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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gazine C. 자두밭 고양이들

  • 승인 2021-01-08 18:2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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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에겐
 사람을 홀리는 
알 수 없는 힘이 있다.

어느 날 나타난 
한 마리의 고양이는, 

한 가족의 삶을 
완전히 바꾸어 놓았다.

  사람 다룰 줄 아는 녀석

  아버지께서 직장을 퇴직하신 후 가꾸고 계신 자두밭에 어느 날 고양이 한 마리가 나타났다. 평소에는 고양이에게 전혀 관심이 없으셨던 아버지는 마침 간식으로 드시던 육포를 녀석에게 던져주셨다. 

  무심코 던져진 이 육포 하나가 지금의 고양이 여덟 식구와 우리를 만나게 해줄 것이라고는 그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다. 육포를 받아먹은 고양이는 길냥이라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처음 본 우리에게 스스럼없이 다가왔다. 아니, 오히려 뻔뻔스럽게 더 내놓으라고 야옹거리기까지 했다. 

  그렇게 그 자리에서 캔 두 개를 해치운 고양이는 다음날 죽은 새끼 두더지를 자두밭 하우스 문 앞에 고이 놓아두고 갔다. 이게 말로만 듣던 고양이의 보은인가? 녀석의 기특하고 귀여운 행동은 우리 가족의 마음을 홀딱 빼앗아갔다. 아마도 사람 구슬리는 법을 잘 아는 녀석이었던 것 같다.

  자두밭 고양이

  그렇게 그 고양이는 ‘자두’라는 이름을 얻으며 우리의 가족이 되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자두는 임신한 상태였고, 지금까지 두 번의 출산을 해 총 7마리의 새끼들과 함께 지내고 있다. 

  자두의 새끼들은 더운 여름에 일하느라 지친 우리 가족에게 삶의 활력소가 되어주었다. 귀여운 외모에 천방지축 뛰어다니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내내 웃음꽃이 피었다. 그러다 어느 날 문득 정신을 차려보니 어느새 자두밭 하우스는 8마리의 고양이들에게 완전히 점령당해 있었다. 

  작업장 겸 창고로 쓰이던 하우스는 현재 거의 고양이 전용 집이 되어버렸다. 하우스 문에는 아이들이 드나들기 좋도록 고양이 문이 달렸고, 겨울엔 추위를 피할 수 있도록 보온 빵빵 폭신한 집까지 마련되었다. 그것도 부족해 하우스 중앙에 난로까지 생겼다. 아, 물론 이 모든 것은 고양이는 좋아하지 않으신다던 아버지께서 손수 해주신 일이다.

  집사의 삶이 우리의 의지로 시작된 것은 아니다. 또 고양이와 함께하는 삶 역시 처음이기 때문에 아직은 여러모로 많이 부족하다. 하지만 이 작은 생명이 우리에게 주는 기쁨이 얼마나 큰지 모르겠다. 오늘 자두가 얼마나 귀여웠는지, 새끼들이 어떤 행동을 했는지, 이야기를 늘어놓으시는 부모님의 얼굴엔 행복
이 가득하다.

부모님께서 요즘 들어 
자주 하시는 말이 있다.

“고양이들이 이렇게 
예쁘고 귀여운지 몰랐어.”


  너에게 난 어떤 존재일까

  자두를 만난 후 계속해서 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던 물음이 하나 있다. 바로 ‘나의 역할은 과연 무엇일까?’라는 물음이다. 

  자두가 우리에게 도움의 손길을 내밀었을 때, 그것은 대체 어떤 의미였을까? 우리 가족은 자두의 삶에 어디까지 개입해야 하는 걸까? 자두에게 물어봐도, 묵묵히 옆에 앉아있기만 하는 자두. 

  몇 달 전, 자두의 반복되는 출산을 막기 위해 중성화 수술을 해준 뒤 집에서 자두를 며칠간 돌본 적이 있었다. 순하고 사람을 잘 따르는 자두의 성격대로, 자두는 집에서도 적응을 꽤나 잘했다. 다시 밖으로 돌아가 적응을 잘 못하면 어쩌지 싶을 정도였다. 

  하지만 그런 걱정이 무색하게 자두밭으로 돌아간 자두는 눈에 띄게 즐거워했다. 사랑스러운 새끼들은 돌아온 엄마를 반겨주었고, 자두가 거닐던 햇살 가득한 자두밭도 자두를 따뜻하게 맞아주었다. 자두도 그제야 제 옷을 입은 듯했다.

  내 눈에 비친 아이들은, 태어난 자연 속에서 형제들과 걱정 없이 뛰놀 때가 가장 행복해 보인다. 물론 모든 고양이가 그렇게 살기는 어려울 것이다. 특히 수많은 위험이 곳곳에 도 사리는 도시의 고양이들은, 하루하루가 위태롭고 치열한 생존 경쟁의 순간에 놓여 있을 것이다. 운이 좋으면 좋은 집사를 만나 따뜻한 곳에서 배를 채울 수 있겠지만, 그렇지 못한 생명이 더욱 많다. 

  자두와 아이들은 운이 좋게도 한적한 시골에서 태어나 고양이들이 살기에 꽤나 좋은 환경을 만났다. 게다가 꼬박꼬박 밥과 간식을 챙겨주는 집사까지 생겼다. 이곳저곳 먹이를 찾아 떠돌아다니지 않아도 되고, 다른 고양이들에게 영역을 빼앗길까 전전긍긍해 하지 않아도 된다. 자신이 태어난 곳에서 자연스럽게 살되, 생존을 위한 걱정 없이 살게 도와주는 것. 이 정도가 나의 개입의 적정선이 아닐까 싶다.

  행복했으면 좋겠어

  얼마 전 자두의 새끼 중 하나인 ‘홍시’가 고양이 별로 떠났다. 원인은 약물중독으로 추정되었고, 병원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의 조치를 취했지만 결국 홍시는 그렇게 5개월의 짧은 생을 마감했다. 홍시는 태어났던 자두밭 한쪽 양지바른 곳에 묻혔고, 그렇게 자연으로 돌아갔다.

  나는 그 작은 생명을 지켜주지 못했다는 죄책감에 한동안 많이 괴로워했다. 또 한편으론 이런 생각을 했다. ‘모든 생명은 태어나고 죽는다’는 자연의 섭리 앞에서, 나는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사실이었다. 

  자연 속에서 ‘자연스럽게’ 살아가는 아이들에게 인간이 예측하지 못하는 일들은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다. 때문에 나는 아이들이 우리에게 의지하는 만큼 책임감을 가지되, 아이들의 삶은 자연에 맡기고 그들의 모든 삶을 통제해야 한다는 부담감은 내려놓기로 했다.

   하지만 우리 자두밭에서 태어나고 살아가는 이상, 살아가는 동안만큼은 아무 걱정 없이 평화롭게 뛰어놀게 해주고 싶다. 자두가 우리를 믿는 만큼 자두에게 최선을 다해 지켜주고 싶고, 자두가 자두밭 고양이라서 행복하다고 느끼며 살아갔으면 한다. 


  자두를 보면 늘 신기할 뿐이다. 어디서 이렇게 착한 고양이가 나타나서, 내가 어딜 가든 따라와 주고 내 발걸음을 맞춰 걸어주며, 옆에 앉아 말 없는 위로를 건네주는지. 존재 자체만으로 우리 가족에게 큰 힘이 된다는 걸 자두는 아는지 모르겠다.

  “우리 사랑스러운 자두가 눈을 감는 순간까지, 우리를 만난 것에 후회하지 않고 즐거운 기억만 안고 갈 수 있게, 언니가 함께할게. 우리 가족의 첫 고양이 자두야, 우리에게 나타나 줘서 정말 고마워.”

글 사진 권미소
에디터  이혜수

<자두밭 고양이들-어쩌다 집사>
해당 글은 MAGAZINE C 2020년 5월호에 수록된 것으로, 저작권은 (주)펫앤스토리에 귀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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