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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gazine P. 당신에게는 봄이 닿지 않기를

  • 승인 2020-12-08 18:3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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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세차게 쏟아지던
어느 날 새벽 4시.

솜이는 전봇대 아래
노끈에 묶인 채 발견됐다.

이 작은 아이가 그 추운 날
비에 쫄딱 젖은 채
몇 시간이고 우두커니
서 있었을 것을 생각하면
지금도 억장이 무너진다.

대체 누가, 왜,
이 힘없고 어린 생명을
그토록 차가운 아스팔트 위에 버린 걸까.

 

   솜이는 내 친구

   올해 세 살인 솜이는 내반려견이자 가장 친한 친구다처음 솜이 본 건 한 유기동물 사이트를 통해서였다사실 이미 4마리의 유기묘를 그곳을 통해 데려와 반려하고 있었던 터라이제 더는 데려오지 않아야겠다고 몇 번이고 마음을 다잡았었다.

  하지만 버림받은 아이들이 자꾸만 눈에 밟혀 습관적으로 그 사이트를 들락날락했던 것이 계기였을까그날도 여느 때와 같이 유기동물 리스트를 보고 있었는데그중 유독 내 마음을 잡아끈 아이가 있었다그 순간 나는 뭐에 홀리기라도 한 듯 충동적으로 입양을 결정했다.

 

   솜이의 트라우마

  첫 만남솜이는 아무런 망설임 없이 나를 따라와 임시 보호자분이 섭섭해하실 정도였다우리 집에 도착했을 때도 마찬가지로 꼭 원래 자기가 살던 곳인 마냥 서슴없이 집안으로 들어갔다그래서 우리 가족은 솜이가 아마 버려진 줄 모르고 있거나혹은 크게 상처받지 않은 것 같다며 다행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오산이었다처음 솜이는 내가 목덜미에 손을 올리려 할 때나 쓰다듬으려 손을 올릴 때면 귀를 바짝 내리곤 경계를 늦추지 않았다그러면서도 예쁨은 받고 싶어 꼬리를 살랑이는데그 모습에 나는 더 마음이 찢어졌다또 솜이는 발을 잡으면 아주 큰 소리로 깨갱거리며 빼내려고 안간힘을 썼다누군가에게 발을 붙잡히는 것 자체가 솜이에겐 엄청난 공포인 듯했다.

 어느 날 솜이는 꿈속에서 달리기라도 하는 건지 발을 막 굴렸다그 모습이 너무 귀여워 동영상을 찍으려던 찰나솜이는 비명에 가까운 소리를 내며 흐느끼기 시작했다깜짝 놀란 나는 솜이를 부드럽게 쓰다듬으며 “괜찮아솜이야 괜찮아.”라고 속삭여주었다.

  깨어난 솜이는 많이 놀랐는지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맺힌 채였다그 후로도 한참 동안 솜이는 진정하지 못하고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솜이를 붙든 손 위로 심장이 쿵쿵 뛰는 게 느껴졌다.

  다음 날나는 강아지 꿈에 대한 기사를 찾아봤다그리고 강아지는 사람과는 다르게 실제 겪었던 일만을 바탕으로 꿈을 꾼다는 사실을 알았다나는 그날 몰래 엉엉 울었다내게 올 때 이제 고작 1살이었던 아이다그 아이가 그렇게 무서운 꿈을 꾸며 몸부림을 칠 정도로 극심한 상처를 받았다면그건 필히 솜이를 버린 그 사람 때문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항상 웃게 해 줄게

  솜이와 산책을 하다 보면 귀엽다예쁘다는 말을 자주 듣는다그중에서도 단연 내가 가장 좋아하는 말은 “어쩜 저렇게 잘 웃고 다닐까?”라는 말이다.

  솜이는 참 잘 웃는 아이다그 웃음이 얼마나 사람을 행복하게 하는지 웃는 것만 봐도 배가 부르다손길을 거두면 더 쓰다듬어 달라며 우리 손을 끌어당기는 모습아삭아삭 사과를 베어 먹는 우리를 보며 고개를 갸우뚱거리는 모습목욕을 마치고 온 집안을 캥거루처럼 껑충껑충 뛰어다니는 모습 등솜이로 인해 우리 집엔 전보다 훨씬 더 웃음이 가득해졌다솜이도 우리로 인해서 웃을 수 있도록 더 많은 것을 해주고 싶다.

 
   함께 맞는 첫 봄

  이제 봄이 온다솜이와 우리 가족이 함께 맞는 첫 봄이다솜이의 견생도우리 가족의 삶도 이제 함께 봄으로 접어들고 있다솜이는 여전히 사람들의 눈치를 많이 보고긴장할 때면 쫑긋한 사막 여우 같은 두 귀도 자주 축 처지곤 한다.

  그래도 지금은 손도 잘 주고 가족들이 쓰다듬어도 예전만큼의 경계심을 보이지는 않는다현관문 너머로 사람들이 지나가거나 문을 두드리면 마치 나를 지켜주기라도 하려는 듯 엉덩이를 딱 붙이곤 내 옆에서 떨어지지 않으려 하는데 그 모습이 무척이나 사랑스럽다.

  또 질투심은 어찌나 많은지내가 잠시  고양이들과 사냥 놀이를 해 주고 있으면 심기가 불편한 듯 몰래 구석에 가서 장난감을 모조리 박살을 내 버리는 통에 새로 산 장난감만 해도 벌써 수십 개다하지만 그런 모습조차 솜이의 일부이므로 모두 소중하다.

  솜이를 유기한 그 사람이 어떤 이유로 솜이를 버렸는지는 알지 못한다자주 짖어서였을 수도 있고하지 말라는 행동을 반복했기 때문일 수도 있다설령 그것보다 더 커다란 이유가 있었다 할지라도 그 어떤 것도 솜이를 그곳에 버린 충분한 이유는 될 수 없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 사람은 솜이가 그 어떤 강아지보다도 배려심이 깊고 예쁜 웃음을 지닌 아이라는 걸 알고 있을까아마 영영 알지 못할 테니 그 사람은 불행한 사람일 거라고황폐한 마음을 지닌 사람임이 분명하다고 여기기로 했다때때로 솜이가 사람들의 눈치를 보며 구석으로 숨으려 할 때면 얼굴도 모르는 그 사람이 미워지지만솜이의 아픈 기억도 상처도 우리 가족과 함께하는 시간 속에 점점 옅어져 갈 것임을 믿는다.

  솜이와 우리 가족은 서로를 통해 봄을 맞이했다.
  하지만 솜이를 버린 당신에게는 결코 봄이 닿지 않기를 바란다.


CREDIT
글. 사진 김서연
에디터 이혜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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