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째 임시 보호로 만났던 스콘이를 평생 가족의 품으로 보낸 지 1일 차.
생각보다 빠르게 찾아온 이별에 우리 자매는 별다른 의논 없이 자연스레 다음 임시 보호가 필요한 아이를 찾았다. 스콘이 때와는 달리 이번엔 보호소 직원분에게 “당장 임시 보호가 급하게 필요한 아이가 누구인가요?” 하고 물었다. 그러자 ‘해리’라는 아이를 맡아줬으면 좋겠다는 대답이 들려왔다. 답장을 받자마자 나는 파주행 버스에 올랐다. 지금 생각해봐도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게 충동적인 날이었다.
햇살처럼 해사한 너의 이름은 해리
보호소에 도착하자 직원분께서 깡마른 하얀색 푸들 강아지를 데리고 나오셨다. 가슴 줄을 최대로 조여도 몸이 쑥 빠져나올 정도로 마른 체형에, 얼마나 거리를 떠돌았는지 퀴퀴한 냄새가 참기 힘들 정도였다.
지워지지 않을 것 같은 선명한 눈물 자국에 표정을 잃은 얼굴, 낯선 이의 품에 안겨 발버둥 치는 해리를 보고 있으니 걱정이 앞섰지만, 그래도 나름 임시 보호 3회차에 접어든 경력자로서의 자부심을 가지고 해리를 데리고 씩씩하게 집에 왔다.
해리는 문산의 어느 고등학교 후문 편의점 앞에서 발견되었다고 한다. 목에 예쁜 노란색 목줄을 차고 있는 것을 보아하니 가족의 품에 있다가 온 녀석인가 보다. 가족의 손을 놓친 건지, 누군가 일부러 놓은 건지는 알 수 없지만 말이다.
그렇게 행복한 두 달간의 시간이 빠르게 흘러갔다.
세상에 이렇게 사랑스러운 강아지가 있다니! 어느새 우리에게 정을 붙인 해리는 그야말로 애교 만점 껌딱지였다. 누워 있으면 쪼르르 옆에 와서 팔베개를 베고 눕고, 우리가 집에 돌아오면 누나들 배 위가 침대인 마냥 방방 뛰며 뽀뽀를 남발한다. 또 가르치지도 않았는데 배변 패드에 똥오줌을 가리는 것은 기본, ‘손!’ 하면 손을 바로 내어주는 똑똑이 왕자였다.
해리에게 평생 가족을 찾아주는 게 우리의 임무이지만, ‘너무 빨리 가버리면 어떡하지?’ 걱정이 될 정도로 해리는 날마다 우리에게 커다란 행복을 선물해주고 있었다.
아직은 초보 엄마 우리들
그러던 어느 날 예상치 못한 사건이 터졌다. 일정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는데, 현관에서부터 거실이 모두 해리의 혈변 흔적으로 범벅이 되어 있던 것이다. 심장이 쿵쿵 뛰었다. ‘내가 뭘 잘못했나? 이러다 해리가 잘못되면 어떡하지?’ 어디가 아픈 건지 표현이라도 해 주었음 좋겠는데, 녀석은 그 와중에 꼬리를 흔들고 반기고 있었다.
해리를 데리고 바로 동물병원으로 향했다. 잠시 후 진료를 받는데 수의사 선생님께서 귀 안을 살펴보더니 적잖게 놀라시며 “너무 심한데…. 이 정도면 몸 안에 진드기가 있는 것일 수도 있어요.”라고 하셨다. 실제로 선생님이 해리의 귀를 닦아 내자 솜 쪼가리에는 이상한 갈색 물질이 듬뿍 묻어져 나왔다.
언젠가 이런 이야기를 들은 적 있다. 주인을 잃은 강아지들은 다시 사람의 품에 안기면 일부러 더 밝은 척을 하고 애교를 부린다고. 다시는 버림받고 싶지 않다는 마음으로 그런 행동을 한다고.
해리는 우리가 경험한 어떤 강아지들보다 상황 적응력이 빨랐고, 그래서 하루 만에 우리에게 마음을 활짝 열고 다가와 준 아이였다. 내내 밝고 사랑스러운 모습만 보여줘서 건강한 줄만 알았는데, 방심이 낳은 참사였다. 해리에게 너무나 미안했다. 임시보호 세 번째라고 나름 고수인 척을 해댔는데 역시나 우리는 아직 초보 엄마들이었다.
사람의 성격이 모두 다 다르듯 강아지들도 누구 하나 같은 아이가 없다는 것, 그러니 임시보호를 할 때도 항상 주의, 경계를 하고 보살펴야 할 것. 명심 또 명심하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세상엔 행복한 이별도 있다는 것
폭염이 기승을 부리던 어느 8월, 우리 자매는 일주일간의 몽골 여행을 계획했다. 그사이 일주일 동안만 해리를 맡아줄 곳을 찾다가 꽤 오래 서로 연락이 없던 대학교 아는 선배에게 연락이 왔다.
운명은 우연처럼 다가온다고 했던가? 일주일간 해리를 맡아준 대학교 선배가 해리를 평생 가족으로 들이고 싶다는 중대 결정을 했다. 해리 이 녀석, 기특하게도 일주일간 매력 발산을 어지간히 했나 보다. 해리와 함께하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점점 이별이 두려워지곤 했었는데, 해리가 떠나는 날. 우리 자매는 어느 때보다도 무덤덤하게 해리를 보내줄 수 있었다. 앞으로 해리에게 펼쳐질 꽃길이 선명하게 그려져서일까.
이후 해리는 함께 사는 고양이 친구도 생기고, 매년 입양 기념일을 성대하게 축하받으며 제2의 견생을 살아가고 있다. 임시 보호는 항상 우리에게 세상에는 행복한 이별도 있다는 사실을 가르쳐준다. 해리와 보낸 시간은 어느 때보다도 길고 진했지만, 보다 이별에 덤덤할 수 있었던 것을 보니 우리는 이번에도 또다시 ‘행복한 이별’을 해냈음이 틀림없다.
글.사진 최세화
에디터 이혜수
<최자매의 행복한 이별이야기-이별 앞에 덤덤할 수 있는 이유>
해당 글은 MAGAZINE P 2019년 2월호에 수록된 것으로, 저작권은 (주)펫앤스토리에 귀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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