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니와 데비가 좋아하는
라탄 하우스 위로
햇빛이 마구 흩뿌려지던
어느 봄의 문턱.
서로 얼굴을 부비며 잠을 청하는
아이들을 바라보다 문득
내가 좋아하는 노란 수선화를 떠올렸다.
얼굴을 맞대고 포개어 누운
조니와 데비의 모습이
무척이나 사랑스러워
보이기 때문일까.
두 마리의 꽃
어릴 적, 꽃을 좋아하시는 엄마께서 수선화 씨앗을 사주셨던 적이 있다. 식물을 다루어 본 적이 없었던 나는 이것저것 여쭤보며 열심히도 그 작은 식물을 키웠었다. 물 주는 주기, 건강하게 식물이 자라려면 어떤 흙이 필요한지, 수선화와 잘 어울리는 예쁜 화분은 어떤 것인지, 작은 존재를 향한 따뜻한 마음까지도.
시간이 흘러 황홀하게 아름다운 노란색 수선화가 피어났을 때의 그 기쁨은 정말이지 말로 다 하기 힘들 정도였다. 돌이켜보건대, 조니와 데비가 내게 주는 기쁨 또한 온갖 정성 끝에 피워낸 수선화를 마주했을 때의 그것과 다르지 않는 듯하다.
어느 날 내게 찾아온 두 마리의 작은 수선화 씨앗(조니와 데비)은 전에는 없었던 은은한 감동, 또는 진한 향내를 풍기는 고혹적인 수선화와 같은 형형색색 다채로운 날들을 내게 선물해주었다. 그래서 나는 두 씨앗만을 위한 정원사가 되어 흙에서 파란 싹이 나고, 잎사귀가 나뉘어 꽃대가 나오고, 마침내 지극한 행복을 주는 아름다운 꽃이 피기까지의 그 모든 여정에 기꺼이 함께하고 싶었다.
그래서 나는 아이들이 무럭무럭 행복하게 커가기 위해서 꼭 필요한 것은 무엇일지 매 순간 고민하고 또 그득히 구비해놓곤 했다. 알맞은 양의 물과 양분, 기분 좋은 바람과 따스한 햇빛 같은 것들. 그리고 가장 중요한 조니와 데비를 향한 예쁘고 다정한 말이나 따스한 마음까지 말이다.
모든 순간의 향기
그때 나는 조니와 데비가 있어 더욱 특별한, 함께 맞는 첫 봄을 설레는 마음으로 기다리고 있었다. 벚나무에 분홍빛 작은 몽우리가 움틀 무렵 조니와 데비는 어느새 어린 고양이 티를 벗고 제법 자라 있었다.
내 무릎 위로 아이들이 옹기종기 앞다투어 누우면, 그 귀여움이 묵직하게 느껴져 한동안 나를 움직이지 못하게 했었다. 그렇게 한참을 소파에 앉아있다 창밖을 볼 때면 나를 둘러싼 집 안의 공기는 지극히 평온해 거의 향기로울 정도였다.
함께 낮잠을 자다가도 창문을 건너온 따뜻한 봄 햇살의 조각들에 눈가가 간지러워 뒤척이다 일어나는 소소한 일상. ‘엄마가 나에게 뭐라고 하는 걸까?’, '너희들은 나에게 무엇을 말하고 싶은 걸까?’ 하고 고민하며 만들어가는 우리들만의 대화법. 또 맛있는걸 먹을 때면 행복해하는 아이들의 미묘한 몸짓과 눈짓. 내가 어디로 가든, 어디에서 부르든 바늘 가는 곳에 실이 가듯 후닥닥 쫓아오는 귀여운 모습들.
이렇듯 조니와 데비가 나에게 온 후로 나의 모든 순간엔 달콤한 봄 내음이 가득 배어있다.
조금만 더디게
그러나 진짜 수선화 꽃을 키울 때와 이 작은 수선화 두 마리를 키울 때의 다른 점은 분명히 존재한다. 씨앗이 어서 자라 빨리 수선화를 볼 수 있음 좋겠다는 바람은 조니 데비에겐 반대로 적용되었다. 조금 더디게, 아니, 조금 많이 더디게 자라 주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강하게 든다.
고양이의 시간은 사람의 시간보다 5배 빠르게 흐른다는 것, 그만큼 체감하는 시간도 우리는 서로 다를 거라는 것. 그 사실은 나를 너무 서글프게 만들었다. 이상하리만치 행복하지만 어딘가 시큰한 마음이 들게 하는 이런 생각은 마치 달콤하지만 쌉싸레하고 무거운 카카오 향을 떠오르게 한 다. 내 옆에 평생 존재할 것만 같은 이 작은 씨앗들은 왜
이렇게 빨리 커가는 걸까.
나를 순수함과 성숙함의 경계에 오래도록 머물게 하는 이 아이들은, 마치 나에게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란 어떤 것인지를 알려주려 내 옆에 온 것 같다.
어느 새 겨울의 끝자락. 겹겹이 쌓여있던 차가운 공기는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더 옅어져 간다. 창문 너머로 새어 들어온 따스한 햇살이 눈가를 간지럽히는 상냥한 계절이 돌아오는 지금 이 순간에도, 조니와 데비가 만들어내는 달콤한 향기는 우리의 도담도담 하우스를 가득 채워 들꽃이 만개할 아름다운 봄의 정점을 함께 기다리고 있다.
글.사진 김보미
에디터 이혜수
<도담도담 하우스-두 마리의 수선화>
해당 글은 MAGAZINE C 2019년 3월호에 수록된 것으로, 저작권은 (주)펫앤스토리에 귀속됩니다.
불법 복제 및 사용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