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게를 운영하다 보니
좁은 실내를 벗어나지 못하는 날이 많기에
몸도 마음도 지칠 때가 많습니다.
그래서 기분 전환을 위해
생각한 것이 바로
‘1년에 한 번은 꼭
해외여행 다녀오기’
입니다.
지금까지 다양한 여행지를 다녀왔지만,
그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곳인
치앙마이 여행기를 남겨보려 합니다.
골목길에서 마주한 아이들
벌써 1년도 더 지난 18년 11월, 태국에서 매년 타이력 기준 열두 번째 달 보름에 열리는 행사인 ‘러이끄라통 축제’를 보기 위해 치앙마이로 향했습니다.
도착하기 전까진 고양이를 찍겠다는 생각은 전혀 없었습니다. 아마도 같은 해에 다녀온 후쿠오카 여행 중 고양이 사진을 찍겠다는 계획이 빗나갔기 때문일 겁니다. '일본에 가면 고양이가 많겠지? 많이 찍어와야겠다.’ 하고 생각했는데 막상 일본에 도착하니 한국보다도 고양이가 없어서 아쉬워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렇기에 치앙마이에서도 여행 사진을 주로 찍고 와야지 했는데 웬걸, 썽태우(버스, 택시와 비슷한 태국의 이동수단)를 타고 공항을 빠져나오니 치앙마이의 거리에는 고양이나 강아지들이 골목길 이곳 저곳을 자유로이 활보하고 있었습니다.
처음 그 아이들을 봤을 땐 주인이 있을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모두 목에 작은 목줄을 매고 있었기 때문이죠. 하지만 얼마 안 있어 제 짐작이 틀렸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치앙마이에서 거주 중인 스냅 촬영 작가님과 사진을 찍으며 물었습니다. '작가님, 치앙마이 주민들은 반려동물을 밖에 내놓고 기르나 봐요? 골목 골목마다 동물들이 넘쳐나네요.'
그러자 작가님은 '아, 대부분 유기견이나 유기묘에요.' 라는 대답과 함께 자세한 상황을 이야기해주었습니다.
치앙마이라는 도시는 최근에서야 한국인들 사이에서 ‘치앙마이에서 한 달 살기’라는 타이틀로 유명해지고 있지만, 이미 외국인들에겐 오래 전부터 장기간 머물기 좋은 도시로 유명하다고 합니다.
1~2년 정도 머무는 여행객들 중 일부는 현지에서 반려동물들을 들여 함께 생활하곤 하는데, 귀국 시 반려동물을 데려갈 비용이 꽤 많이 드는데다가 절차가 복잡하기에 그냥 길거리에 내버려두고 돌아가는 경우가 잦다는 이야기였습니다.
연((緣)
저는 그 사실에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제가 봐왔던 그 수많은 동물들이 대부분 버려진 아이들이라니요. 국적이나 인종이 달라도 사람은 모두 이기적인 동물이구나 싶었습니다.
타지에서 지내며 외로울 때 기댈 곳이 필요해 입양했던 가족 같은 아이를 단지 비용이 많이 든다, 절차가 복잡하다는 이유로 외딴곳에 홀로 버려두고 떠나다니 참 잔인한 행동이 아닌지요.
하지만 이러한 생각도 잠시, 유기 동물들이 길거리를 활보하는데 어떻게 마을 주민들은 아무렇지 않은 듯 생활할 수 있는지 궁금해졌습니다. 심지어 마을 사람들은 동물들에게 음식까지 잘 챙겨줘, 다들 건강상태도 꽤나 양호한 모습이었습니다.
궁금함을 뒤로한 채로 치앙마이에서 유명한 불교 사원인 왓 프라싱(Wat Phra Singh)으로 발길을 돌렸습니다.
왓 프라싱에 도착해 사진을 찍기 위해 구석구석 돌아다니던 찰나, 뜻밖의 광경을 마주할 수 있었습니다. 석상 앞에 공양된 음식들을 유기견이 먹는데도 그 아무도 제지하지 않고 지켜만 보는 것이었습니다.
그 모습을 신기하게 지켜보던 제가 눈에 띄었는지 일행 작가님께서 이유를 말씀해 주셨습니다.
'아마 불교에서 말하는 윤회 사상 때문에 그럴 거예요.'
그 말을 듣고 이해가 갔습니다. 죽음은 영원한 끝이 아니며, 사후 그 업에 따라 육도의 세상에서 생과 사를 거듭한다는 불교의 가르침.
태국 국민의 90% 이상은 불교를 믿고 있습니다. 저 작고 약한 생명과 내가 먼 존재가 아니라, 모두 하나의 끈으로 이어져 있다는 것을 믿는 이들로 인해 길 위의 동물들이 하루하루 삶을 이어나갈 수 있었겠지요.
필요에 의해 입양되고 필요가 없어져 파양당한 동물들이 현지 사람들에게 다시 보살핌을 받는다는 사실이 아이러니했지만 한편으론 다행이다 싶었습니다.
이기심을 버릴 수 있다면
과정과 결과가 어찌 되었던 치앙마이에서 만난 아이들도 우리나라의 유기견, 유기묘와 같이 버림받은 슬픔을 간직하고 있다는 모습이 서로 닮았습니다.
하지만 한 가지 다른 점이 있다면 그곳에 있던 아이들은 현지인들에게 사랑 받으며 상처를 치료해나가고 있었습니다. 우리나라의 수많은 유기동물은 길거리를 서성이다 누군가에게 맞아 죽거나 큰 해코지를 당하는 경우가 잦고, 유기동물 센터는 새로 들어온 아이들로 넘쳐나 어찌해야 할지 갈피를 못 잡는 게 현실입니다.
행정적, 경제적 측면에서 우리나라가 태국보다 선진국인 건 분명합니다. 그럼에도 대한민국 어딘가에서 길거리를 방황하는 아이들이 고통 받고 있는 건, 어쩌면 우리나라에는 치앙마이보다 이기적인 사람들이 좀 더 많기 때문은 아닐까 합니다.
내가 가진 것 중 아주 조금이라도 유기동물들에 나누어 줄 수 있는, 그런 따뜻한 마음을 지닌 사람들이 가득한 사회가 되면 좋겠다는 바람을 담아 이번 글을 마칩니다.
글.사진 안진환
에디터 이혜수
<내가 너희들을 기억하는 방법-치앙마이, 길 위의 생명들>
해당 글은 MAGAZINE C 2019년 3월호에 수록된 것으로, 저작권은 (주)펫앤스토리에 귀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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