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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gazine C. 뜻밖의 손님, 궁디와 빵디

  • 승인 2021-01-18 10:2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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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싱그러운 봄 내음이 조금씩 짙어지던 3월 초, 오랜만에 동생으로부터 연락이 왔습니다. 고양이를 잠시 맡아줄 수 있겠느냐는 전화였습니다. 

집 주변에 정원이 있기에 맡아주는 것 자체는 어렵지 않았으나, 다른 길고양이들의 텃세, 집을 나가 따로 독립해 버릴지도 모른다는 생각, 또 농번기가 다가와 마을 주변에 놓인 화학약품을 먹고 변을 당하지는 않을까 하는 걱정에 흔쾌히 답을 주기 어려웠습니다.

궁디와 빵디

  좀 더 생각할 시간을 달라는 말에 동생은 다급히 자초지종을 설명해 줬습니다. 남자친구가 3년간 거주하던 집 계약이 끝나 다른 집으로 이사를 했는데, 집을 관리하는 분께서 고양이는 들일 수 없다고 하셨답니다. 이러한 사정으로 고양이들이 당장 갈 곳이 없어지자 하는 수 없이 저에게 연락한 것이지요.

  물론 동생과 부모님 사이의 타협도 있었습니다. 동생은 가게 건물 2층이나 식당 정원에서 고양이들을 보살피길 원했으나, 2층은 아직 리모델링이 덜 된 데다가 만약 탈출해 가게로 내려온다면 식당 손님들에게 실례가 될 수 있다는 이유, 또 식당 정원 근처에는 큰 도로가 있기에 환경 적응이 덜 된 고양이들이 차에 치일지도 모른다는 이유로 결국 아이들의 임시 거처는 본가에 있는 안 쓰는 창고로 정해졌습니다.

  다음날 점심 무렵, 광주시에서 충청남도까지 차로 2시간 넘게 달려 온 동생과 고양이들은 지친 기색이 역력했습니다. 어쩌면 자신들을 아껴주던 집사의 곁을 잠시 떠나 새로운 곳에 적응해야 한다는 사실을 직감한 것은 아닐까 싶기도 했습니다. 예기치 않은 만남이었지만 앞으로 몇 달간은 동고동락할 사이가 되었기에 모쪼록 좋은 일만 생기길 기원하며 츄르로 환영식을 열었습니다.

닮았지만 성격은 정 반대

  아이들을 돌보는 역할은 자연스레 제가 맡게 되었습니다. 둘의 성격은 동생에게 익히 들어서 알고 있었지만 이토록 서로 반대일 거라곤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외모만 보면 형제라고 믿을 만큼 둘 다 제법 살집이 퉁퉁한 고양이었으나, 궁디는 아주 낯가림이 심하여 무심코 쓰다듬으려 손을 내밀면 주저 않고 날카로운 발톱을 휘둘러대곤 했습니다. 

  반면에 빵디는 볼을 꼬집던, 얼굴을 비비던 모두 넉살 좋게 받아주는 낙천적인 아이였습니다. 마당에 데려다 놓자마자 잽싸게 창문으로 올라가 내려올 생각도 않고 주위만 살피는 궁디의 모습이 답답했는지, 빵디는 정원 곳곳을 누비며 탐험을 시작했습니다. 

  빵디는 강아지들과도 곧잘 친해져 함께 정원을 돌아다니는 데 반해 궁디는 끝까지 창문에 붙박인 채 내려올 생각을 않았습니다. ‘아직 첫날이라 적응이 안 돼서 그런가 보다’ 하였으나 겁먹은 채 창문 근처에서 밑을 내려다보던 궁디의 모습이 자꾸만 눈에 밟혔습니다. 

모습을 감추다

  그 뒤 일주일 정도가 지난 아침. 여느 때와 다름없이 고양이들 밥을 챙겨주는데 이상하게 궁디와 빵디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아침마다 꼬박꼬박 사료를 챙겨 먹고 마을로 나가던 아이들인데 걱정이 앞섰습니다. 어딘가 숨어 있는 것은 아닌가, 돌아다니며 불러 보아도 눈에 보이는 건 다른 길고양이뿐이었습니다.

  동생에게 전화를 걸자 동생은 ‘도시에서 살 때도 종종 집을 나가 며칠 만에 들어오곤 했다’는 말을 들려주었습니다. 그 말을 듣고 조금 안심이 되었으나, 그곳에서는 지리를 잘 알아 돌아올 수 있었을 테고 이곳에선 정착한 지 일주일밖에 안 되었기에 혹 집에 돌아오는 길을 잃어버리지는 않았을까 걱정이 되었습니다.
 
  또다시 일주일이 지나고, 궁디가 먼저 집에 들어왔습니다. 궁디는 그동안 어디서 밥은 안 굶었는지 뚱뚱한 모습 그대로 돌아와, 무슨 호들갑이냐는 듯 맛있게 사료를 먹고 창고로 다시 쏙 들어가 버렸습니다. 그 모습이 참 황당했지만 그래도 다행이다 싶었습니다. 

  하지만 빵디의 소식은 들려오지 않았습니다. ‘정말 큰일이 생긴 것은 아닐까? 아니야, 좀 더 기다려보자. 궁디도 돌아왔으니까 빵디도 무사히 돌아올 거야’라며 애써 나쁜 생각은 하지 않으려 했습니다.

빵디, 돌아오다

  빵디가 사라지고 3주가 지났을 무렵, 가족들은 붙임성 좋은 빵디가 분명 다른 집에 들어가 살고 있을 거라 생각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이렇게까지 돌아오지 않을 리 없을 테니까요. 그리고 다시 한 주가 지나고 동생이 집에 왔습니다. 저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동생과 함께 빵디를 찾으러 마을 곳곳을 누볐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된 일일까요? 살이 쏙 빠져 야윈 모습의 빵디가 동생에게 타박타박 걸어오는 겁니다. 그러곤 매우 성난 목소리로 ‘야옹, 야옹’ 하고 우는데, 마치 왜 자기를 여기에 두고 갔느냐는 듯 화를 내는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그런 빵디에게 동생은 미안하다 말한 뒤 간식으로 성난 빵디를 달래주었습니다. 배가 고파서 나온 건지, 동생의 목소리를 듣고 반가워 나온 건지는 모르겠지만 우리 가족은 무사히 빵디를 찾을 수 있어 퍽 다행이다 싶었습니다. 

  그렇게 빵디와 궁디는 지금까지 우리 집에서 무탈하게 잘 지내고 있습니다. 바뀐 게 있다면 둘 다 과체중 고양이에서 정상 체중 고양이로 탈바꿈했다는 겁니다. 부디 원조 집사의 곁으로 돌아갈 때까지 이렇게 잘 지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글. 사진 안진환
에디터  이혜수

해당 글은 MAGAZINE C 2020년 5월호에 수록된 것으로, 저작권은 (주)펫앤스토리에 귀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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