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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삶의 한 페이지

  • 승인 2020-06-10 14:4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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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몽사몽 다이어리

내 삶의 한 페이지

 

2018년 01월 15일. 

이 두 녀석과 인연이 된 날이다. 

반려견을 키우고 싶다고 생각한 것은 사실 꽤 오래전의 일이었다. 가족들의 반대로 그 시기를 미뤄오던 나는 결혼과 함께 드디어 바람을 이룰 수 있었다. 강아지들을 데리고 오기 전부터 녀석들의 이름은 이미 정해져 있었다.

비몽이, 그리고 사몽이.


“우리 집에 온 걸 축하해.
비몽아, 사몽아!”





첫 만남, 첫 위기

처음 만난 두 아이는 그저 너무 귀엽고, 귀엽고, 또 귀여웠다. ‘이 아이들을 어떻게 돌봐야 하나?’ 하는 낯섦도 잠시, ‘이 사랑스러운 녀석들을 어떻게하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강아지로 만들어 줄 수 있을까?’ 하는 행복한 고민에 빠졌다. 

하지만 첫 번째 위기는 두 녀석을 집에 들인 지 보름도 채 되지 않았을 때 찾아왔다. 처음부터 사몽이의 눈이 어딘가 모르게 조금 불편해 보인다 싶기는 했지만, 설마 그게 각막궤양으로까지 번질 줄이야.

 


태어난 지 고작 두 달도 채 되지 않은 새끼강아지에게는 너무 가혹한 일이었다. 아픈 강아지를 돌보는 일 역시 나에게는 생전 처음 있는 일이라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막막하고 두려웠다. 

사몽이와 함께 지낸 시간은 비록 짧았지만 그사이 정이 찰싹 붙어버려 입양처로 되돌려 보내는 일은 생각조차 할 수 없었다. 대신 이 아이를 책임지고 낫게 해주어야겠다고 애써 마음을 다잡았다. 

그 후 사몽이의 눈 치료는 두 달간 이어졌다.

사몽이는 먼저 ‘제3안검 플랩’이라는 각막 치료 수술을 받았다. 하지만 얼마 뒤 수술 부위가 터지는 바람에 재수술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게 끝이 아니었다. 수면 시간을 제외한 매 30분 간격으로 사몽이의 눈에 안약을 넣어 주어야만 했다. 긴 치료 기간은 사몽이와 나를 지치게 했다. 하지만 고비마다 비몽이가 의젓하고 든든하게 곁을 지켜준 덕분에 나도 사몽이도 치료에 집중할 수 있었다. 

물론 비몽이에 대한 사몽이의 의존도가 유독 심해지는 뜻밖의 결과를 낳기도 했지만. 심지어는 견주에게조차 느끼지 않던 분리불안을 비몽이에게 느끼게 되었을 정도니까 말이다. 가끔 보면 사몽이는 비몽이를 아빠라고 생각하는 것 같기도 하다. (웃음)

그렇게 두 달이 지났다. 고맙게도 사몽이는 두 번의 눈 수술을 잘 버텨줬고 각막의 염증 또한 언제 그랬냐는 듯 깨끗이 사라졌다. 나는 정말이지 뛸 듯이 기뻤다. 힘든 일은 이제 다 지나간 거라고, 힘들었던 만큼 행복한 기억을 잔뜩 비몽이, 사몽이에게 심어주어야겠다고 다짐했다.


중성화수술, 잘하는 걸까?

한동안 평화로운 날들이 이어졌다. 비몽이와 사몽이는 뽀드득뽀드득 하얀 눈도 밟아보고, 푸른 잔디밭을 실컷 뛰어놀고, 이갈이도 하며 여느 강아지와 다를 것 없는 즐거운 날들을 보냈다. 

그리고 얼마 뒤 사몽이에게 첫 생리가 찾아왔다. 생리 기간 내내 사몽이는 굉장히 힘들어했다. 배가 아픈지 계속해서 끙끙거리는가 하면, 왕성하던 식욕도 팍 줄어들었다. 

사실 남아, 여아 한 쌍으로 강아지를 데리고 온 이유에는 둘의 새끼를 보고 싶단 마음이 있어서이기도 했다. 하지만 힘들어하는 사몽이의 모습을 보니 차마 그럴 생각은 들지 않았다. 

오랫동안 고민고민하다 사몽이에게 중성화 수술을 해 주기로 했다. 수술 일정은 사몽이의 첫 생리가 끝나고 약 석 달 뒤로 잡았다. 사몽이는 여아였으므로 중성화 수술을 하기 위해선 개복을 해야만 했다.

초조했다. 수술실 밖에서 사몽이를 기다리는 시간이 굉장히 길게 느껴졌다. 솔직히 말하면 ‘내 선택이 맞을까? 괜히 사몽이를 힘들게 하는 건 아닐까?’ 하는 의구심도 들었다. 

다행히 사몽인 내가 예상했던 것보다 빠른 속도로 씩씩하게 회복해 주었다. 이때 역시 비몽이는 ‘거 참, 별것도 아닌데.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하는 의젓한 얼굴로 아픈 사몽이와 못난 초보 견주 곁 을 든든하게 지켜주었다.

이번엔 비몽이가 각막궤양이라니요
 
그렇게 또 시간이 흘러서 비몽이와 사몽이의 생일이 되었다. 1년간 무려 세 번의 수술을 이겨내 준 사몽이에게 고마웠고, 무엇보다 아픈 사몽이를 질투하지 않고 묵묵히 곁을 지켜준 비몽이에게 한없이 미안했다.

하지만 그러던 중 비몽이에게도 문제가 생겼다. 차우차우는 다른 견종에 비해 유독 얼굴에 주름이 많은 견종이다. 이 때문에 안검내반(쌍꺼풀) 수술을 종종 한다고 들었지만, 내심 우리 집 개들은 아니길 바랐다.

하지만 비몽이 역시 새끼 때부터 과도하게 분비되던 눈물 때문에 눈 주변이 늘상 축축하게 되어 버리는 문제가 있었다. 오랜 고민 끝에 나는 비몽이의 안검내반 수술을 결정했고 이왕 마취하는 김에 중성화 수술까지 함께 진행하기로 했다.

수술이 끝났다.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비몽이 역시 사몽이가 그랬던 것처럼 금세 씻은 듯 나아 펄펄 날아다닐 거라고 확신하고 있었다.

하지만 회복 과정에서 비몽이의 눈은 덧났고 다시 지긋지긋한 각막궤양이 왔다.

처음에는 알아차리지 못했다. 단지 조금 회복이 느린 거라고 생각했다. 수술 후 비몽이는 제대로 눈을 뜨지 못했다. 눈을 뜨지 못하니 막다른 곳에 자꾸만 머리를 부딪쳤다. 억지로 두 눈을 뜨게 해 보려고 해도 자꾸만 발버둥 치는 바람에 손조차 제대로 댈 수 없었다. 결국 우리는 비몽이를 다시 병원에 데려갈 수밖에 없었다.

마취 후 들여다본 비몽이의 눈 상태는 심각했다.

지금껏 한 번도 아팠던 적이 없었던 비몽이었기에 충격은 더욱 컸다. 안구에 렌즈를 삽입하여 각막을 보호하는 방법을 써 보려 했지만 야속하게도 렌즈는 계속 빠져버렸고 이전에 그랬던 것처럼 30분마다 눈에 안약을 넣어 주는 수밖에 없었다.

싫어할 법한데도 착한 비몽이는 언제나처럼 의젓하게 버텨줬다. 안약을 넣을 때도 잘 참았고, 약도 잘 먹어줬다.

다행히 비몽이의 시력은 조금씩 돌아왔다. 지금은 전혀 불편해하지도 않고 상처 역시 아물었지만 그때의 흉터 자국은 훈장처럼 아직 희미하게 남아 있다.

비몽이는 무사히 회복했지만 나는 한동안 죄책감에 시달렸다.수술받기 전 상태가 그렇게 심각한 것도 아니었는데 내가 괜한 욕심을 부려 비몽이를 힘들게 한 것 같아 미안하고 또 미안했다. 말도 못하는 아이가 두 달간 얼마나 아픈 시간을 보냈을까. 하지만 그러면서도 끝까지 꿋꿋하게 참아 준 비몽이를 생각하면 한 편으론 대견하면서도 가슴이 아려온다.

다시, 여름

돌이켜보면 사몽이의 첫 생리가 끝났던 시기 역시 작년 이맘때였다. 유독 모량이 풍부한 차우차우에게 사계절 중 여름은 아주 위험한 계절이다. 체온 조절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작년의 나는 녀석들과 맞는 첫 여름을 잘 이겨내기 위한 만반의 준비를 했다. 아이스팩을 넣을 수 있는 대리석 침대에서부터 새 선풍기, 공기 순환기를 구비해두는가 하면 냉동실에 얼음을 가득 얼려두기도 했다. 수영장에서 헤엄도 신나게 쳤다. 덕분에 두 녀석은 유독 더웠던 작년 여름을 씩씩하게 이겨냈다.

어느새 우리는 벌써 두 번째 여름을 보내고 있다.


물론 모든 걱정거리가 사라진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번 여름도, 앞으로의 여름도, 어쩌면 앞으로 우리에게 찾아올지도 모르는 또 다른 위기까지도 비몽, 사몽이는 잘 견뎌내 줄 것이라 믿는다.

덩치만 컸지 순 장난꾸러기인 이 두 녀석을 키우면서 힘들었던 기억은 수없이 많다. 하지만 그것과는 비교도 안 될 만큼의 커다란 행복감을 나는 분명 느끼고 있다.

한 생명을 내 인생의 ‘반려’로 맞아들인다는 말의 의미를 제대로 실감하고 있는 요즘, 내가 받고 있는 조건 없는 사랑에 보답하기 위해서라도 두 녀석의 견생을 그 누구보다 굳건한 마음으로 끝까지 책임질 생각이다.




CREDIT
글 사진 이수정
에디터 이혜수



<비몽사몽 다이어리-내 삶의 한 페이지>
해당 글은 MAGAZINE P 2019년 8월호에 수록된 것으로, 저작권은 (주)펫앤스토리에 귀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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