펫찌로고

Magazine C. 구질구질한 사랑

  • 승인 2020-09-24 16:35:22
  •  
  • 댓글 0

“아닌데 사람 좋아하는데?”

쭈그리고 앉아 양손을 내밀고 애타게 하맹이를 부르고 있다. 웬일로 카페에 사람들이 가득한데 시선이 모두 나를 향해있다.

하맹이가 골골거리는 소리를 내며 나에게 달려온다. 만족스러운 웃음을 지으며 안아주려는 찰나에 나를 스치듯 지나쳐 사료를 먹는다. 그리고 이내 고개를 들고 나를 한번 쳐다본 뒤 다시 사료를 먹는다. 명백하게 나를 기만하고 있다. 손님들이 우스꽝스러운 장면을 보고 피식거린다. 

사실 난 평소에 굳이 하맹이에게 사랑을 갈구하지 않는다. 서로 쿨하게 모르는 척 지나칠 때도 있고 어쩌다 기분이 좋으면 내가 가볍게 서로의 몸을 터치하는 정도의 선을 지키는 쿨한 인간과 고양이의 관계다. 그런데 지금 내가 구질구질하게 하맹이에게 관심을 요구하는 건 창가 자리에 앉아서 웃고 있는 후배 때문이다.

 

주말 점심부터 대학교 후배가 카페에 왔다. 그녀로 말할 것 같으면 아침에 웃고, 점심엔 화나 있으며, 저녁엔 초연한 표정을 짓고 있는 도통 예상할 수 없는 성격을 가진 친구다.

2마리의 고양이를 키우는 집사이기도 한 후배는 며칠 전부터 하맹이를 보러 온다더니 전화 한 통 없이 대뜸 나타났다. 

하맹이의 성격을 묻기에 독립심이 강하고 자기가 원할 때 아니면 사람을 그렇게 좋아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후배가 하맹이를 물끄러미 쳐다본다. 하맹이도 가만히 앉아 후배와 눈을 맞춘다. 후배가 입을 열고 말했다.

“아닌데, 사람 좋아하는데?”

아무리 고양이를 키운다지만 7개월을 동거 동락한 나보다 더 하맹이를 잘 안다는 듯한 말투. 자존심이 상한 나는 절로 콧방귀가 나왔다. 하맹이를 쳐다보며 후배에게 말했다.

“그럼 어디 한 번 만져봐.”

후배가 나를 보고 웃었다. 왠지 대학 때도 저 웃음을 본 것 같았다. 후배가 에코백에서 강아지 풀 같은 장난감을 꺼내 살살 흔들었다. 하맹이의 동공이 마치 최면에 걸린 것처럼 좌우로 움직였다. 그 뒤로 하맹인 후배가 집에 갈 때까지 껌딱지처럼 옆에 딱 붙어선 떨어질 생각을 않았다.

고양이는 원래 그래

곁눈질로 창가 해먹에서 자고 있는 하맹이를 쳐다보고 있다.

그동안 먹여주고, 재워주고, 씻긴 사람은 나다. 어느 날엔 콧물이 나길래 하맹이를 안고 새벽에 동물병원까지 뛰어간 사람도 나다. 그런데 머리를 몸에 비비며 교태를 부리고 '꾸르륵'거리며 비둘기 같은 기분 좋은 소리를 후배에게 내줬다. 나한테 한 번도 해준 적 없는. 

여후배도 미웠지만 하맹이에게도 서운했다. 그렇게 한참을 가자미눈을 뜨고 하맹이를 바라봤다. 그러다 문득 내가 표현이 서툴러서 하맹이와 친해지지 못한 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생각해보니 딱히 후배처럼 정성스럽게 장난감으로 놀아주지 않았고, 만지는 것도 싫어하는 것 같아 자제했었다. 

그렇게 생각을 하니 서운했던 마음이 가시고 미안한 마음이 찾아왔다. 자리에서 일어나 하맹이가 자고 있는 해먹으로 갔다. 

가까이서 보니 그간 사랑을 받지 못하고 자란 것 같아 자는 하맹이의 표정이 어딘가 외롭게 느껴졌다. 눈가에 연민에 감정을 녹이고 오른손에 사랑을 가득 담아 하맹이를 조심스레 쓰다듬었다. 

하맹이가 움찔거리더니 등을 세우고 기지개를 켰다. 다시 한 번 하맹이를 쓰다듬으려 손을 내밀었다.

‘날카로운 하맹이 이빨에 물려 손가락에서 피가 났다.’

‘처음엔 원래 그래. 친해지려고 노력해봐.’

내 방 컴퓨터 의자에 앉아 후배가 보낸 카톡을 읽었다. 일리 있는 말이지만 자존심이 상해 핸드폰을 뒤집어 놓았다. 

오늘도 하맹인 나와 멀리 떨어져 냉장고 위에서 자고 있다. 하맹이에게 다가가 까치발로 서 하맹이를 번쩍 들어 올려 품속에 안았다. 하맹이 얼굴에 내 볼을 대고 비벼댔다.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가만히 있던 하맹이는 몇 초 뒤 정신을 차렸는지 발톱을 세우고 몸부림친다. 결국 팔뚝 여기저기 상처가 났고 버티다 못해 하맹이를 놔줬다. 

이젠 냉장고보다 더 멀리 떨어져 신발장에서 잠을 잔다. 츄르를 꺼내 유인해보지만 반응이 없다. 방울이 달린 쥐 인형을 주술사처럼 흔들었다. 

왠지 하맹인 최면에 걸리지 않았다. 잡고 있던 장난감을 책상에 휙 집어 던지고 하맹이에게 등진 채로 침대에 벌러덩 누워버렸다.

 

대단한 고양이

새벽에 잠에서 깨 몸을 뒤척였다. 발밑에서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난다. 비닐 소리를 좋아하는 하맹이를 위해 침대 위에 비닐을 깔아놓았었다.

등에서 땀이 난다. 전기장판을 뜨끈하게 틀어놓으면 하맹이가 내 옆으로 와줄 것 같았다. 아무래도 하맹이와 친해지긴 힘들것 같다고 생각하며 체념한 채 화장실에 가려고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 

옆에 놓아둔 베개에 하맹이가 자고 있다. 가슴이 따뜻해지며 절로 웃음이 나왔다. 그간 서운했던 마음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헤벌쭉 웃음이 나왔다.

 앞으로도 난 하맹이에게 사랑을 갈구할 거라는 확신이 든다. 나를 언제나 구질구질하게 만드는, 하맹이는 참으로 대단한 고양이다 .








CREDIT
글 사진 양세호
에디터 조문주


<바리스타 하맹이-구질구질한 사랑>
해당 글은 MAGAZINE C 2020년 1월호에 수록된 것으로, 저작권은 (주)펫앤스토리에 귀속됩니다.
불법 복제 및 사용을 금합니다.

Tag #펫찌
저작권자 ⓒ 펫찌(Petzzi)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댓글0

추천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