췄다.

모든 아기강아지들이 그렇듯 진저는 호기심이 많았다. 깨어 있는 동안은 쉴 새 없이 집안 곳곳을 누비고 다녔다. 그날도 꼭두새벽부터 우리를 깨우고 나서 온 집안을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거실 창틀을 짧은 다리로 낑낑대며 올라가서 창밖을 호기심 어린 눈으로 내려다보기도 했다. 

그러다 뒤돌아서 폴짝! 하고 뛰어내리는 순간 “깨갱!” 하는 소리와 함께 진저는 한쪽 다리를 절기 시작했다. 나와 남편은 너무 놀라 진저의 다리를 이리저리 만져보고 다시 걷게도 해봤지만 진저는 다리가 불편한지 계속 절면서 주저앉아버렸다.

그 모습에 남편과 나는 이성을 잃은 채 인근에 있는 24시간 동물병원들을 뒤지며 전화를 돌리기 시작했다. 그러다 연결된 한 병원에 당직 선생님에게 울음 가득한 목소리로 두서 없이 상황을 설명했다. “아이가 뛰어내린 높이가 얼마나 되죠?”라는 선생님의 물음에 “흑…. 어…그게 제 손 한 뼘 정도요.....?" …………………(잠시 정적)

“아, 그 정도 높이면 단순히 근육이 놀란 것 같은데 한 시간 정도 지나고도 다리를 절면 그때 데리고 오세요.” 남편과 나는 눈물이 잔뜩 고인 눈으로 진저를 지켜봤고 다행히 30분 정도 지나고 나니 진저는 언제 그랬냐는 듯이 깨방정을 떨면서 뛰어다니기 시작했다.

진저가 우리 집에 온 지 3개월 정도 지났을 무렵 왼쪽 눈 윗 부분에 희미하게 털이 빠지기 시작했다. 베넷 털이 빠지는 건가 생각했지만 하루하루 지날수록 이상하게 마치 원형탈모처럼  그 부위만 빠지고 있었다. 

추천받은 병원을 가서 연고처방을 받았는데 나아지기는커녕 털이 빠진 부위는 더 넓어지기만 했다. 러다 우연히 동네 병원에 가게 되었는데 그곳에서 진저의 땜빵 정체가 모낭충이라는 사실을 알았고 그에 맞는 처방을 받은 후 다행히 진저의 털은 다시 자라났다.

처음이기에 당연히
모를 수밖에 없다
엄마는 처음이라


평화로운 주말을 보내고 잘 준비를 하고 있을 때였다. 샤워를 끝내고 욕실에서 나온 남편이 면봉을 바닥에 떨어뜨렸는데 기다렸다는 듯 득달같이 달려온 진저는 면봉을 물고 도망갔다. 그 시절에 진저는 한창
무언가를 물고 도망가면서 장난을 치던 때라 나는 면봉을 빼앗기 위해 간식으로 살살 유인했다. 하지만 나의 계획과는 다르게 진저는 면봉을 입에 문 채로 간식도 먹으려 하다가 면봉을 꿀꺽 삼켜버렸다.

 순간 나와 남편은 얼음이 되었다가 빨리 정신을 차리고 다니는 동물병원에 전화를 했다. 빨리 오는 게 좋겠다는 원장님에 말에 나는 진저를 안고 병원으로 미친 듯이 뛰기 시작했다. 감사하게도 퇴근하셨던 외과 원장님이 다시 오셔서 내시경으로 면봉을 빼내셨고, 진저는 하루 입원 후에 큰 탈 없이 잘 회복했다. 

내시경을 마치고 아직 마취가 풀리지도 않은 진저가 나에게 오겠다며 회복실 케이지 안에서 버둥거리는 걸 보고 남편하고 얼마나 많이 울었는지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진저를 잘 돌보지 못했다는 죄책감에 가슴이 먹먹해진다.

몇 번의 호된 부모신고식을 치르고 나니 내 손에 이 작은 생명이 좌지우지된다는 막중한 책임감이 무겁게 느껴졌다. 지금은 웬만한 일에는 침착하게 대처할 수 있는 여유가 생겼지만 그때 그 순간, 하늘이 무너지는 기분은 아마 초보 엄마, 아빠들은 다 한 번씩 느껴보지 않았을까 싶다. 아주 사소한 것이라도 초보 부모에겐 매번 큰 고민과 선택이기 때문이다. 

매번 모든 일에 무턱대고 병원을 찾아가긴 부담스러워 인터넷으로 정보를 많이 구하기도 하지만 그것도 전문가의 조언은 아니다 보니 한계가 있다. 부모가 된다는 건 정말 이렇게나 큰 책임감이 따르는 일이었구나. 앞으로도 어떤 일들이 이 초보 엄마, 아빠의 가슴을 철렁이게 할까?





글·사진 장성희 
에디터 조문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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