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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를 유기한 당신, 쓸쓸해졌으면 좋겠습니다

  • 승인 2020-06-10 14:4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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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의 크리스마스

크리스를 유기한 당신,
쓸쓸해졌으면 좋겠습니다


 

과거를 굳이 알고 싶지는 않았다. 

그래서 크리스를 
구조해오신 분에게 
 어떤 질문도 하지 않았다. 

질문에 대한 해답을 찾는 것이 앞으로 우리의 관계의 진전에 있어서 별다른 도움을 주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에서였다.

크리스, 무슨 일이 있었던 거니?

사랑하는 이의 불편한 과거를 억지로 들추는 건 곧잘 여러 가지 오해를 불러일으키곤 한다. 반려견과의 관계에서 역시 크게 다르지 않을 터였다. 

도로 한구석에 묶인 채 발견되었다는 말만 구조 처로부터 얼핏 전해 들었다. 그게 내가 크리스에 대해 알고 있는 배경의 전부였다. 그럼에도, 크리스의 과거를 짐작할 수 있게 되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한동안 크리스는 모르는 성인 남자와 함께 엘리베이터에 탈 때면 겁에 질린 채 필사적으로 컹컹 짖어댔다. 같은 장소에서 아이들이나 여자들을 마주할 때와는 확연히 구별되는 모습이었다. 

 

산책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크리스는 길에서 마주치는 낯선 성인 남자들을 경계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그들을 따라가려는 듯한 모순적인 행동을 보였다. 이를 보며 우리 가족은 ‘크리스를 유기한 전 주인은 아마도 성인 남자일 것이고, 크리스를 학대했지만 그럼에도 크리스는 그를 주인으로 생각했겠구나’ 하고 짐작했다. 

크리스의 학대 사실에 대해 확신하게 된 건 이불과 벨트를 볼 때마다 나타나는 크리스의 반응 때문이었다. 크리스는 가족 중 누군가가 침대위를 정리하기 위해 이불을 양손에 잡고 펄럭거릴 때마다 비명을 지르며 도망을 갔다. 

벨트에 대한 반응은 더 심각했다. 한번은 무심코 문고리에 걸어두었던 남편의 벨트가 챙 하는 날카로운 금속성의 소리를 내며 바닥에 떨어졌는데, 크리스는 째지는 듯한 비명을 지르며
 식탁 밑으로 기어들어가더니 반나절이 지나도록 벌벌 떨며 나오지 않았다. 

우리 집에 온 지 3년이 지난 지금, 예전처럼 예민한 반응은 보이지 않지만 벨트만큼은 아직도 완전히 극복하지 못하고 있다.

서로가 서로에게 이득인 사이
 

다행히 크리스는 서서히 달라지기 시작했다.

첫 번째 변화는 크리스의 외모에서부터 나타났다. 깊게 패 없어질 것 같지 않았던 눈물 자국은 어느새 사라지고 그 자리에 보송보송한 흰털이 자리 잡았다. 늘 겁에 질린 듯 보이던 표정은 많이 편안해졌고, 가족들이 조금이라도 움직일 때마다 예민하게 반응하는 일도 사라졌다. 크리스는 이제 우리가 집 안에 있더라도 다른 방에서 혼자 태평하게 낮잠을 자기까지 한다.

 

달라진 건 크리스뿐만이 아니었다. 딸이 유아기를 막 지날 무렵, 매사에 조급하고 스트레스를 잔뜩 받던 나는 크리스를 들인 후 비로소 마음의 여유를 찾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크리스를 만나기 전의 나는 정말이지 엉망진창이었다. 내게 있어 ‘열심히 산다’는 것은 ‘1분의 여유도 없이 산다’는 말과 동의어나 다름없었고, 닦달하는 사람이 없을 때조차 늘 시간에 쫓기며 살았다. 

그래서 나의 오랜 버킷리스트 중 하나였던 유기견 입양을 진지하게 고민하면서 우습게도 가장 먼저 우려했던 점은 ‘산책 시간을 어떻게 해야 하나’라는 것이었다. 이왕 가족으로 들였으니 매일 산책을 해줘야 할 테고 집 앞 공원이라도 한 바퀴 돌고 오려면 못해도 하루에 한 시간은 날아갈 터였다. 

처음엔 시간이 아깝다고 생각했다. 당시의 나로서는 개와 단둘이 매일 한 시간씩이나 굳이 시간을 들여 산책한다는 게 어려운 과업처럼 느껴졌다. 이렇듯 크리스의 견주가 되는 일은 내게 ‘시간 낭비해보기’라는 새로운 경험을 안겨줬다. 

변화는 소소하지만 확실하게 찾아왔다. 크리스와 산책을 할 때마다 나는 공원에서 마주친 이웃들과 인사를 나누게 되었다. 젊은 부부나 노신사,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크리스를 바라보는 어린아이들, 또 이전에는 무심하게 지나쳤던 견주들과 다양한 대화를 주고받았다. 

‘반려견’이라는 주제는 언제나 똑같았지만 대화의 샘은 이제 막 물꼬를 튼 것 마냥 그칠 줄 몰랐다. 처음에는 모든 게 낯설었지만 그런 만남을 언제부턴가 나는 ‘동네 개파티’라고 부르며 크리스만큼이나 산책 시간을 기다리게 되었다. 

그건 정말이지 엄청난 변화였다. 딸이 유치원에 가 있는 동안 무슨 일이든지 하나라도 해치우지 않으면 안 되는 강박을 지니고 살던 나는 스스로를 괴롭혀 오던 시간의 압박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었다. 크리스가 내게 ‘여유로움의 미학’을 가르쳐 준 것이다.

내게 온 뒤 크리스의 삶이 달라진 것만큼이나 나의 삶의 역시 이전과는 180도 달라졌음을 지금에 와서야 깨닫는다.


크리스를 유기한 당신에게
  

‘어떻게 이런 아이를 길가에 버릴 수 있을까?’


크리스의 부드러운 털을 쓰다듬거나 초롱초롱한 눈망울과 마주할 때면 문득 이런 생각을 하곤 한다.

하지만 크리스를 유기한 그 사람을, 이제는 미워하기보다 불쌍하게 여기려고 한다. 크리스에게서도 이제 전주인의 그림자가 많이 옅어진 것 같다. 여전히 몇 가지 좋지 않은 습관은 남아 있지만 그마저도 우리 가족과 보낼 시간 속에서 하나둘 희미해져 갈 것이라는 걸 안다.

유기견을 반려견으로 맞이하고 동물권 문제에 관심을 기울이게 되면서 개를 유기하는 사람들을 이전보다 더욱 싫어하게 됐지만 혹시라도 크리스를 유기한 사람이 이 글을 보게 된다면, 당신에게 이 한마디만은 꼭 해 주고 싶다.

 

“사람은 혼자서는 살 수 없다고들 하지요. 
신이 크리스에게 잊혀진만큼, 

적어도 그 기억의 크기만큼은
 꼭 쓸쓸해졌으면 좋겠습니다.”



 

 

CREDIT
글.사진 이영주
에디터 이혜수

<크리스의 크리스마스-크리스를 유기한 당신에게>
해당 글은 MAGAZINE P 2019년 8월호에 수록된 것으로, 저작권은 (주)펫앤스토리에 귀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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