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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gazine C. 세 식구 24시간 생활기

  • 승인 2021-01-15 14:2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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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쩌다 보니 우리 부부는 약 2주 동안 자몽이와 함께 집에 갇혀(?) 지내게 되었다. 당시 임신 중이던 나는 3개월간의 짧은 휴직기를 보내고 있었고, 신랑은 하필 시국이 좋지 않을 때 감기에 걸려 군대(신랑은 직업군인이다)에서 2주간 자가격리를 지시받았다. 우리 부부는 혹시나 모를 만일의 가능성을 방지하고자 현관문 밖으로는 단 한 발자국도 나가지 않았다.

생활 1일 차

  자몽이는 아침부터 굉장히 당황한 눈치였다. 평소에 자몽이 아침밥을 7시 30분쯤 주는 편인데 나와 남편이 계속 거실에 앉아있으니 자몽이는 밥을 먹으면서도 계속해서 우리 쪽을 힐끔거렸다. 점심 먹을 시간이 되어 우리 부부가 부엌에서 달그락거리는 소리를 내자 자몽이는 담요에서 나와 우리를 빤히 올려다았다. ‘아무래도 오늘은 엄마 아빠가 쉬는 날인가 보다’ 하며 함께 있는 시간을 즐기려는 듯했다. 

  밤이 되자 자몽이는 거실 소파로 슬금슬금 올라왔다. 주로 안방 침대에서 함께 자거나 거실 소파에서 혼자 자는 자몽이가 오늘은 아빠가 있는 거실 소파에 누웠다. 그렇게 자몽이는 곧장 아빠 품으로 파고들어 잠을 청했다.

생활 4일 차

  지난 며칠 동안 자몽이는 아빠와 밤새 거실에서 놀다 아침에 잠들어, 점심때쯤 눈을 뜨는 일상을 반복하더니 4일 차인 오늘도 느지막이 일어나 아침을 달라고 우는 거였다. 정오에 첫 식사를 하는 대단한 자몽이. 우리 부부도 이렇게 온종일 함께하는 생활은 처음인지라, 낮 동안에는 거실에서 잘 안 하던 퍼즐을 꺼내 맞추는 등 평화로운 시간을 보냈다. 

  쪼그려 앉아 퍼즐 조각을 만지작 거리는 우리들 옆에서 자몽이는 최애 장난감인 머리끈으로 축구놀이를 하며 뛰어다녔다. 그러다 문득 작은 퍼즐 조각들이 꽤나 흥미롭게 느껴진 건지, 자몽이는 축구놀이를 하는 자세를 잡더니 맞춰진 퍼즐 위를 폴짝폴짝 뛰어다녔다. 우리는 그런 자몽이의 모습에 큰 소리로 웃을 수밖에 없었다. 

  이전에는 우리 부부의 퇴근 시간인 6시 전후에 저녁밥을 줬었다. 아마 그때의 자몽이는 배고파도 꾹 참고 우리가 돌아오길 기다렸나 보다. 하지만 우리가 집에 있는 지금, 자몽이는 오후 5시 30분 정도가 되면 어김없이 부엌으로 가 배가 고프다는 듯 울어댄다. 특히 우리가 저녁 식사 준비를 한다고 부엌에서 분주히 움직이면 자몽이의 칭얼거림은 한층 더 심해진다.

생활 10일 차

  이제 자몽이와 우리 부부의 생활 패턴은 서로에게 완전히 맞춰져 있다. 11시쯤 일어난 자몽이는 햇살 아래 그루밍을 한다. 그렇게 해가 지고 저녁 식사까지 마치면 자몽이는 조금씩 잠이 오는 듯 눈을 끔뻑거리는데 이때를 놓치지 않고 반드시 자몽이의 몸을 긁어줘야만 한다. 좋아하는 부위를 정확히 긁어주다 보면 자몽이는 기분이 아주 좋은 듯 낮은 소리로 계속해서 그르릉거린다.  

  그리고 잘 시간이 되면 자몽이는 정말 기절한 것처럼 잔다. 종일 우리를 놀아주느라 본인은 낮잠도 못 자고 뛰어다니다 보니 피곤한  게 당연할 것이다. 그렇게 곯아떨어진 자몽이는 아침까지 깨지 않고 자세만 조금씩 바꿔가며 색색 잘도 잔다.

240시간 생활이 끝나고

  자몽이는 아무래도 굉장한 지능을 가진 것 같다. 똑똑한 고양이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이젠 정말 대화가 통하는 수준에 이르렀달 까. 함께 오랜 시간을 보내면 눈빛, 발짓만 봐도 서로의 생각을 알게 된다는 것이 바로 이런 건가 싶다. 

  어느 날은 자몽이가 머리끈을 가지고 놀다가 가구 밑으로 쏙 들어가더니, 이내 우리에게 쪼르르 달려와서 애옹애옹 우는 거였다. 그리곤 이내 마치 자신을 따라오라는 듯 은근한 눈짓을 보내더니, 사뿐사뿐 걸어가 어떤 가구 앞에 서서 내 눈을 빤히 바라봤다. 그래서 가구 밑, 서랍 등을 들여다보면 아니나다를까 자몽이가 잃어버린 머리끈이 들어있었다.  

  또 한 번은 정수기에서 물을 따라 마시고 있었는데, 자몽이가 또 애옹 하고 울기 시작했다. 혹시나 싶어 바로 따뜻한 물을 물그릇에 담아줬더니 자몽이는 만족스러운 얼굴로 고개를 숙여 물을 마셨다. 자몽이도 자신의 말을 다 알아듣는 우리가 편해졌는지 요즘따라 이것저것 요청사항이 부쩍 많아졌다. 꼬박 240시간 동안 한 공간에서 꼭 붙어있다 보니, 문득 인제야 ‘진짜 집사’가 된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요즘 나는 자몽이를 위해 온 마음을 다해 하고 싶은 일이 생겼다. 바로 함께 잠들고, 함께 밥을 먹으며 마치 한 사람처럼 세 식구가 서로를 닮아가는 것. 허락된다면 아주 아주 오래.

글. 사진 김성은
에디터  한소원

해당 글은 MAGAZINE C 2020년 5월호에 수록된 것으로, 저작권은 (주)펫앤스토리에 귀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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