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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웃도어 라이프

  • 승인 2020-06-10 15:0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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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책이 너무 재미없었다.
아니, 정확하게는
동네 아파트 단지를 돌아다니는 게
너무 재미없었다.

야외에서 10km 러닝은 하면서
러닝머신 2km가 지겨워
헬스장도 안 가는 내가 맨날
같은 동네를 산책하다니........

지겨워도 너무 지겨웠다.

과연 나만 그랬을까?!

코르키와 에코도
같은 마음이지 않았을까?
흙도 밟고 풀냄새도 맡고
바람도 쐬고 싶지 않았을까?

그래서 시작되었다.

난 산책이 너무 싫어!

언젠가 이런 이야기를 들었다. “웰시코기는 꼬리가 없어서 표정이 다양하다면서요?”

웰시코기인 다섯 살 코르키와 세 살 에코는 여우처럼 큰 귀와 동글동글한 눈 으로 어찌나 자신의 심리상태를 여과 없이 보여주는지...

좋을 때, 싫을 때, 귀찮을 때는 물론이고 특히 집안에서와 밖에서 보여주는 롤남매(코르키와 에코 는 유명 게임 ‘롤’의 캐릭터 이름입니다)의 표정은 하늘과 땅 차이이다.

귀엽게 생긴 외모와는 다르게 어찌나 활동량은 또 대단한지, 웬만한 동네 산책으로는 롤남매의 에너지를 해소시킬 수 없었다.

일이 바빠 산책을 건너뛰는 날 이면 메기 눈을 하며 째려 보기 일쑤였고, 조금이라도 산책이 부족한 날이면 밖에 주저앉아서 안 가겠다고 떼를 쓰며 버티는게 일상이었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집에 가기 싫구나?” 하며 웃으면서 갈 정도였으니……. 그러면 할 수없이 다시 돌아가 동네 한 바퀴를 더 돌아야만 했다.

코르키와 에코는 내가 어디 나갈 채비를 하고 있으면 종일 졸졸졸 따라다니며 간섭하고, 혹시 자길 데려가진 않을까? 기대하는 눈빛으로 쳐다보곤 한다.

그 눈빛이 안타까워 어딜 나가도 일찍 들어오게 되고, 어딜 가도 롤남매와 함께 할 수 있는 공간을 찾아다니기 시작했다.

반려견 운동장과 수영장도 처음엔 재미있었다.

보통 반려견 운동장에 가면 애들이 놀 때 앉아서 수다를 떨며 동 시에 다른 반려견들과 문제는 없는지, 바닥에 떨어진 무언가를 주워 먹진 않 는지 감시하고, 공을 던져주거나 수영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게 내 몫이었다.

물론 코르키와 에코가 너무 좋아했고 좋아하는 모습을 보며 나도 너무 즐거웠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뭔가 부족했다. 개들끼리 놀고, 개들만 수영하고……. 나도 같이 놀고 싶단 말이야!!!

산으로 트레킹을 떠나다.

어릴 적부터 바다보다 산과 친했던 나는 롤남매와 산으로 떠나보기로 했다.
반려견 동반 트레킹 장소를 물색하기에 앞서 몇 가지 기준을 세웠다.

1 계단이 많지 않은 산 계단으로만 이루어져 있는 등산 코스를 가본 적 있는 사람들은 모두 공감할 것이다. 흙길보다 두 배는 더 힘들다! 특히나 하산 중이라면, 힘들 뿐만 아니라 무릎에 무리가 많이 간다. 웰시코기는 긴 허리와 짧은 다리를 가져 지속적으로 계단을 오르내리면 관절이 무리가 올 수 있으니 꼭 피해야 할 코스이다.

2 국립공원이 아닌 곳 안타깝게도 아직 반려동물은 국립공원 출입이 불가능하다. 도립공원도 대부분 반려동물 출입 불가하니 사이트에 나와 있지 않다면 전화를 미리 해보는 게 좋다.

3 이미 많은 반려견이 다녀간 곳 언제나 우리의 목적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아웃도어 라이프!’ 안전이 최우선이기 때문에 이미 반려견들이 다녀간 후기가 많은 곳이 좋다. 그래서 결정된 우리의 첫 트레킹 코스는 바로 강원도 정선에 위치한 민둥산이었다. 여느 산과 는 다르게 끝도 없이 펼쳐지는 정상의 드넓은 억새밭이 유명한 산이었다.


그렇게 두 세 시간을 달려 달구지 마을에 도착했다.

다행히 월요일이라 등산하며 보거나 만난 사람은 없었다. 아니, 산 전체를 전세 낸 듯 아무도 없이 고요했다. 롤남매는 말 그대로 물 만난 물고기였다!

얼마나 좋은지 뛰고, 구르고, 주워 먹고..... 둘이 우다다다 몰려다니며 냄새도 맡고 바닥에 몸을 비비기도 하며 온몸으로 자연을 느끼던 코르키와 에코.
그 모습이 마치 놀이동산에 처음 가본 5살짜리 어린 아이들 같았다.

나 역시 롤남매의 모습과 산의 풍경을 하나 하나 눈에 담으며 느긋느긋 천천히 올라갔다. 하나라도 놓치고 싶지 않았다. 자연과 초록 색은 넋을 나가게 하는 무언가를 가지고 있다.

거기다 내가 사랑하는 롤남매와 함께하니 더할 나위 없었다. 해가 뜨고, 구름이 몰려오고....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1117m 민둥산 정산 구간.
워낙 겁이 많아 언제 비가 올까 전전긍긍하면서도 너무 아름다워 눈을 뗄 수 없던 광경.

코르키는 가만히 앉아 계속해서 풍경을 둘러보았고, 여전히 에너지가 넘치는 에코는 이곳저곳을 누비고 다녔다.
가만 보면 동네 산책할 때와 똑같다. 코르키는 앉아서 사람들 지나 다니는 걸 구경하고, 에코는 그저 더 걷고 싶어 한다.

롤남매 눈에는 이 풍경들이 어떻게 비쳤을까? 내가 느끼는 것만큼 황홀하고 아름다워 보였을까?

난 사실 겁이 무지 많다. 떠날 때까지만 해도 혼자 잘 다녀올 수 있을까 많이 걱정했다.

하지만 아무도 없었던 산을 코르키 & 에코와 걷기 시작하니까 자연스럽게 두려움이 사라졌다.

‘기다려줘!’ 하면 쪼르르 뛰어가다가도 기다리고, ‘언니 힘들어’ 하면 옆에 와서 발걸음 맞춰 걸어주는 이 작은 친구들을 보면서 오히려 든든하고 행복했다.


우리의 문밖의 삶은 계속 될거야!

그렇게 첫 트레킹을 성공적으로 마치고 우리는 선자령, 오서산, 어 비산, 축령산, 청계산 등 반려동물이 출입할 수 있는 트레킹 코스를 함께 누비고 다녔다. 산에서만큼은 척하면 척!

내 작은 사인에도 코르키와 에코는 귀 기울여 따라주었고, 그 어느 때보다 행복한 미소를 보여주었다.

트레킹을 하며 힘들 때도 있고, 위험한 순간도 있었지만 함께였기 때문에 10km도 거뜬히 걸을 수 있었고, 매번 아름다운 풍경을 눈과 머리에 담아올 수 있었다.

하지만 코르키 나이가 다섯 살이 되면서 관절에 무리가 오기 시작했다.

더 이상 10km 가량 되는 긴 트레킹을 하거나 가파른 산에 올라가는 것은 무리가 될 수 있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요즘은 롤남매와 국내여행, 캠핑 혹은 물에서 할 수 있는 엑티비티를 많이 즐기고 있다.

함께 한강에 나가 스탠드업 패들 보드(SUP)를 타기도 하고, 홍천강으로 나가 카누를 타기도 한다.

누군가에게는 단지 강아지일 수 있지만, 나에겐 가족인 코르키와 에코에게 계속해서 더 넓은 세상을 보여주고 오랫동안 함께 즐기고 싶다.









CREDIT
글.사진 한민혜
에디터 조문주


<아웃도어 라이프-문밖의 삶>
해당 글은 MAGAZINE P 2019년 10월호에 수록된 것으로, 저작권은 (주)펫앤스토리에 귀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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