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가족이고
친구이자
반려((伴侶)이며,
인생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존재.
바로 고양이.
누군가 나에게 인생의 터닝 포인트가 무엇이었느냐 묻는다면 나는 망설임 없이 ‘고양이’라고 대답할 것이다.
어설펐던 초보 집사가 어느덧 다섯 마리 고양이와 함께 하기까지, 바쁜 일상에 치여 나도 모르게 잊고 살았던 소중한 기억들을 이번 기회를 통해 하나씩 꺼내 보려 한다.
우리 집 첫째, 천사 소녀 네티
5년 전, 나는 여느 때와 같이 고양이 커뮤니티에 올라오는 사연을 읽으며 울고 웃는 일상을 보내고 있었다. 그러다 우연히 엄마 잃은 아기 길고양이의 사연이 눈에 들어왔다. 정말 ‘묘연’이라는 게 존재하기는 하는 걸까? 그 순간 마음이 동해 임시보호 중이던 분께 단박에 전화를 걸었다. 그때 그 아기 고양이가 바로 지금 우리 집 첫째, 네티다.
엄마 잃은 새끼 길고양이는 목숨을 잃을 확률이 굉장히 높다고 한다. 혼자 힘으론 냉혹한 바깥 생활을 버텨내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네티는 정말 천운이 따랐다고 할 수 있었다. 엄마를 잃고 난 후, 근처 편의점에서 보살핌을 받다가 좋은 임시보호 가정을 만난 것이다. 네티를 만나기 전까지만 해도 반려동물을 들인 적이 없던 나였기에 어떻게 네티를 끝까지 돌보고 사랑해줄 것인지 열심히 그분을 설득했던 기억이 난다.
나는 천사 같은 아기 고양이에게 어릴 적 좋아하던 만화 영화 주인공 이름을 따 ‘네티’라는 예쁜 이름을 지어주었다. 그리고 네티는 가족과 떨어져 혼자 살던 나의 일상을 소소한 기쁨과 웃음으로 가득 채워주었다.
올해로 다섯 살을 맞은 네티는 이젠 자기가 완전히 사람이라고 믿고 있는 것 같다. 베개를 함께 베고 자는 것은 기본, 정말 너무 친구 같아서 날마다 투닥거리기 바쁘다.
지금 생각해보면 네티를 가족으로 맞은 이후부터 내 인생이 ‘고양이’ 중심으로 돌아가기 시작했던 것 같다. 길고양이들을 보면 왠지 네티의 모습과 겹쳐 보이기 시작했고, 그러다 마음이 아파 이것저것 챙겨주기 시작하다 보니 길고양이 문제에 대해 본격적으로 관심을 갖게 됐다. 이렇듯 네티는 내게 계속해서 새로운 묘연, 인연을 만들어 준 보물 같은 존재다.
서열 1위, 사랑둥이 둘째 티거
올해로 네 살이 된 우리 집 서열 1위이자 둘째 티거. 호랑이처럼 힘 세고 건강하게 자라길 바라는 마음을 담아 붙여 준 이름이다.
입양 당시에 겪었던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하나 있다. 당시 길고양이이던 티거를 임시보호하시던 분은 티거가 분명 2개월쯤 된 ‘여아’라고 하셨다. 우리 집에 오던 날도 예쁜 원피스를 입고 있어서 천사 소녀 네티에 이어 카드캡터 ‘체리’라고 이름을 지어줬는데 티거 배 아래쪽에 뭔가 올록볼록한 혹(?) 같은 것이 눈에 들어왔다.
혹시나 싶어 동물병원으로 달려갔더니 수의사 선생님께서는 그게 바로 ‘땅콩’이라고 하시는 게 아닌가! 그때서야 나는 티거가 남자아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당시에는 어찌나 놀라고 당황스러웠는지 아직도 종종 생각하면 웃음이 난다.
그러던 티거에게도 지난해 시련이 닥쳐왔다. 어느 날, 티거의 왼쪽 귀에 사람 여드름만 한 작은 덩어리가 만져 병원을 찾았는데 ‘종양’이라는 소견을 들었다. 조직 검사 결과 유전적 영향으로 생긴 악성 종양이라는 사실을 알았을 땐 얼마나 눈물을 흘렸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는다. 정말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이 착한 아이에게 왜 이런 일이 생긴 걸까? 티거는 결국 고양이 전문 병원에서 몇 시간에 걸쳐 대수술을 받았다. 티거는 정말 고맙게도 잘 버텨주었고, 왼쪽 귀가 살짝 잘린 모습을 하고 내게 돌아왔다. 종양이 또 언제 재발할지 모르기 때문에 주기적으로 검사를 받고 있지만, 다행히 지금까지는 매우 건강하다.
내가 누워 있으면 종종 배 위로 풀썩 올라타, 7kg이 넘는 큰 덩치로 집사를 조금 버겁게(?) 하지만 그때마다 세상 행복한 골골송을 불러주는 사랑둥이 티거. 우리 티거가 이제는 절대 아프지 말고, 계속 우리 집 서열 1위로 남아주길 바란다.
내 아픈 손가락, 셋째 쥬쥬
주변 친구들이 가끔 다섯 마리 고양이 중에서 누가 제일 예쁘냐고 장난스럽게 물을 때, 나는 당연히 다섯 마리 모두 예쁘고 사랑스럽다고 대답한다. 깨물어서 안 아픈 손가락 없다고. 하지만 내심 조금 더 아픈 손가락은 있는 것 같다.
바로 셋째, 쥬쥬다. 다섯 마리 고양이 모두 아픈 과거를 가진 채 내게 왔지만 쥬쥬와의 첫 만남은 유난히 내 기억 속에 크게 자리하고 있다.
어느 날, 다급하게 새끼 고양이를 돌봐 달라는 글 하나가 눈에 띄었다. 당시 셋째를 입양할 생각은 전혀 없었지만 너무나 조그맣고 그렁그렁 울 것만 같은 눈을 가진 새끼 고양이가 자꾸 눈에 밟혔다. 마침 또 정말 우연히 임시 보호처가 집 근처였다.
당시 대학생이셨던 임보분은 배달 오토바이들이 마구 다니는 위험한 장소에서 아기 고양이 하나가 바들바들 떨며 오도 가도 못하고 울고 있었다고 한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분께서 쥬쥬를 발견하고 데려오시지 않았다면, 정말 하루 이틀 내로 하늘나라에 갔을지도 모른다.
쥬쥬는 정말 상태가 좋지 않았다. 태어난 지 이제 한 달 남짓 되었을까? 얼마나 길에서 혼자 방치되어 있었던 건지, 항문이 막혀 있어 변도 제대로 못 보는 상태라 따뜻한 물을 적신 천으로 조심조심 항문 근처를 닦고 배변 유도를 해 주었던 기억이 생생하다.
설사가 멎지 않는 쥬쥬 때문에 밤늦게 병원으로 달려간 일도 있었다. 당시 범백일지도 모른다는 얘기를 듣고 수의사 선생님 앞에서 펑펑 울었는데 다행히 아니어서 얼마나 안심했던지. 고맙게도 그 이후부터 쥬쥬는 점차 활력을 되찾더니 세 살이 된 지금은 살짝 통통한(?) 귀여운 뚱냥이가 되었다.
아주 어릴 때부터 분유도 타서 먹이고 물도 한 방울씩 직접 먹여가며 키워서인지, 어쩐지 쥬쥬는 나에게 많이 의존하는 편이다. 어쩌다 내가 잠깐 화장실이라도 가면 날 찾으며 애타게 애옹애옹 우는데, 지금까지도 어쩐지 아기 같은 부분이 있어 늘 조금 더 챙겨주게 되는 것 같다. 우리 집 찡찡이, 쥬쥬가 언제쯤 이 언니가 아무 데도 안 가고 곁에 꼭 붙어 있을 거라는 사실을 알아줄까?(웃음)
그렇게 네티와 티거, 쥬쥬, 그리고 나 집사는 알콩달콩 투닥투닥 평온한 날을 보내고 있었다. 그리고 내 삶에 더 이상 고양이는 없으리라고 생각했다. 운명처럼 우리 집 넷째와 다섯째, ‘꼬맹즈’를 만나기 전까지는….
-MAGAZINE C 5월 호, 두 번째 이야기로 이어집니다.
글.사진 김수하
에디터 이혜수
<FIVE CATS-5묘와 함께한 5년을 돌아보며, 첫 번째 이야기>
해당 글은 MAGAZINE C 2019년 3월호에 수록된 것으로, 저작권은 (주)펫앤스토리에 귀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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