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이켜보면 건우와의 만남은
조금 특별했다.
세 번째 임시 보호로 만난 해리를
평생 가족의 품으로 떠나보내고
한 달이 지났을까?
우리 자매는 내년이 되어
부모님과 함께 살게 되면
임시 보호를 지속하지
못할 것이라 예상하고,
마지막 임시 보호를 하기로 결정했다.
순딩이 건우와의 첫 만남
특이사항: 문산에서 젖은 채로 발견됨, 심장사상충 양성, 귀 진드기 감염, 귀 안쪽 깊게 검정 왁스가 있음, 사람을 좋아함.
네이버 카페에서 임시 보호가 필요한 아이들을 쭉 둘러보다가 한 아이가 눈에 들어왔다. 이름은 ‘건우’. 이전 ‘시리, 스콘이, 해리’ 때와는 다르게 이번엔 건우를 콕 찝어서 ‘이 친구를 보호하고 싶어요’라고 스탭분께 말했다. 그러자 스탭분은 조금 걱정스러운 말투로 한 마디를 덧붙이셨다.
“아….세화, 세연씨가 지금까지는 애들 평생 가족을 정말 잘 찾아주셨는데, 아마 이번에는 입양 보내는 게 쉽지 않을 거예요. 우리나라 사람들은 품종이 있는 강아지나 모색이 흰 아이들을 훨씬 선호하는 경향이 있거든요.”
품종견도, 사람들이 좋아하는 흰색도 아니지만 건우는 지금까지 만났던 아이들 중 가장 순한 아이였다. 직전에 보호했던 푸들 해리처럼 사람에 대한 경계가 전혀 없었고, 애교쟁이였지만 ‘내가 이렇게 사랑을 표현해도 될까?’라는 조심성이 한 스푼 더해진 모습이었다.
우리에게 주어진 기간은 딱 두 달. 두 달 안에 입양을 보내지 못하면 다시 열악한 보호소로 보내야만 했다. 지방에서 근무하시는 아빠가 내년 1월부터는 집에 돌아오실 예정이셨고, 아빠는 평소 강아지 입양을 절대 반대하셨기 때문이다.
버팅기기 작전 대성공
그런데 스탭분의 말이 사실이었을까. 각종 SNS와 카페에 그 어느 때보다도 건우를 열심히 홍보했지만 몇 달간 입양 문의가 한 건도 오지 않았다. 두 달 안에 입양을 보내지 못하면 유기견 보호소로 다시 돌려보내야겠다 생각했지만 차마 실행에 옮길 수는 없었고 우리 자매는 본격 ‘버팅기기 작전’을 시전했다.
그렇게 1월이 되자 아빠는 우리의 버팅기기 작전에 휘말리며 건우와 얼떨결에 인사를 하게 되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건우는 우리 자매가 임시 보호한 네 번째 강아지이자, 마지막 강아지가 되었다.
건우를 끝으로 임시 보호를 중단한 이유는 바로 건우를 우리 가족으로 맞아들였기 때문이다. 여러 여건들 때문에 당시 입양은 우리의 선택지에 없었음에도 인연은 어떻게든 찾아오기 마련인지, 그간의 걱정과 고민들을 단숨에 넘어 우리는 가족이 되었다. 그러니까 다시 말하자면, 아빠는 마음을 활짝 열고 건우를 늦둥이 새 아들로 맞이한 것이다. 그리고 동시에 우리 가족에게 선물 같은 삶이 펼쳐졌다.
건우가 가져다준 선물:
YOUTUBE 채널 거누파파네
언젠가 재미로 본 사주풀이에서 따뜻한 갈색이 우리 자매에게 행운을 가져다준다고 들은 기억이 있다. 그런데 웬걸, 아주 포근한 갈색 털을 가진 건우가 가족이 되자마자 우리에게는 어마어마한 선물 같은 일들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건우를 입양하기로 결정하며 우리는 그동안 임시 보호의 추억을 정리하기 위해 짧은 영상을 만들었고, 사람들이 임시 보호에 좀 더 관심을 가졌으면 하는 마음을 담아 유튜브에 올렸다. 감사하게도 그 영상은 굉장한 관심을 받으며 현재 66만 회의 조회 수를 기록했고 수많은 응원 댓글이 지금까지도 달리고 있다.
‘아휴, 우리 살기도 바빠’ 하며 입양을 질색하셨던 아빠는 건우를 보호하는 기간 동안 ‘이렇게 속이 든(철든) 강아지가 없다’며 ‘건우 바라기’가 되셨고, 그 모습을 담은 영상 역시 47만 조회 수를 기록했다.
이 일을 계기로 우리 가족에게는 ‘유튜브’라는 새로운 취미가 생겼다. 채널의 주제는 ‘건우네 가족 이야기’. 건우 산책 V-LOG와 같은 일상부터 유기견 보호소 일일 봉사, 임시 보호 후 평생 가족을 찾아 떠난 시리, 스콘이, 해리의 근황까지 다양한 콘텐츠를 올리고 있다. 이 취미가 무엇보다 좋은 건 우리 가족이 세상과 소통할 수 있는 창구가 되어주었다는 점이다.
우연이 가져다 줄 행복을 기다리며
이 모든 마법 같은 일은 모두 아주 작은 우연에서 비롯되었다. 첫 임시 보호 시리를 만나지 않았더라면, 우리가 임시 보호를 쭉 이어가기로 결정하지 않았더라면, 건우를 가족으로 맞이하지 않았더라면 결코 일어나지 않았을 일이다. 작년 2월의 우리 자매에게 ‘1년 후 너희가 올린 영상은 그야말로 대박이 날 거고 너희는 가족 유튜버가 될 거야’라고 말한다면 우리는 코웃음 쳤을 거다.
가족이 된 건우와 함께 걸어가는 앞으로의 나날에는 또 어떤 것들이 기다리고 있을까? 어떻게 해도 미래를 정확히 알 수는 없겠지만, 분명한 건 우리 가족은 늘 함께일 것이란 것, 그리고 함께라면 모든 일은 결국 기쁨일 것이라는 사실이다. 우리는 그저 조용히 건우를 쓰다듬으며 다가올 봄과 앞으로 만날 우연, 그리고 우연이 가져다줄 행복과 기쁨을 맞이할 준비를 할 뿐이다.
CREDIT
글 최세화
사진 최세연 최세화
에디터 이혜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