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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gazine P. 함께일 때 더욱 행복하도록

  • 승인 2020-09-24 16:2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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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벌써 크리스와 네 번째 크리스마스를 맞이하는 거면서왜 여태껏 한 번도 제대로 된 생일상을 차려주지 못했을까.

  크리스는 크리스마스를 코앞에 두고 우리 가족이 되었다크리스의 안락사 기한이 얼마 남지 않았던 때크리스를 구조해준 단체 사람들은 ‘크리스마스에는 가족을 만나서 행복해졌으면’ 하는 의미를 담아 크리스라는 이름을 지어주었다고 한다.

  그 이름이 운명처럼 느껴져 나는 더 좋았다그래서 우리는 굳이 이름을 바꾸지 않고 크리스라는 이름 그대로 부르기로 했다그리고 결심했다앞으로 함께 보낼 모든 크리스마스를 크리스에게 있어서 세상 최고로 행복한 날로 만들어주겠다고.        

 

크리스가 아팠다

  하지만 크리스의 행복한 크리스마스 만들기는 그리 순탄치 않았다입양 첫해 크리스마스입양된 지 며칠 되지도 않은 크리스를 두고 우리 가족은 정신없이 바쁜 크리스마스를 보냈다먼 친척이 상을 당했기 때문이다이듬해 크리스마스에는 내가 아팠고그다음 해에는 바빴다.

  그렇게 시간은 흘렀다내가 크리스에게 뭘 못 해줬다거나 한 것은 아니었다크리스는 우리와 늘 함께였고따라서 언제나 행복했지만 ‘크리스’라는 이름에 담긴 특별한 의미는 조금씩 우리에게서 잊혀지고 있었다올해 크리스마스를 한 달 정도 앞두고나는 이번에는 꼭 크리스의 생일상을 직접 차리겠노라 마음먹었다다양한 수제 간식들로 가득 차려진 강아지 생일상’ 사진을 검색해보면서내 마음은 올해엔 아주 특별하고 행복한 ‘크리스의 크리스마스’를 만들고야 말겠다는 포부로 가득 차 있었다.

 

 
  그런데생일을 얼마 남겨두지 않은 때 크리스가 아팠다뭔가를 잘못 먹은 것도 아닌데 계속 구토를 했다구토가 이틀째 지속되어 결국 동네 동물병원에 가서 진료를 받았다그날이 바로 크리스마스이브였다의사가 크리스의 상태를 살피는 몇 분 동안특히 크리스의 배 부분을 손으로 면밀히 만져보며 검사를 하는 1분여간은 정말로 시간이 멈춰버리기라도 한 듯 숨이 막혔다.

  “별 이상은 없네요 ”라는 말이 떨어지고 나서야 나와 딸아이는 안도의 한숨을 내쉴 수 있었다귀 검사와 치아 검사를 모두 마치고그래도 이틀이나 토를 했으니 처방하는 거라며 수의사는 크리스에게 주사를 놓아주었다그렇게 하루 동안의 금식 처방을 받고서 우리는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어쨌거나 아픈 곳이 없으니 마음이 놓였지만생일상을 차려주려던 계획이 수포로 돌아가 허망해진 마음은 어쩔 수 없었다.

 
더욱 행복하도록

  건강하지 못한 반려견을 지켜보는 것은 정말이지 가슴 아픈 일이다개의 수명이 인간의 그것과 견줄 만큼 길지 못하기 때문에 더 그렇다어쩌면 개를 기른다는 것은 다가올 것이 확실한 예견된 슬픔을 안고 사는 일일 지 모른다금식이 끝나가는 크리스를 위해 양배추를 삶고설탕물을 준비하면서 곰곰이 떠올려 보았다크리스가 좋아하는 것들을.

 
  크리스는 공원에 함께 나가는 것을 좋아한다다른 개들이나 사람들이 많지 않은 시간일 때 더욱 그렇다텐트까지 친 채라면 더없이 행복하고 편안해 하는 크리스의 모습을 볼 수 있다.

  또 크리스는 우리 몸 위에 올라가 잠드는 것을 좋아한다배를 만져주는 것을 좋아하고 털을 빗겨주는 것을 좋아한다딸아이가 어릴 때 썼던 실리콘 욕조에 몸을 담그고 반신욕 하는 것을 즐긴다옷이나 장난감을 사다 주면 자기 것인 줄 확실히 알고 기뻐한다.

  크리스는 차에 타면 극도로 흥분하기 때문에 우리는 함께 먼 여행을 떠난 적도 없고크리스에게 번듯한 사진촬영을 해준 적도 없다강아지 유치원에 가거나 다른 개들과 특별히 만나 교류를 한 적도 없다함께 수영장에 간 적도 없다그리고다양한 수제 간식들로 차려진 생일상을 받아본 적도 아직은 없다크리스가 완전히 회복하고 나면 조금은 늦은 생일상을 차려줄 예정이다그리고 해 본 적이 없는 것들을 하나씩 하나씩 리스트에서 지워나가고좋아하는 것들을 함께더 많이더 자주 누릴 것이다.

 
  <토이 스토리>에서 앤디가 가장 아끼는 장난감인 우디는앤디가 어른이 되어버린 미래에 대해 걱정하는 친구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앤디가 크는 걸 막을 순 없겠지그래도 괜찮아함께할 동안은 행복할 거니까.

  어쩌면 예견된 슬픔을 알고 있기에우리는 함께할 동안에 더 행복할 수 있는 건 아닐까.
 

글.사진  이영주
에디터  이혜수


<크리스의 크리스마스-함께일 때 더욱 행복하도록>
해당 글은 MAGAZINE P 2019년 2월호에 수록된 것으로, 저작권은 (주)펫앤스토리에 귀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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