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출신 개냥이 마루
마루는 영국에서 태어났다. 고향인 런던에서 4개월, 서울에서 2개월을 지낸 마루는 현재 말레이시아의 쿠알라룸푸르에서 두 달째 나와 함께 살고 있다.
집사가 가는 곳마다 함께 따라다니다 보니, 이제 고작 8개월밖에 되지 않은 마루는 벌써 3개 나라에 젤리 발도장을 찍은 ‘여행냥’이 되고 말았다. 고양이는 영역 동물이라 새로운 곳에 가면 밥도 잘 안 먹고 숨어서 안 나오는 경우가 많다고 들었는데, 마루는 이상하게 우리 집에 처음 왔을 때부터 금세 배를 홀라당 까고 드러눕더니 골골송을 불렀다.
지금도 마루는 새로운 사람이 오면 경계하기는커녕 신나서 놀자고 달려가는 개냥이다. 그래서인지 이사를 꽤 많이 했음에도 새로운 집에 도착하면 무서워하기는커녕 여기저기 뛰어다니며 탐색전을 펼친다.
마루는 한국에 갈 수 있을까?
마루를 영국에서 한국으로 데려가는 일은 생각보다 복잡했다. 마루를 비행기 화물칸에 혼자 두고 싶지 않았던 나는 기내 동반 서비스를 신청했지만, 비행기 한 대당 데리고 탈 수 있는 동물 수에 제한이 있다고 했다.
여차여차 운 좋게 예약을 하긴 했는데, 하필 비행 당일 아침에 마루가 갑자기 설사를 하기 시작했다. 조마조마한 마음에 당장 표를 취소하고 부랴부랴 동물 병원부터 달려갔다. 검사 결과 다행히도 별 문제는 없었지만, 다시 처음부터 표를 사고 마루 자리를 예약해야 했다.
너무 막막했지만 ‘마루를 책임지기로 한 이상, 이런 변수들을 내가 감당해야 하는 일이겠지.’라고 자신에게 말하며 마음을 다잡았다.
대신 준비를 이전보다 더 철저히 했다. 비행기 안에서 또 설사를 할까 봐 기내용 가방에 마루 화장실이랑 모래를 바리바리 싸서 갔다.
'혹시 실수했나?’ 싶어 계속 배변 패드를 체크하느라, 또 몇 번씩이고 기내 화장실에 가서 마루 배변을 확인하느라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가장 걱정했던 건 큰 비행기 소음과 비좁은 공간 때문에 스트레스에 시달린 마루가 계속 울지는 않을까 하는 점이었다. 하지만 집사의 마음을 알아준 것인지, 마루는 16시간의 긴 비행시간 동안 단 한 번도 ‘야옹’ 소리도 않고 얌전히 있었다.
잠도 제대로 못 자고 정말 힘들었던 비행이지만, 마루야말로 만만치 않게 힘들었을 터다. 씩씩하게 버텨준 마루가 기특하다.
이번엔 말레이시아로!
두 달 뒤, 마루와 난 다시 비행기에 올랐다. 이번엔 말레이시아다! 이전보다 비행시간도 훨씬 짧아진 데다가 마침 옆자리에 고양이를 좋아하시는 앉으셔서 한결 수월했다. 그분은 마루에게 “이야, 너 정말 출세한 고양이구나.”라며 장난스레 말을 건넸다.
말레이시아에 도착한 마루는 일주일 동안 계류장(강아지나 고양이가 해당 국가에 입국하기 전 잠시 머무르는 곳. 질병이나 특이사항이 없는지 확인한다)에서 지내야 했는데, 이른 새벽 말레이시아에 도착하자마자 마루는 곧바로 그곳으로 보내졌다.
물론 면회가 가능하기는 했지만, 보호자가 없을 땐 마루 혼자 오랜 시간 케이지 안에 갇혀있어야 했다. 마루는 외로움을 잘 타서 내가 10분만 밖에 나갔다 와도 야옹 하고 마중 나오는 고양인데….
일주일이나 혼자 둘 생각을 하니 너무 미안했다. 나는 날마다 마루를 보러 계류장에 갔다. 도착해 케이지 문을 열어주면 마루는 온몸을 쫙 펴 가며 스트레칭을 한 다음, 하루 동안 아껴둔 애교를 다 피우러 다가왔다.
어느 새 너무나도 길었던 일주일이 지나갔다. 마루를 데리고 돌아가는 길은 처음 마루를 만났을 때만큼 들뜨고 설렜다. 다행히도 마루는 언제 그랬냐는 듯 새 집에 들어가자마자 ‘푹’ 누워서 골골송을 불러댔다. 그동안 밀린 폭풍 애교는 덤이었다.
곧 우린 다시 영국으로 돌아가야 한다.
또 그다음엔 어디로 가게 될지 아직 아무도 모르지만, 마루가 있어 정말 든든하다.
앞으로도 쭉 나는 혼자가 아닐 것이다. 어디를 가든 마루가 함께할 테니까.
CREDIT
글 사진 한예림
에디터 이혜수
<HI MARU-마루의 젤리 발도장>
해당 글은 MAGAZINE C 2020년 1월호에 수록된 것으로, 저작권은 (주)펫앤스토리에 귀속됩니다.
불법 복제 및 사용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