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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urning Point

  • 승인 2020-06-10 14:4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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헝 가 리 안 비 즐 라

Turning Point

헝가리안 비즐라라는 견종이 아직은 한국에서 생소한 게 당연하다. 처음 들어보는 사람들도 많을 것이고, 생김새 또한 흔히 볼 수 있는 강아지들과는 많이 다르다고 느낄 수도 있다. 

이름에서부터 알 수 있듯이 헝가리안 비즐라는 헝가리 국견이다. 쉽게 말하면 우리나라의 진돗개 정도 되려나? 헝가리안 비즐라는 포인터류에 속하는 수렵견 중에서도 크기가 가장 작고 무엇보다 사람을 좋아해서 사냥보다는 집에서 키우는 가정견으로 흔하다. 이런 견종이 또 있을까? 

나는 비즐라에게 엄청난 끌림을 받았다.

헝가리안 비즐라 (Hungarian Vizsla)

헝가리안 비즐라는 “velcro dog” 또는 “velcro vizsla”라는 별명으로 ‘인스타그램’에서 많은 인기
를 끌고 있다. 벨크로. 흔히 우리는 ‘찍찍이’라고 하는데, 그 정도로 헝가리안 비즐라는 사람들에게 의
지하고 항상 곁에 머무르고 싶어하는 사랑스러운 아이들이라는 뜻이 아닐까. 

이 아이들은 자신이 사 랑받고 있음을 알고 사람의 손 끝에서 전해지는 진심까지도 느낄 줄 아는 아이들인 것 같다. 마냥 아기 같은 이 아이들도 가끔 듬직한 순간이 있다. 바로 우리 가족을 마치 자신들이 지켜야 하는 존재라고 굳게 믿는 것 같을 때다. 

가끔 일이 바빠서 신경을 못 쓸 때 문득 아이들이 생각나 주변을 둘러보면 항상 어딘가에서 묵묵히 나에게 시선을 꽂은 채로 졸거나 괜히 마당을 보고 짖기도 하고, 아니면 새들을 쫓아가면서 스스로 자랑스러워 하고 있기도 한다. 어설프긴 하지만 주인을 지켜야 한다는 사명감에 바닥에 궁둥이를 붙이고 버티는 아이들을 볼때면 솔직히 든든하다는 생각마저 들기도 한다.
 

첫 만남

우리 집도 처음부터 대가족은 아니었다. 불과 7년 전까지만 해도 두 마리 강아지와 함께 사는 평범한
가족이었다. 우리 가족은 잭 러셀 테리어 두 마리를 키우고 있었는데, 비슷한 시기에 엄마는 승마를
하기 위해 독일에서 공부를 시작했다. 

엄마가 계셨던 승마장에는 예로부터 헝가리안 비즐라를 키 워왔고, 승마장에 있는 말들과 사람들 모두 비즐라 들과 두꺼운 유대관계가 형성되어있었다. 엄마가 유학을 가셨을 때, 처음에는 독일어도 미숙하고 현지 환경도 익숙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때 엄마를 먼저 반겨주었던 녀석들이 바로 비즐라 삼총사였다. 그중에 한 마리는 항상 엄마를 따라다녔는데, 식사시간에 종종 엄마의 허벅지에 턱을 괴고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음식을 나눠 먹기를 기다렸다고 한다. 


그 덕분에 엄마는 웃을 일이 많아지셨고 자칫 우울해질 수 있는 상황에도 버틸 수 있으셨다고 했다. 그래서인지, 나도 부모님과 처음에 독일의 승마장을 방문하게 되었을 때 가장 먼저 만나고 싶었던 존재가 바로 고마운 비즐라들이었다. 페티와 루벤이 한국으로 올 수 있게 된 계기도 다 이 덕분이다. 

엄마는 한국에 돌아오신 후 독일에서 함께 생활했던 비즐라 아이들에 관해 얘기를 종종 하셨고 아빠도 독일을 방문하셨을 때 이미 한눈에 반하셨다고 했다. 그래서 우리 가족은 독일 승마장 에 헝가리안 비즐라를 입양하고 싶다고 부탁을 했다. 그리고 헝가리에서 태어난 페티와 루벤은 임시 보호 기간이 끝나고 약 4개월 뒤, 독일에서 한국으로 올 수 있었다. 

천사 같은 대형견

둘 중 한국에 먼저 도착한 것은 페티였다. 페티와의 첫 만 남은 내가 유학을 하던 중, 방학을 맞아 한국에 돌아왔을 때 이루어졌다. 첫인상은 “그냥 천사가 따로 없네!”였다.

위에서 말했다시피 이미 우리 집 식구였던 루이와 율러는 아는 사람은 아는, 절대 지치지 않는 잭 러셀 테리어이다. 이 아이들은 사냥개의 유전자를 가지고있어 그런지 작은 체구에도 엄청난 에너지를 가지고 있다. 그런데 이 꼬맹이들보다 최소 세배는 큰 헝가리안 비즐라 아이들은 사람 무릎에 살 비비는 것을 좋아하는 수줍은 아이들이었다.  매일매일 시끌벅적했던 우리 집이 페티가 오면서 좀 더 정돈된 듯했다. 이런 성격의 강아지는 처음 본다고 해야 하나? 아직 아기지만 속이 마냥 깊고 맑은 아이인 것을 단번에 알 수 있었다. 

천사 같은 대형견이 있다고 해서 문제가 없는건 아니었다. 루벤까지 한국에 도착하고 나서는 공간에 대한 고민이 더욱 커졌다. 루벤까지 집에 있는 게 여간 힘든 게 아니었다. 산책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그때 당시 우리가 살던 빌라에는 작은 공용정원이 있었는데 그곳엔 울타리가 따로 없어 공원에 나가서 산책해야만 하는 환경이었다. 때문에 아이들은 항상 리드 줄을 사용해야 했고, 우리도 그게 아이들에게 온전한 자유로움을 주지 못한다는 걸 알면서도 풀어놓을 곳이 마땅히 없어 안쓰럽고 답답했었다. 보통의 강아지라면, 대형견이라면 특히나 더, 뛰어다니고 냄새 맡는 것만으로도 행복감과 자유로움을 느끼는 게 당연할진대 항상 묶여서 보행의 제한이 있다는 것이 미안했었다. 그뿐만이 아니라 엄마도 산책을 한 마리씩 따로 나가야 했고 겨울에는 심하게 넘어지는 일들도 종종 생겼었다.

모두가 함께 살기 위해 우리 가족은 이사를 결심했다. 적당한 밸런스가 중요했다. 사람과 강아지가 공존하는, 서로가 어느 정도 양보하고 서로가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집. 엄마는 일 년 반이 넘는 시간 동안 스스로 공부해 나가시면서 아이들이 가장 안전하고 행복하게 남은 삶을 살 수 있는 집이란 어떤 집일지 누구보다 열심히 고민하고 실현해 나가고 계셨다. 그리고 곧 그 집은 지금의 우리 가족이 살고 있는 집이 되었다.

그동안에 우리에게 새 식구도 찾아왔다. 페티와 루벤의 새끼가 한 마리 태어났다! 외동딸로 태어난 로지는 온 가족의 사랑을 독차지하며 귀여운 강아지로 커 나갔고, 이마트 출 신 닥스훈트 라온이는 재작년 우리 집의 막내로 들어왔다.

우여곡절 끝에 이사를 한 지금, 아이들은 마당과 집안을 오가면서 각자 나름대로의 자리에서 낮잠을 자기도 하고, 나와 동생 방에 몰래 들어가서 양말을 훔쳐 내려오기도 하고, 사람 품에 있고 싶다고 보채기도 한다. 그렇게 우리 집 은 아이들의 일상 대부분을 보내고 불편함 없이 행복하게 지낼 수 있는 보금자리가 되었다. 

페티와 루벤을 보고 있자면 든든하기도 하고 이 아이들이 우리와 함께한다는 것 자체가 감사하다. 벌
써 여섯 살이 된 페티와 루벤, 다섯 살인 로지…. 어느새 중년의 나이가 되어서 가끔 조금 슬프고 더 잘해주지 못한 점이 많은 것 같아 미안할 뿐이지만 이 아이들 덕분에 바뀐 우리 가족의 삶과 앞으로 함께 살아갈 날들에 대한 설렘이 더 크다. 

원하는 것이 다 다르고, 성격과 성향이 다 다르고, 좋아하는 것 싫어하는 것이 다 다르다는 것, 그리고 그것을 알아주고 인정해 주는 것만으로도 행복해하는 아이들을 위해서 더욱 좋은 견주가 되고 싶다.

글·사진 김주리 
에디터 글월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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