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섭게 추운 날 거의 없이
무난하게 지나간 겨울.
어느새 봄이 멀지 않았다.
개나리를 시작으로,
목련과 벚꽃이 차례대로 피어나
우리를 밖으로 나오라 유혹하는
계절이 코앞이라는 것!
방랑 욕구를 달래는 고양이
이렇게 ‘봄’이라는 단 한 글자가 주는 설렘과 기대감에 아직은 추운 3월이지만 마음만큼은 이미 샤르륵 녹아버린 듯하다. 꽃샘추위 따위에는 더 이상 떨지 않는다. 이렇게 따뜻해지면 나를 견딜 수 없게 하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내 불치병인 역마살이요, 다음은 ‘무릎냥이 시즌 종료’라는 점이다.
국내외는 물론 틈만 나면 이 동네 저 동네 온 동네를 쏘다녀야 직성이 풀리는 방랑벽이 있는 내게 사실 계절은 큰 의미가 없지만 그래도 매년 봄이면 증상이 가장 극심해진다. 예전처럼 스튜디오도 고양이도 없던 시절에야 방랑 욕구를 굳이 억누를 이유가 없었지만 이제는 다르지 않은가.
누가 오든 안 오든 약속 시간에 맞춰 늘 열려 있어야만 하는 스튜디오는 물론이거니와 이제 내게는 너무나 소중한 폴리와 하니가 있다. 올해로 5살, 6살이 된 성묘지만 욘석들이 영 눈에 밟혀서 장시간 외출을 하면 안절부절 못하는 마음을 감출 길이 없다. 하여 요 몇 년간 여행은 언감생심 꿈도 꾸지 못하고 있다.
전에 아기가 있는 친구들의 이러한 모습을 볼 때면 ‘아기는 아빠가 어련히 잘 봐줄까, 오랜만에 고작 몇 시간 만나는 건데 저렇게까지 초조해 할 일인가?’ 싶어 내심 서운하기도 했는데 이제는 내가 그렇다. 아니, 더 할지도?! 이래서 사람이 남 말을 함부로 하면 안 되는 거다.
오이스터 세계 여행 시리즈
수키(Suki)라는 뱅갈 고양이와 전 세계를 여행하며 찍은 사진을 올리는 유명 해외 인플루언서의 소식을 받아보고 있는데, 사진도 정말 멋지고 장소도 하나같이 군침이 돈다.
시쳇말로 ‘냥바냥’이겠으나 ‘고양이와 함께 여행을 떠나는 것이 가능할 수 있구나’ 하고 생각했다. 뱅갈 고양이가 산책과 물놀이가 가능한 유일한 종(?)이라는 설 역시 익히 들어 알고 있지만, (구) 집사가 이전엔 단 한 번도 산책과 목욕 두 가지만은 시도한 적이 없기에 나 역시 지금에 와서 아이들에게 억지로 리드 줄이나 샤워기를 들이밀 생각은 없다.
그저 집 근처 공원 산책을 나온 인기쟁이 강아지를 볼 때마다 ‘흥! 우리 애기들이 나오면 너희들은 아무것도 아냐!라며 화르륵 타오르는 질투와 여기저기에 내 새끼를 자랑하고픈 욕구가 솟구치기는 하지만 말이다.지금은 잠깐 멈췄지만.
여하튼 그래서 오이스터(Oister) 고양이 세계 여행 시리즈가 만들어졌다는 말씀!
어디론가 훌쩍 떠나고 싶은 마음은 굴뚝이지만 주인님(들) 모시느라 역마살을 억누르고 있는 또 다른 집사님들이 오이스터의 여행하는 고양이를 통해 방랑 욕구를 조금이나마 해소하실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음… 솔직히 그다지 큰 위로가 되지는 않는다는 걸 나도 잘 안다. 하하하.)
그런, 계절
봄이 한창일 때면 스튜디오 앞에는 벚꽃이 한가득 핀다. 오래 된 아파트 단지 내 상가인데, 나무도 아파트만큼 오래되어 줄기가 굵고 꽃송이도 탐스러운 것이 상당히 볼만하여 작년엔 따로 벚꽃 구경을 가지 않았다. 스튜디오에서 보이는 벚꽃을 배경으로 폴리와 하니 사진도 꽤 찍을 수 있었기에 아주 만족스러웠다.
하지만 따스한 계절이 오면 더 이상 폴리와 하니는 내품에 있어 주지 않는다. 이게 아주 신기했는데, 왜냐하면 여름에 처음 만난 폴리와 하니는 개냥이답게 무릎에 폴싹 올라와 애교를 부려주었기 때문이다. 그러다 뉴페이스 꼬시기(?)에 성공했다 싶었는지 이후 여름 동안엔 더 이상 무릎냥이가 되어주지 않다가 그해 늦가을 즈음부터 겨우내 내 무릎은 녀석들의 방석이 되었다
특히 하니는 비좁은 무릎 위에서도 어찌나 앙증맞게 자는지 그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다리 저린 줄도 모른다. 보고 있어도 보고 싶고 눈에 넣어도 안 아 녀석들이라 하루 종일도 안고 있을 수 있는데 추워지기 전까진 절대 허락해주지 않으시니 원.
한여름에는 괜히 에어컨도 세게 틀어보곤 하지만 나만 추울 뿐 정작 녀석들은 뭐가 좋은지 골골대며 창가에서 일광욕이나 할 뿐이라 그 모습이 영 서운하다.
그런 계절이 오는 중이다. 건강하고 활기 넘치는 계절! 하지만 역마살이 낀 집사는 하루에도 수십 번 수백 번 훌쩍 떠나고 싶었다 싫었다 하는 변덕에 죽을 맛인 두려운 계절.
우리 폴리와 하니는 수키(Suki)처럼 될 수는 없겠지만, 그림 그리는 오이스터 집사는 다시 펜대를 잡고 흰 백지를 항공권 삼아 폴리, 하니를 멀리멀리 여행 보낼 수 있다. 방랑자의 마음을 지닌 집사까
지도 함께.
글.사진 장보영
에디터 이혜수
<오이스터 스튜디오-방랑자의 마음으로>
해당 글은 MAGAZINE C 2019년 3월호에 수록된 것으로, 저작권은 (주)펫앤스토리에 귀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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