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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gazine C. 너희의 봄날이 지금이기를

  • 승인 2020-10-08 17:4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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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아직은 채 가시지 않은 
겨울의 차가움이 남아있는 달. 

하지만 이제 정말 
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게 느껴진다. 

곧 꽃도 잔뜩 필 테고
그 아래엔 여유롭게 
기지개를 켜는 고양이가 있을테니 
그 생각만으로도 곧장 나른해져 
주변이 조금은 따뜻해지는 것 같다.

 

 

 

꽃과 고양이, 이상과 현실

  하지만 사실 나는 집사로서 이 아름다운 상상은 그저 상상일 뿐이라는 사실을 잘 안다. 많은 예술가에게 기쁨과 영감을 주는 향기롭고 아름다운 꽃들은 실제로는 우리 고양이들에게 매우 위험하고 해로운 식물일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특히 향이 강한 백합이나 튤립 같은 경우는 더욱 그렇다. 

  소중한 반려동물과의 유대를 위해 안전한 환경을 조성해 주는 것이야말로 어쩌면 집사의 가장 중요한 의무 중 하나일 것이다. 내 부주의로 인해 보리 굴비가 아프게 된다면? 상상조차 하기 싫다.
 

  그래서 우리 집 한쪽에는 꽃이 아닌 선인장과 다육식물들이 가득하다. 한 팔 용신목 선인장과 나쁜 기운을 물리쳐준다는 파인애플을 닮은 괴마옥, 무시무시한 가시덤불이 매력적인 잔설령, 그리고 대형 아가베 아테누아타까지. 함께 하는 고양이 보리와 굴비에게 유해하지 않을 식물을 선별해 종류별로 골고루 데려왔다. 

  종종 느끼지만 초록초록한 식물들은 역시 집안에 생기를 불어넣어 준다. 인테리어의 완성을 위해 예쁘고 화려한 꽃을 끝내 포기할 수 없는 집사라면, 차선책으로 조화를 추천한다. 요즘 조화는 자세히 들여다보지 않으면 생화로 착각할 정도로 진짜와 꼭 닮아 있는 데다가 영원히 시들지 않는 아름다움까지 겸비했으니 고양이와 집사의 마음을 모두 어루만져 주지 않을까.

“봄이 오는지 정말 알고 있는 거야,
이 귀여운 고양이들아?”

묻고 더블로 가!

  겨울을 대비해 온몸의 털을 바짝 끌어올려 따뜻한 겨울을 보내보겠다던 보리와 굴비. 하지만 요즘 이 녀석들은 다가오는 봄을 맞이해 묵은 털을 다 털어내기라도 하겠다는 듯 온 집안에 솜먼지 같은 털들을 뿜뿜 굴리고 다닌다. 

 보리와 굴비가 앉은 자리, 지나간 자리, ‘우다다’ 한 자리마다 노르스름한 털과 회색 털이 뭉쳐져 거의 공처럼 데굴데굴 굴러다닌다. 한 술 더 떠 지금은 돌아다니는 털과 빗질을 해 줄 때마다 걸려드는 털을 차곡차곡 소중히 모아 야구공보다 더 큰 털공을 한 땀 한 땀 빚는 장인의 단계에 이르렀다. 보고 있음 뿌듯하기까지 하다. 

  던져주면 자기 털로 만든 공인지 아는지 모르는지 정신없이 공놀이를 하다 숨을 헐떡인다. 새로운 목표는 볼링공 만한 크기가 될 때까지 털공을 빚는 것이다. ‘털공 빚기’ 의 일인자가 될 때까지!

  어느덧 봄은 성큼 우리 앞으로 다가왔지만 한 해 한 해 지날수록 고양이의 시간은 사람과는 다르게 흐른다는 사실이 떠올라 울적해진다. 어디서 이런 글을 읽은 적이 있다. 사람의 1년은 고양이의 4년이고, 출근한 집사를 기다리는 고양이의 시간은 꼬박 이틀이라고. 하지만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의 양을 늘릴 순 없으니 보리 굴비와 함께하는 모든 순간을 소중히 여기는 것밖에는 방법이 없을 것 같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퇴근 후 나는 가장 먼저 화장실을 비워주고 밥그릇을 씻고 새로운 사료를 부어주며 “오늘 하루 어땠어?” 하고 물어본 뒤, 마지막으로 모두의 엉덩이를 들썩일만한 신상 장난감도 열심히 흔들 것이다. 

  사람들은 과거의 좋은 시절을 ‘봄날’이라 부르며 회상하곤 한다. 보리, 굴비, 너희들의 봄날이 우리 가족과 함께 하는 지금 이 시간이기를, 마음속으로 바라본다.

글.사진 차아람
에디터  이혜수


<나만 없어 고양이 탈출기-너희의 봄날이 지금이기를>
해당 글은 MAGAZINE C 2019년 3월호에 수록된 것으로, 저작권은 (주)펫앤스토리에 귀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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