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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gazine P. 봄을 닮은 너

  • 승인 2020-12-21 10:4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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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책 별로야?

  겨울에 태어난 꾸미는 봄에 우리 집에 왔다. 어린 강아지는 예방접종이 끝나기 전까지는 산책을 하지 않는 게 좋다는 수의사 선생님의 말씀에 따라 꾸미는 따스한 봄날을 집에서 보냈다. 그러나 온종일 집에만 있으면 재미없을 거라며 부모님은 어린 꾸미를 안고 바깥세상을 구경시켜 주셨다.

  그때는 아파트 단지 화단마다 다양한 꽃이 피던 봄이었기에, 부모님은 꾸미를 안고 '이 꽃은 산수유야', '이 꽃은 개나리야' 하고 열심히 설명해 주셨다. 그러나 아기 강아지 꾸미는 항상 눈을 반절 정도만 뜬 상태였고, 그 때문인지 꽃을 봐도 심드렁 해 하는 것으로만 보였다.

  지금 생각해보니, 그 시절 꾸미는 아직 쌍꺼풀이 자리를 잡지 않아 눈을 완벽하게 뜨지 못했던 것 같다. 하지만 꾸미가 비로소 접종을 다 맞고 산책이 가능해 졌을 때, 꾸미는 바깥에서 한 발자국 걷는 것조차 무서워했었다.

  밖에만 나가면 바닥에 납작 엎드려 요지부동이던 꾸미를 움직이게 하려고 엄마는 갖은 애를 쓰셨다. 엄마는 꾸미가 좋아하는 사료를 손에 들고 쭈그리고 앉아 꾸미의 이름을 부르 셨고, 꾸미가 한 발자국 움직일 때마다 열심히 칭찬해 주셨다. 산책의 즐거움을 알려주고 싶은 마음에 엄마는 항상 바닥에 딱 붙어 꾸미의 눈높이에 맞춰 다가가셨다

 

  산책은 재미있는 거야

  조금의 시간이 지나고, 이윽고 꾸미가 몇 걸음씩이나마 움직 이기 시작했을 때, 엄마는 해가 쨍쨍한 낮 시간이면 언제나 꾸 미와 함께 외출을 나가셨다. 동네 공원에도 데리고 가셨고 아 파트 벤치에 앉아 함께 쉬다 오기도 하셨다. 혹시라도 꾸미가 사람들을 무서워하게 되지 않도록, 최대한 많은 사람을 만나게 해 주시려는 듯했다.

  또 동네 고양이도 보여주셨다. 꾸미는 엄마가 마음으로 낳은 세 번째 아이였다. 우리 자매를 키울 때 처럼 엄마는 꾸미에게 사물의 이름을 하나하나 알려주셨고, 밤에는 동요와 자장가를 불러주셨다.

   엄마는 꾸미가 먹는 모습만 봐도 배가 부르다고 하셨다. 또 꾸미에게 모든 것을 줄 수 있다고도 하셨다.

  꾸미도 엄마의 그런 마음을 아는 것인지, 자신의 이름 다음으로 ‘엄마’라는 단어에 가장 빠르게 반응하 기 시작했다. 엄마가 부엌에서 요리를 하실 때면 펜스 앞에서 몇 시간이고 기다렸다. (우리 집은 꾸미가 혹시 부엌에 몰래 들어와 사료 이외의 다른 것들을 주워 먹을까 봐 식탁 옆으로 펜스를 빙 둘러놨다)

꾸미는 그렇게
봄 햇살처럼 따스한 아이로 자라주었다.


  생각보다 재밌네!

  엄마의 오랜 고생 끝에 꾸미는 산책을 좋아하게 됐다. 그리고 얼마 안 있어 꾸미의 산책 취향은 확실하게 드러났다. 꾸미는 동네 사람들의 안부를 묻는 것을 좋아했고, 자연의 소리를 듣는 것을 좋아했다. 바람이 불면 바람을 느끼며 한참 동안을 멈춰 서 있는 걸 좋아했다.

   그리고 주변 모든 화단의 꽃들과 풀들의 냄새를 맡으며 인사하는 걸 좋아했다. 어린 시절 꾸미는 자신의 몸보다 큰 가방이 달린 하네스를 메고 산책을 다녔고, 때문에 밖에 나가면 동네 사람들의 주목을 한 몸에 받았다. “어머나 얘, 너도 학교 가 니? 아니다. 조그만 걸 보아서는 유치원 가겠구나!”라며 반가워해 주시는 동네 아주머니들부터 “엄마, 저 강아지 가방 멨어!”라는 동네 아이들까지.

  꾸미는 동네 인기스타였다. 사실 가방에는 응가를 담을 응가 봉지가 넣어져 있었지만, 무엇인가 아주 중요 한 물건이라도 들어 있는 것처럼 꾸미는 위풍당당하게 동네를 돌아다니며 사람들에게 인사를 하곤 했다.

  우리의 걸음 속도는

  그때와는 달리 제법 몸집이 자란, 아니 몸통이 길어진 꾸미는 이제 프로 산책꾼이 되었다. 제자 리를 맴도는 수준이었던 어린 시절과는 다르게, 요즘의 꾸미와의 산책은 빠른 듯 느리고, 느린 듯 빠르다. 작은 체구임에도 불구하고 마음에 드는 꽃을 만날 때까지 엄청난 속도로 달린다.

  아무 생 각 없이 따라 뛰다가는 큰일 난다. 갑자기 멈춰 서서 신중하게 꽃 냄새를 맡으며 자연과 인사를 나누는 꾸미를 지나칠 수 있기 때문이다. 마음에 드는 꽃을 발견한 꾸미는 꽤 오랫동안 이 꽃은 세상에 단 하나밖에 없다는 듯이 조심스럽게 냄새를 맡곤 한다.

  충분히 그 꽃을 예뻐해 주고 나면 우리를 쳐다보며 싱긋 웃고는 또 다른 꽃을 찾아서 뛰어간다. 꾸미에게 산책의 즐거움을 처음 알려줄 때 엄마가 그러셨던 것처럼, 우리는 지금 꾸미의 산책 속도에 걸음을 맞추고 있다. 어느 정도 산책을 신나게 하고 나면 꾸미는 누구보다 행복한 표정으로 우리를 쳐다보며 우리의 속도에 맞추어준다.

  이제는 조금 더 자란 만큼, 가족의 속도에 맞출 줄도 아는 꾸미가 되었나 보다. 앞으 로도 이렇게 서로의 속도에, 서로의 눈높이에 맞춰 또 다른 산책길을 찾아다녀야겠다. 물론 꾸미 가 좋아하는 꽃도 찾을 것이다. 꾸미와 함께.

글 사진 성예빈
에디터  이혜수



<예비 수의사의 일기-봄을 닮은 너>
해당 글은 MAGAZINE P 2020년 4월호에 수록된 것으로, 저작권은 (주)펫앤스토리에 귀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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