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븐에 고구마를 넣어두고
밥그릇에 사료를 채운다.
식탁과 거실을 정리하고
고양이들을 가만가만 쓰다듬는다.
그리고선 무릎과 옆구리에
고양이 한 마리씩을 끼고 앉아
창 밖 너머 풍경 구경을 한다.
골골 소리를 따라
올록볼록 움직이는
배를 만지작거리며,
고양이의 시선으로
지나가는 사람들을 관찰하며
잠시 사색에 잠겨본다. ‘
오늘 하루도 잘 보내고 있구나.
아마도 행복하겠지. 오늘도 우리는.’
나의 시선으로
고양이와 함께 산 지 어느덧 9년이 다 되어간다. 예전의 나는 고양이를 행복하게 해주기 위해 지금과는 다른 방향으로 노력했었다. 고양이 용품 박람회를 다니며 유행하는 간식을 사고, 사료보다 생식이 좋다는 소리를 어디선가 듣곤 억지로 생식을 시도하기도 했다. 또 고양이용 패션 소품들과 유기농 음식, 유기농 면 소재로 만들어진 장난감 인형 등등 온갖 물건을 구비해 놓기도 했다.
SNS를 하다 보면 멋진 캣타워와 장난감, 또는 비싼 사료와 간식을 배경으로 찍은 고양이들 사진을 쉽게 볼 수 있다. 나는 우리 고양이에게 저렇게 해주지 못하는데, 내 고양이는 일반 사료를 먹이는데 하는 등의 속상한 감정은 집사라면 모두가 한 번쯤 느껴봤을 것이다.
나 역시 고양이를 반려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는 고양이에게 정말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고양이가 원하는 것은 무엇인지 잘 알 수 없었다. 그래서 진실한 애정과 관심을 쏟기보다는 그야말로 로봇처럼 물질적인 지원을 풍족하게 해주는 데 집중했었다.
보리야 미안해
그런 내게 경각심을 일깨워 준 것은 바로 셋째 고양이 ‘보리’다.
당시 나는 SNS에서 유명세를 타던, 비싸고 좋은 신상 사료로 아이들 밥을 바꿔준 일이 있었다. 그런데 사료가 바뀌고서부터 보리가 밥을 먹기를 거부했다. 언젠가 고양이 서적에서 ‘식단 투정을 하는 고양이에게 끌려 다니면 안 된다’는 구절을 읽은 기억이 있어, 시간이 지나면 먹어주겠지 싶어 한동안 그 사료를 고집했었다.
보리도 배가 고픈지 가끔 밥그릇 근처에서 입질도 하고 기웃거리는 것을 보고 이제 되었구나 생각했는데 어느 날 보리를 안아보니 몸무게가 심각하게 줄어 있는 게 느껴졌다. 워낙 모량이 풍성해 몸무게가 확 줄어도 외관상으론 티가 나지 않았던 것이다.
보리의 시선으로
사태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제대로 살펴보기 시작했을 때에는 이미 보리가 거식증에 걸려있던 상태였다. 병원에 다녀오고, 물 한 모금 입에 대려고 하지 않는 보리에게 고 열량 캔을 물에 곱게 개어 주사기로 하루 여섯 번씩 먹였다. 먹성이 좋아 늘 통통했던 보리가 앙상하게 변해 있었는데도 알아차리지 못했던 그때의 나는 정말이지 빵점 짜리 집사라고 해도 할 말이 없다.
그렇게 한두 달의 강제 급식 기간을 마치고 나서야 보리는 몸무게와 입맛, 건강을 되찾을 수 있었다. 그리고 나는 곧바로 그 브랜드의 사료를 모두 처분했다. 아무리 좋고 비싸다고 한들 내 고양이에게 맞지 않는 사료라면 의미 가 없다는 그 단순한 사실을 나는 호된 값을 치르고서야 배울 수 있었다.
내 모든 행동은 ‘고양이들이 원하는 것’이 아닌
‘내가 고양이들에게 주고 싶은 것’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었다.
좋은 반려인의 모습
물론 반려동물에게 어떤 물건이 좋을지 고민하고 구입해보는 것 또한 사랑의 한 방식이라고 생각한다. 하 지만 분명 그것이 좋은 반려인의 모습 전부는 아니다. 나의 고양이들은 멋지고 예쁜 장난감보다 빵 끈과 택배 박스를, 유행하는 간식보다는 내가 집에 일찍 돌아와 엉덩이를 토닥여 주는 것을 더 좋아한다는 사실을 나는 조금은 늦게 배웠다.
이 글을 읽는 독자님도 그리고 나도 앞으로는 조금 더 고양이의 시선에서 고민하고 노력할 수 있기를, 그리고 우리의 고양이들과 함께 하루하루 더 행복하고 건강하게 삶을 살아갈 수 있기 를 진심을 다해 바라본다.
글.사진 장경아
에디터 이혜수
<Cat's Life-고양이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다>
해당 글은 MAGAZINE C 2019년 3월호에 수록된 것으로, 저작권은 (주)펫앤스토리에 귀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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