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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gazine C. 언제나 네 편이 되어 줄게

  • 승인 2020-12-29 11:5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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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나 인간은 
위대하신 고양이님을 모시는
한없이 작은 집사에 불과한 걸까.

 

  ‘고양이 한 마리를 기르면 보살, 두 마리를 기른다면 그는 이미 부처이니라.’ 고양이 집사들 사이에서는 꽤나 유명한 우스갯소리다. 에헴, 그렇다. 나는 부처 집사이다. 이제는 꽤나 익숙해졌지만, 고양이를 기르다 보면 커다란 인내심이 필요한 순간들이 시시때때로 나를 찾아오곤 한다.

  초보 집사 시절, 드디어 고양이를 기르게 되었다는 기쁨에 사로잡힌 나는 닥치는 대로 값비싼 고양이 물품을 사들이며 월급을 탕진했었다. 집 앞 현관에는 날마다 택배가 수북이 쌓였고 집안은 사람이 사는 집이라기보단 고양이가 사는 집이라는 말이 어울릴 정도로 고양이 물건으로 가득했다.

   종이 스크래 쳐, 카페트형 스크래쳐, 수직 스크래쳐, 오뎅 꼬치, 낚싯대 등등 가짓수만 해도 수십 가지는 되었다. ‘네가 뭘 좋아할지 몰라 다 준비했어!’라는 마음이었달까? 내가 할 수 있는 선에서 최대한의 금전적인 노력을 쏟는 것이 곧 좋은 집사가 되는 지름길이라 생각했다. 맛있고 몸에 좋다는 간식, 사료, 영양제까지….

  하지만 첫 고양이 보리를 만나 함께 생활해 보니 이게 웬걸, 정작 고양이가 좋아하는 것은 비싼 장난감이나 간식이 아니라 빵 끈, 옷에서 삐져나온 실밥 따위 또는 택배 박스, 저렴한 간식이 아닌가. 하! 실소가 나오는 순간! 아마 집사라면 모두가 공감할 것이다. 

 

  그래, 나는 부처이니라

  보리굴비의 행동 패턴에 완전히 익숙해진 요즘까지도 집사의 외로운 싸움은 끝나지 않는다. 한 예시로 사료를 바꿀 때가 되면 눈치 게임이 시작되는 것이다. 

  과연! 고양이들이 이 신상 사료를 먹어 줄 것인가? 신상 사료의 보편적 기호성, 지금까지 먹어온 사료와의 비교, 사료의 성분, 그리고 가격까지. 이 모든 것들에 대한 분석이 완전히 이루어지고 나서야 비로소 신상 사료는 장바구니에 담겨 구매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이런 집사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새 사료를 매번 잘 먹어주면 좋으련만 또 고양이님들의 행동은 언제나 예측할 수가 없다.

  이 밖에도 고양이님들은 다양한 방법으로 집사의 인내심을 길러주고 있는데, 또 다른 한 가지는 바로 ‘집사가 소중히 여기는 물건 파괴하기’다. 내 SNS에도 자주 등장하지만, 평소 나는 장난감을 굉장히 좋아한다. 장난감 하나하나의 귀엽고 독특한 매력에 푹 빠져있다. 

  그중에서도 유달리 아끼는 인형이 하나 있는데, 바로 ‘몬치치’다. 몬치치는 털이 난 원숭이 같기도 하고, 사람 같기도 한 인형인데, 보리굴비는 그 인형이 마음에 든 모양인지 퇴근하고 돌아오면 몬치치는 항상 방바닥에 나뒹굴고 있다. 아무리 위치를 바꾸어봐도 귀신같이 알고 물어다 떨어트리는 통에 이젠 두 손 두 발 다 들었다. 

  정말이지 몬치치의 수난시대가 따로 없다. 아니지, 그래, 나는 부처이다. 부처는 화를 내지 않지. 종교가 없는 나지만 이때만큼은 부처님을 자처해 본다. 누군가 고양이를 기르는 데 필요한 마음가짐에 대하여 묻는다면 나, 망설임 없이 이렇게 대답하리. 자신이 곧 부처라고 굳게 믿으라, 집사들이여! 내려놓으면 마음이 한결 편해진다. 하늘 아래 내 것이 없나니, 무소유. 뜻밖에 종교에 눈을 뜨게 되는 건가 싶다.


  고양이가 선사하는 행복

  아무렴 어떠하랴! 고양이가 아무리 자주 집사들의 인내심을 시험한다 한들, 고양이가 우리의 일상에 가져다주는 행복과 충만함에 비할 바는 못 될 것이 분명하다.

  몸을 둥글게 말고 평화롭게 잠자는 모습, 별것 아닌 그림자에 펄쩍 뛰고 멈추기를 반복하는 귀여운 녀석들, 화장실 가기 전 ‘우다다’ 집 안을 질주하는 모습. 함께하는 모든 순간, 고양이들은 우리를 미소 짓게 한다.

  평범한 일상이 너무나도 소중하다는 걸 절실히 깨닫는 요즘이다. 마주 앉아 식사를 하고, 봄이 오면 여유롭게 꽃놀이를 가는 것조차 쉽지 않은 나날들이 이어지고 있다. 집안 베란다에서 고양이처럼 봄볕을 쬐며 생각한다.

  ‘아무리 몬치치를 괴롭혀두, 내가 사준 비싼 장난감이랑 사료를 안 좋아해두, 보리굴비야! 내가 항상 너희 편이 되어줄게.’

글 사진 차아람
에디터  이혜수

<나만 없어 고양이 탈출기-언제나 네 편이 되어줄게>
해당 글은 MAGAZINE C 2020년 5월호에 수록된 것으로, 저작권은 (주)펫앤스토리에 귀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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